우선, 이름이 심상찮다. 한자로 이뤄진 상호의 뜻을 알기 전에는, 이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감을 잡기 어렵다.1930년에 건축된 명성황후의 후손 민익두 대감의 저택이라서 민가(閔家)이고, 70년 된 한옥을 리모델링해서 차와 와인, 퓨전한식을 파는 레스토랑으로 만들었다 해서 다헌(茶軒)이다. 즉 오래된 전통한옥에 서양문물을 조화롭게 접목, 새로운 컨셉의 대중공간으로 탄생시킨 곳이 민가다헌이다.서울 종로구 인사동 깊숙이 자리잡은 민가다헌은 외교계와 정ㆍ재계에서는 이미 유명한 곳이다. 이곳 단골고객 리스트 중에는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인사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특히 호텔을 제외하면 외국손님을 접대할 곳이 마땅찮은 현실에서 민가다헌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전체 고객 가운데 외국인의 비율이 30%를 넘을 정도로 길을 물어 스스로 찾아오는 이도 꽤 많다.150평 규모의 대지에 내부공간은 50평 정도로 아담한 규모인 이곳은 한옥의 구조를 고스란히 살려 크게 다섯 개 공간으로 만들었다. 3개의 방을 각각 ‘라이브러리’ ‘카페’ ‘다이닝룸’ ‘테라스’로 나누고 대청마루 앞마당은 야외카페로 만들었다. 방과 방을 이어주는 쪽마루는 우아한 복도가 됐다.민가다헌을 퓨전음식점이라 부르는 것은, 음식도 음식이지만 공간 전체가 그야말로 ‘퓨전’이기 때문이다. 상량과 대들보, 격자무늬 방문이 그대로 살아있는 한옥에 앤티크 서양가구와 은은한 조명이 기막히게 어울려 마치 개화기 외교관클럽에 온 듯 묘한 분위기를 선사한다.30년대 한국 양반가에서 사용했다는 자개병풍과 세계 각국의 와인이 진열된 월넛 장식장이 얼마나 잘 어울릴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즐거움이다. 라이브러리 책장 앞의 벨벳소파에 앉아 전통자기 모양 찻잔으로 커피를 마시면, 여느 레스토랑에서 느낄 수 없는 풍성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조선호텔 프랑스식당 출신 주방장이 만들어내는 요리 역시 ‘처음 보는’ 모양과 맛이다. 테이블 세팅과 코스 등 형식은 서양요리의 기준을 충실히 따른 반면, 요리의 내용은 한식 쪽에 더 가깝다. 저녁세트A(4만9,000원)의 구성을 보자.전복냉채를 시작으로 녹두죽, 초땅콩 드레싱을 곁들인 게살샐러드가 기본으로 나오고 해삼을 넣은 칠면조구이와 깻잎소스, 더덕을 넣은 돼지갈비찜과 백김치쌈, 마늘매시를 얹은 도미구이와 조개소스 가운데 하나를 고르도록 돼 있다.샐러드는 고춧가루를 넣어 매콤한 맛을 살렸고 주요리에 간장, 된장 등을 사용해 한국적 풍미를 가미했다. 또 식사 후에는 과일과 한과, 그리고 차가 나온다. 한식을 기반으로 서양식 재료와 요리기법을 응용한 메뉴들은 하나같이 아이디어가 반짝인다.이곳의 또 다른 강점은 방대한 와인 리스트. 100여종에 이르는 와인(3만~49만원)을 갖춰 웬만한 와인바 뺨치는 전문성을 자랑한다. 소믈리에(와인 감별사)가 따로 있어 자세한 설명과 함께 자신에게 맞는 와인을 고를 수 있다. 차 종류(6,000~1만3,000원)도 풍성해 편안한 대화 장소로도 그만이다. (02-733-2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