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회사측의 ‘수익성 악화’ 발표 이후 주가폭락과 브랜드에 균열 조짐

세계2차대전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경제부흥사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회사이름이 하나 있다. 바로 소니(SONY)다. 고장난 라디오를 수리해주는 구멍가게식 수리상에서 출발, 반세기 만에 세계전자산업을 주름잡는 최강자 기업으로 우뚝 선 소니의 성공신화는 일본의 부활 드라마와 시간적 궤적을 같이하며 경제 기적을 상징해 온 또 하나의 살아 있는 증거이기 때문이다.소니에 대한 일본국민들의 애정과 자존심을 설명하는 데는 긴말이 필요 없다. ‘소니’라는 두 글자가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소니가 만들어내는 제품들은 상당한 프리미엄을 누린다. 상표의 경쟁력을 말해주는 브랜드파워는 도요타자동차와 함께 일본 전체에서 1, 2위를 다툰다.조사기관과 시기가 다를지라도 브랜드파워에 관한 한 소니의 이름은 십중팔구 첫 번째 아니면 두 번째로 나온다. 닛케이비즈니스가 지난해 말 실시한 조사에서도 소니는 보란 듯이 1위를 차지했다. 일본국민들이 철석같이 믿어주고, 아낌없이 밀어준 덕이다.그런데 이처럼 철옹성을 자랑해 온 소니의 브랜드에 최근 이상징후가 생겼다. 환경변화로 당분간 수익성 악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난 4월 회사측의 발표가 주가폭락 사태를 몰고 온 데 이어 브랜드에서도 균열 조짐이 가시화되고 있다. 브랜드에 나타난 ‘이상’은 신뢰 및 지지도 하락, 품질평가 악화 등의 조사결과에서도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닛케이비즈니스는 소니쇼크로 촉발된 주가급락 사태가 한 차례 진정된 후인 5월30일부터 6월2일까지 소니에 대한 조사를 인터넷상에서 실시, 642명으로부터 응답을 받았다. 그리고 조사결과를 기초로 소니의 철옹성에도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닛케이비즈니스가 이상징후의 증세로 가정 먼저 꼽은 것은 호감도 변화였다. 2000년 4월에 실시된 조사에서 716명의 응답자들 중 ‘소니가 좋다’고 말한 사람은 81.8%였다. 그러나 올해 조사에서는 이 비율이 70.2%로 크게 낮아졌다.‘소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1.7%에서 6.5%로 높아졌으며, ‘별 관심이 없다’는 응답도 16.5%에서 22.1%로 크게 뛰었다. 원인이 어디에 있든 소니는 소비자들의 애정이 시들해진 순간을 맞은 셈이다.‘성능에 비해 값이 비싸다’ 37.1%소니는 회사이미지에서도 평가가 전과 같지 않았다. ‘꿈을 심어주는 힘’ ‘기술력’ ‘신뢰성’ 등 대부분의 항목에서 소니는 2000년 4월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이 같은 평가도 크게 후퇴했음이 나타났다.꿈을 심어주는 힘이 뛰어나다고 답한 사람이 2000년 4월 조사에서는 93.4%에 달했지만 올해는 65.1%에 그쳤다. 96.2%의 응답자로부터 ‘예스’를 받았던 기술력은 올해 69.5%로 떨어졌다. 신뢰성이 높다고 칭찬해주었던 응답자의 비율은 90.2%에서 72.4%로 하락해 있었다.제품의 성능과 가격이 밸런스를 맞추고 있는가, 다시 말해 가격에 합당한 성능을 갖추고 있는가를 묻는 질문에는 비관적 응답이 더 많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성능에 비해 값이 비싸다는 지적이 37.1%에 달한 반면, 싸다는 응답은 31.5%에 머물렀다.특히 비싸다는 쪽에 클릭한 응답자들의 과반수는 소니 제품이 성능과 디자인은 달라진 것이 없으면서 가격만 올랐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가격은 변하지 않았지만 성능과 디자인이 전에 비해 더 나빠졌다는 불평도 적잖았다.이에 대해 닛케이비즈니스는 브랜드이미지와 디자인이 좋다 하더라도 가격이 타당치 않으면 상품 자체에 그림자가 드리워질 수밖에 없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그 사례로 소니의 간판상품 중 하나인 컴퓨터 ‘바이오’를 들었다.소니는 컴퓨터시장을 휩쓸고 있는 염가판매경쟁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바이오의 제값 받기를 엄수해 왔지만 소비자들의 상품선택을 좌우하는 열쇠는 가격의 타당성임을 조사결과는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조사는 소니의 실제 사업내용과 소비자들의 인식간에도 거리가 있음을 노출시켰다. 응답자들 중 소니의 원래 사업이 제조업이라고 지적한 사람은 48.3%에 달했으며, 무려 44.9%의 사람이 오락콘텐츠 제공 쪽에 ‘예스’ 클릭을 했다. 소니의 음반, 영화, 게임소프트가 워낙 높은 인기를 누리다 보니 전자ㆍ가전제품을 만들어 파는 회사보다 오락콘텐츠로 돈을 벌어들이는 회사라는 인식이 급속히 퍼졌기 때문이다.초고가상품군 겨냥 신브랜드 실험이데이 노부유키 소니 회장은 초고속인터넷시대를 맞은 소니의 진로가 전자와 콘텐츠산업의 융합에 있음을 누누이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음반, 영화, 게임소프트 등의 콘텐츠산업을 통해 올리는 매출은 25%에도 못미치고 있다. 제조업의존도가 월등히 높은 상황에서 상당수 소비자들은 소니를 오락콘텐츠에만 전념하는 회사로 여기는 ‘인식의 차’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전반적인 브랜드파워에 적신호가 켜진 가운데 소니는 6월10일부터 초고가상품군을 겨냥한 새로운 브랜드 실험에 착수, 성공여부가 일본 산업계의 시선을 끌고 있다.소니는 이데이 회장을 비롯한 고위 임원 상당수가 참석한 가운데 초고가, 고급제품에만 적용할 브랜드 ‘쿠오리아’를 발표했다. ‘쿠오리아’는 가격경쟁을 의식하지 않고 소니 본래의 독보적 기술과 저력을 최대한 살려 만든 제품에만 적용한다는 것이 회사측의 방침이다.불황으로 물건이 팔리지 않고 초염가 중국산이 일본시장을 초토화시키고 있지만 이에 신경 쓰지 않고 소니가 갖고 있는 첨단 하이테크의 진수를 보여줄 제품만 ‘쿠오리아’의 이름으로 내놓겠다는 것이다.소니는 첫 작품으로 6월24일부터 대당 38만엔을 호가하는 소형 디지털카메라와 130만엔대의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쿠오리아 브랜드로 발매했다. 오는 8월에는 240만엔짜리 가정용 프로젝터와 80만엔짜리 오디오시스템을 역시 쿠오리아 이름으로 선보일 계획이다.값이 너무 비싸 찾는 고객이 소수에 불과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도쿄와 오사카에 전문점을 설치하고 주문생산방식으로 그때그때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소니가 쿠오리아에 쏟는 정성과 야심에는 ‘일본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회사’의 명성을 바탕으로 기술로 승부하겠다는 계산이 담겨 있다.소니는 2001년 5월 사내에 전담 프로젝트팀을 설치하고 쿠오리오 탄생을 준비해 왔다. 현재 약 70건의 제품이 기획돼 있으며, 이번에 발매하는 4가지 제품 외에 13개의 제품개발을 추가로 진행 중이다. 이데이 회장과 안도 구니이 사장 등 회사 최고위층이 구상단계에서부터 참가할 정도로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다.이상징후가 나타난 가운데 시작된 소니의 고가 브랜드 실험이 어느 정도의 결실을 맺을지는 미지수다.“소니가 최강의 컨슈머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육성해 나가겠다는 것은 그룹 전체의 결의다. 브랜드파워를 강화해나갈 것이다.”5월28일 열린 경영방침설명회에서 이데이 회장은 일본을 대표하는 소니의 ‘넘버원’ 전략에 어떠한 장애물도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문제는 불투명한 경제, 시장상황이다. 경제난이 소비자들의 지갑을 꽁꽁 묶어 놓은 일본의 현실에서 소니가 계속 최고의 자존심을 지켜나가기에는 난관이 적잖게 도사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상품평론가 이시이 가즈나리씨는 “쿠오리아의 등장은 최고의 기술을 자랑해 온 소니의 자존심을 대변하는 거울”이라고 지적한 후 “그러나 소비자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앞으로의 과제”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