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7년 말에 터진 외환위기 이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은 큰 변화를 겪었다. 다른 지역도 그랬지만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의류상가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았고 떠났다. 건물은 비어갔고, 활기마저 잃어갔다.하지만 서울 강남구 청담동은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명품수입의류를 파는 점포들이 입점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리적으로 압구정동과 붙어 있는데다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이 인근에 있었기 때문이다.더욱이 갤러리아백화점에서 청담동사거리로 넘어가는 지역은 지리적으로 조용한데다 대형 신축건물이 많아 명품의류매장이 자리잡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런 현상은 99년 이후 본격화됐고, 청담동은 어느새 명품거리로 탈바꿈했다.2000년 이후 명품거리는 초고속성장을 했다. 점포수가 50개를 헤아릴 정도로 크게 늘었고, 프라다, 구치, 루이비통 등 세계적인 명품매장들이 거의 예외 없이 둥지를 틀었다.인근의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과 더불어 대한민국 명품 1번지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던 셈이다. 특히 국내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이곳 명품매장들은 ‘우리와는 상관없다’는 듯 매출이 큰 폭으로 늘어 불황 무풍지대의 혜택을 톡톡히 누렸다.하지만 최근 들어 청담동 명품거리에도 찬바람이 부는 것이 확실히 감지된다. IMF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하다는 불황의 그늘이 강타하고 있는 셈이다. 명품매장들은 여전히 호화롭게 보이고 찾는 사람들도 꾸준하다. 외형적으로는 아주 평온해 보인다. 물론 예전에 호황을 누릴 때도 지역적 특성상 그다지 떠들썩하지는 않았다.그러나 겉은 멀쩡할지 몰라도 실속은 예년에 비해 크게 나빠졌다는 것이 이곳 매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매출액과 수익성 등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일부 매장들은 직원을 줄이는 등 경비절감에 나서고 있다는 후문이다.3년 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는 한 명품브랜드 매장 관계자는 “지난해보다 매출이 20% 이상 줄었다”며 “요즘은 매장에 들렸다가 구경만 하고 나가는 손님들도 적잖다”고 말했다. 또 다른 매장의 점원은 “지난해는 한 번 들르면 두세 벌의 옷을 사가는 고객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며 “일부 매장들은 적자를 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더 큰 문제는 당분간 회복이 어려울 것 같다는 점이다. 특히 일부 매장들의 경우 올해 들어 할인판매를 하고 있지만 매출이 늘지 않아 더욱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자칫 불황이 장기화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이를 반영하듯 명품거리 주변 빌딩 가운데는 임대라고 써 붙인 빌딩도 있다. 인근에 있는 우리부동산 김성우 공인중개사는 “최근 명품거리 주변에 있는 빌딩 가운데 대략 5~6개는 매물로 나와 있는 상태”라며 “그만큼 이곳의 경기가 나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청담동 명품거리의 불황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다. 소비의 양극화로 부유층의 소비가 줄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왜 갑자기 직격탄을 맞고 있는지 일반적인 분석으로는 풀리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많은 의견 가운데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고소득층 역시 수입이 줄어 소비를 줄이고 있다는 점이다. IMF 외환위기 때는 이자율이 치솟아 거액을 은행에 넣어놓기만 해도 이자소득이 높았으나 지금은 실질적인 제로금리 상황이라 아무리 부유층이라고 해도 돈줄이 상당부분 끊겼다는 것.새 정부 출범과 함께 사정활동에 대한 우려 등으로 부유층의 소비심리가 다소 얼어붙은 것도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일부는 아예 해외에서 쇼핑을 하고 오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어 명품수입의류에 대한 국내 소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얘기다.다른 의견을 내놓는 사람들도 있다. 명품을 취급하는 인터넷쇼핑몰이 크게 늘고, 이곳을 통해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난 점도 명품거리의 위상을 약화시켰다는 설명이다. 특히 최근 들어 일부 인터넷 명품숍의 경우 운영자들이 직접 이탈리아 등으로 날아가 명품을 직접 사다가 일반 매장보다 저렴하게 파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어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명품거리의 불황은 분명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소비의 거품을 빼는 데 일조하는 순기능도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지나친 소비양극화로 사회적 위화감이 커져 가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는 분석이다.세계 유명 브랜드들은 우리나라의 소비시장을 아주 높게 평가한다. 워낙 잘 팔리는데다 고가일수록 더 잘나간다는 얘기도 들린다. 몇몇 해외 유명업체들이 우리나라를 제품을 내놓기 전에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피는 테스트시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이런 것들이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다.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외국 유명 브랜드에 대한 지나친 소비성향은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는 점이다. 특히 과도한 거품을 조장해 가격을 왜곡시키는 상황이 계속될 경우 예기치 않은 문제점이 여기저기에서 불거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고가의 수입명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감시는 계속돼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노무현 정부 경제정책 집중분석고소득층에 더 유리한 근로소득공제정부는 내년부터 근로자가 내야 하는 근로소득세를 깎아주기로 했다. 연간 급여 기준으로 500만원부터 3,000만원까지 근로소득분에 대해서는 소득공제율을 5%포인트 높여 연간 7,000억~8,000억원의 근로소득세 부담을 덜어줄 계획이다.정부는 이 같은 근로소득세 경감방안이 ‘서민ㆍ중산층을 위한 세제지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설명은 ‘반쪽의 진실’만을 담고 있을 뿐이다.예컨대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는 극빈 근로자층과 저소득 근로자층은 소득공제를 아무리 해 줘도 혜택이 전혀 없다. 소득이 면세점 이하이기 때문에 과세표준소득(각종 소득공제를 제외한 과세대상 소득)이 제로(0)이다. 소득공제가 최소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과세표준액이 나와야 한다. 지난해 근로자 중에서 소득세를 내지 않은 사람은 전체의 42%였다.소득공제 확대로 인한 세금 경감 혜택은 벌어들이는 소득이 많을수록 커진다는 사실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근로소득세율 체계는 소득구간별로 9~36%의 세율이 누진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과세표준 소득이 1억원인 고위직 근로자 A씨가 납부해야 할 근로소득세를 계산해 보자. 현행 소득세법에 따르면 1,000만원 이하 소득분에 9%(90만원), 1,000만원부터 4,000만원까지 소득분(3,000만원)에 18%(540만원), 4,000만원부터 8,000만원까지 소득분(4,000만원)에 27%(1,080만원), 8,000만원 이상 소득분(2,000만원)에 36%(720만원)의 세금이 각각 부과된다. 따라서 A씨는 2,430만원(90만원+540만원+1,080만원+720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A씨는 내년부터 소득공제가 125만원 늘어나게 돼 과세표준액이 9,875만원으로 줄어든다.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36%의 소득분이 2,000만원에서 1,875만원으로 감소하므로 45만원의 세금경감 혜택을 볼 수 있다.반면 과세표준 소득이 적은 근로자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세율이 적용되므로 소득공제 혜택을 받더라도 세금 경감액은 적을 수밖에 없다.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연간 급여 1,800만원인 근로자는 세금부담 경감액이 3만원에 불과하다. 연간 2,000만원 근로소득자는 세금을 4만원 덜 낼 뿐이다.물론 다른 색깔의 안경을 끼고 들여다보면 다른 결론이 나온다. 연소득 1,800만원인 근로소득자는 현재 세금으로 11만원을 내므로 3만원만 줄더라도 세금이 27% 감소한다. 반면 과세표준 소득이 1억원인 고소득자가 내야 할 세금은 2,430만원에서 45만원만 줄어들기 때문에 세금경감비율은 1.85%에 그친다.분명한 사실은 저소득 계층의 소득공제를 확대한다고 해서 ‘저소득층을 위한 정책’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소득재분배만을 강조한다면 세금징수는 그대로 두고 저소득층과 빈곤층을 위한 예산을 더 많이 배정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현승윤ㆍ한국경제신문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