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호텔업계가 글로벌 호텔 체인에 점령당하고 있다. 무궁화 다섯 개의 특1급호텔은 대다수가 호텔체인으로 바뀌었다. 여기에다 요즘은 중급호텔까지 해외체인망 가입을 서두르고 있는 실정이다.최근 뉴월드호텔(특2급)은 홀리데이인호텔로의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6월 초 서울 잠실의 뉴스타(2급)는 미국의 호텔체인인 베스트웨스턴의 가족이 됐다. 뉴월드와 뉴스타의 체인 가입은 국내에서 특급호텔뿐만 아니라 중급호텔까지 급속히 호텔체인화 바람이 확산될 것이라는 신호탄으로 업계는 해석하고 있다.특히 베스트웨스턴의 한국사무소인 BGI코리아가 대대적인 호텔체인 설립에 나서고 있어 중급호텔업계에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베스트웨스턴 동대문 등 5개의 체인망을 확보한 BGI코리아는 오는 9월 서울 성동구의 비전호텔을 비롯해 을지로 옛 국도극장 자리에 체인호텔을 설립 중이다.이 회사 관계자는 “앞으로 국내에서 총 30개의 호텔체인을 열겠다”고 공언, 로컬호텔이 90% 이상 차지하고 있는 중급호텔업계를 집중 공략할 계획임을 밝혔다.체인호텔 현황과 득실사실 특1급호텔은 이미 외국계 호텔체인이 대다수다. 서울에 위치한 특1급호텔은 모두 15개. 이중 호텔신라, 호텔롯데, 호텔롯데월드, 아미가호텔 등 4개만이 해외 프랜차이즈에 가입하지 않은 토종호텔이다.지난 77년 쉐라톤워커힐호텔은 특급호텔로는 국내 최초로 미국 쉐라톤과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고, 호텔체인으로 거듭났다. 호텔체인의 대표주자인 조선호텔은 지난 81년 웨스틴호텔과 파트너십을 맺었다.이후 83년 당시 대우 계열사였던 동우개발이 힐튼인터내셔널과 경영계약을 통해 힐튼호텔을 개관하는 등 일부 특급호텔들이 체인화하면서 외국계 호텔체인업체들이 본격적으로 국내 시장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그렇지만 국내에 호텔체인이 본격 진입한 것은 88서울올림픽을 치르면서부터다. 88년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과 르네상스호텔이 호텔체인으로 첫선을 보였다. 이후 93년에는 전원산업이 소유하고 있던 남서울호텔이 ‘리츠칼튼서울’로 브랜드를 변경했다.그리고 2000년 9월 JW메리어트호텔이 설립됐다. 다만 특2급 이하 중급호텔 가운데는 베스트웨스턴과 홀리데이인, 그리고 라마다호텔 등이 글로벌 호텔체인과 제휴한 상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앞으로 중급호텔의 글로벌 체인화도 급속도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그렇다면 호텔체인에 가입하는 것은 어느 정도 득이 될까. 국내 호텔들이 외국계 호텔체인망에 가입하는 것은 일종의 ‘생존전략’ 차원으로 풀이된다. 특히 외국손님이 70~80%를 차지하는 특급호텔의 경우 체인가입은 고객유치에 절대적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는 게 호텔업계의 주장이다.인터컨티넨탈 관계자는 “전세계 예약망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특혜”라며 “로열티를 지급하더라도 전혀 손해 볼 게 없다”고 말했다. 호텔체인화가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이뿐만이 아니다. 세계적인 호텔의 선진적인 경영 프로그램을 도입할 수 있어 경영효율을 높이는 데도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는 것이다.반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주장은 최근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여파 등으로 호텔체인망의 도움을 크게 받지 못했으며, 오히려 과도한 로열티(평균 매출액의 2~5%)로 인해 경영효율성만 떨어졌다는 것이다.국내 특1급호텔체인의 한 관계자는 “국내 호텔들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자체적인 마케팅 역량이 생겨난데다 어차피 국내 수요를 뚫어야 하기 때문에 로컬 호텔과 비교해 이점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토종호텔 생존전략체인가입이 대세인데도 토종호텔이 ‘토종’이라는 딱지를 떼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는 해외 네트워크망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차별화된 마케팅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호텔신라는 ‘마케팅의 강화’를 통해 토종호텔의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각오다. 이는 마케팅전문가인 이만수 사장을 과감하게 발탁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객실, 레스토랑 등 모든 면에서 ‘최고급’ 이미지를 지속시켜 나가면서 국내외 비즈니스맨들이 원활한 비즈니스 활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것.비교적 규모가 작은 아미가호텔은 한때 체인가입을 고려했으나 독자 생존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200실 규모의 객실을 갖추고 해외체인망 가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도 적잖지만 로열티 등 기회비용이 더 많이 들어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즉 해외체인망 유지비용 및 광고료 등을 지불하는 것보다 국내 대기업이나 외국계 회사, 무역회사 등을 집중 공략, 고객을 유치하겠다는 전략이다. 김장섭 마케팅 지배인은 “해외체인 가입으로 나가는 비용을 국내 마케팅에 활용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국내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은 뒤 아시아지역으로 진출하겠다는 당찬 포부도 갖고 있다.돋보기/‘토종 vs 체인’ 대표호텔 CEO는 ‘입사동기생’75년 삼성물산 입사… 올해 라이벌호텔 CEO 취임국내 호텔체인의 대표는 웨스틴조선호텔. 국내 토종호텔의 대명사는 호텔신라다. 두 호텔은 국내 호텔업계를 좌지우지하는 라이벌이다. 이 라이벌 호텔의 사령탑인 이만수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53)과 이석구 조선호텔 대표이사 부사장(55)은 공교롭게도 삼성그룹 입사동기이자 친구이다. 두 사람은 올해 처음으로 CEO 타이틀을 거머쥔 뒤 호텔업계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이들 CEO는 공통점이 많다. 우선 그룹에서 국제통으로 통한다. 호텔신라 이사장은 지난 81년 삼성물산 뉴욕지사에서 부임한 뒤 2002년 뉴욕지사장을 마지막으로 호텔신라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그는 힙합브랜드 ‘후부’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면서 마케팅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99년 1월 ‘자랑스런 삼성인상’을 수상하며 이사에서 상무를 거치지 않은 채 전무로 2단계 승진했다. 그후 지난해 초 호텔신라로 옮기면서 2년 만에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다시 1년 만에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하는 등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왔다.조선호텔 이석구 대표도 85년 삼성물산 홍콩지점에 부장으로 부임한 것을 시작으로 98년 삼성코닝 중국팀장(이사)을 역임하는 등 국제통으로 통한다. 특히 중국 선전법인 재무이사 시절, 중국과 합작회사 설립에 성공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99년 신세계로 옮겨와 이마트 지원본부장을 역임하면서 국내 할인업계의 신화적 존재인 이마트 성장에 한몫 했다.두 사람이 사령탑에 오른 올 상반기는 호텔들이 아사 직전의 어려움을 겪는 중이었다. 지휘봉을 잡자마자 위기를 맞은 것이다. 그렇지만 위기를 헤쳐나가는 ‘솔로몬의 지혜’는 두 사람이 조금 다르다.호텔신라 이사장은 마케팅전문가답게 다양한 국내외 마케팅으로 난관을 넘으려 한다. 우선 유관기업들과의 교류와 협력을 더욱 확대하는 크로스 마케팅에 주안점을 뒀다. 국내에 주재하는 국내외 금융인들의 사교의 장인 ‘뱅커스 나이트’나 화학 관련 기업인들의 만남인 ‘페트로 케미컬 이브닝’ 등의 사교모임 개최에 적극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조선호텔 이대표는 단지 객실마케팅에 의존하지 않고 베이커리, 연회사업 등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뒀다. 지난 6월11일 3,000여평 규모의 베이커리 천안공장 기공식을 갖는 등 바삐 움직이고 있다. 베이커리사업 매출은 올해 830억원을 기대하고 있다. 이는 조선호텔 올해 매출목표의 38%에 이르는 것.지난 75년 직장생활을 함께 시작해, 같은해 국내 양대 호텔업계 사령탑에 오른 동기생 CEO의 올해 경영성적표는 어떻게 나올까.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