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이 최근 ‘신경영 10주년’을 맞아 내놓은 ‘천재경영론’이 화제다. 이회장의 ‘천재경영론’은 ‘사람이 만들어낸 재목(人才)’을 넘어 ‘천리에 도전하는 재목(天才)’을 키우겠다는 것.이미 오래전부터 ‘1명의 인재가 1만명의 인재를 먹여 살린다’며 인재육성을 강조한 그답게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인재관을 피력한 셈이다. 하지만 늘 한발 앞서 경영화두를 던졌던 이회장의 ‘선견지명’이 이번에도 통할 것인지는 논란이 적잖다.재계 일부에서는 천재경영을 주도할 천재가 누구인지,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것인지 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은 아예 최근 ‘핵심인재 몇 명을 스카우트한다고 해서 기업의 성공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며 정면 반박하는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이처럼 국내 유명 CEO들이 던지는 경영화두는 재계에 논쟁거리를 제공하는 한편그들의 경영철학과 기업의 색깔을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먼저 삼성의 CEO들은 이회장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경영화두’ 제시에 부지런한 편이다. 삼성 CEO들의 좌장 격인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생선회 경영론’으로 유명하다. 갓 잡은 신선한 회가 높은 값을 받듯이 기업도 갓 잡은 활어회와 같은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윤부회장은 “활어회는 첫날에는 아주 높은 값을, 다음날에는 이보다 낮은 가격을, 3일이 지나면 건포로 헐값에 처분해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강조한다.‘생선회 경영론’이 나온 배경은 속도가 중시되는 전자산업의 특성을 반영했기 때문. 전자제품이 소비자에게 이르는 시간을 일주일 줄일 경우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는 시장에서 승산이 없다는 것이 주된 메시지다. 따라서 그가 주장하는 가장 ‘신선한 회’는 ‘세계 최초로 개발한 제품’으로 볼 수 있다.강호문 삼성전기 사장은 ‘수레바퀴 경영론’을 내세운다. 거대한 수레바퀴가 처음에 움직이려면 큰 힘을 가해야 하다. 하지만 한 번 굴러가기 시작하면 관성의 힘에 의해 점점 가속도가 붙어 작은 힘에도 쉽게 굴러간다는 것. 이는 직원 모두가 조금씩 힘을 합쳐 작은 분야에서라도 1위 제품이 나오면 이것이 표본이 돼 다른 분야에도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친다는 뜻을 담고 있다.배동만 제일기획 사장의 ‘알깨기 경영’도 관심을 끈다. 외국계 광고대행사가 국내 시장을 잠식하는 상황에서 고정관념을 타파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뜻이다.구본무 LG 회장은 그룹회장으로 취임한 95년 이후 초지일관 ‘정도경영론’을 주장한다. 그는 늘 “건전하고 깨끗한 기업만이 오래 존경받는 위대한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하고, 철저하게 정도를 지켜줄 것”을 주문했다. 구회장이 다소 우직하게 정도경영론을 고집하고 있다면 계열사 CEO인 김쌍수 LG전자 부회장은 ‘주먹밥 경영론’이라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경영철학을 선보였다.김부회장은 지난 4월 모교인 한양대 공대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주먹밥 경영론’으로 얘기를 풀어나갔다.수십개의 반찬이 나오는 한정식은 조리부터 설거지까지 전 과정이 거추장스럽고 복잡하다. 반면 주먹밥은 간단히 만들 수 있으면서도 필수영양소는 다 들어가 있고 설거지도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LG전자의 자랑거리인 창원공장 얘기를 꺼냈다. ‘주먹밥 경영론’을 적용한 결과 전자레인지 1대 생산에 필요한 생산라인 길이가 240m에서 45m로 줄어들었다는 것.지난 5월 연도대상 시상식. 김승연 한화 회장(대한생명 대표이사 회장 겸임)은 와이셔츠 차림으로 단상에 올라 애창곡을 열창했다. 김회장은 이어 수십명의 보험설계사, 직원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등 파격적인 모습을 선보였다.김회장은 지난해 12월 대한생명을 인수한 뒤 전국 영업점을 둘러보며 ‘신바람 영업’을 역설해 왔다. 신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보험설계사들을 위한 선진 교육 시스템 구축과 해외연수 기회 확대, 업계 최고 수준의 성과보상 등 사기진작책을 잇달아 내놓았다.박삼구 금호 회장은 음악애호가답게 ‘음악 경영론’을 내세운다. 박회장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경영이라고 강조한다. 박회장의 이 같은 경영철학은 ‘평사원들에게는 관대하지만 임원들에게는 엄격한’ 기업문화를 낳았다는 것이 그룹 관계자의 귀띔이다. 회장 자신이 아시아나항공 사장 시절 명절연휴 첫날이면 오전 6시에 출근해 공항 곳곳을 돌며 평사원들을 격려했던 것도 ‘음악 경영론’의 일환이라고.이웅렬 코오롱 회장은 젊은 사람답게 기발한 아이디어로 자신의 경영철학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데 남다른 능력을 발휘해 왔다. 최근 사내강연을 통해 소개한 ‘3박자 경영론’은 최신작이다.3박자는 ‘Will(해내겠다는 의지), Can(할 수 있다는 역량 확신), Do(성공하기 위한 전략수립)’로 집약된다. 3박자 가운데 Will(의지)이 가장 중요다고 이회장은 강조한다. 이회장은 “의지가 빠지면 일은 시작조차 못한다. ‘죽느냐 사느냐’나 고민하는 햄릿이 되고 만다”고 말한다.김재철 동원 회장(한국무역협회장 겸직)의 경영론은 이건희 삼섬 회장과 관점이 다르다. 이회장이 ‘천재경영론’을 주창했다면 김회장은 ‘범재경영론’을 경영철학으로 삼았다. 오늘날처럼 다양화하고 복잡화된 사회에서는 아무리 천재라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따라서 사람들을 골고루 아끼고 육성해 조직의 활성화를 꾀해야 한다는 뜻이다. “기업은 한 사람의 천재보다 힘을 합칠 수 있는 다섯 사람의 범재가 필요합니다. 똑똑한 한 사람보다 힘을 합할 수 있는 범부가 많아야 기업조직이 살아움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이래야만 자기가 속한 팀뿐만 아니라 다른 팀과의 관계도 원활해져서 팀워크의 조화를 통해 상승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김회장의 이 같은 ‘범재경영론’은 오랜 바다생활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인다.망망대해의 바다생활에서 그물을 끌어올리는 것도 혼자가 아닌 모두가 합심해야만 가능하다는 철학을 체득했다는 것이다. 팀워크에 허점이 발생할 경우 결코 성과를 거둘 수 없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깊이 느꼈기 때문이다.김동수 한국도자기 회장의 제1경영철학을 꼽는다면 ‘행복경영론’이다. 김회장은 늘 “직장에서의 행복지수는 곧 기업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한다. ‘효경영’도 김회장이 입버릇처럼 내세우는 이야기다. 효가 근무의 몰입도를 높여 우수한 제품의 생산을 가능하게 하고 전통적 가치를 계승하는 기업이미지와도 잘 부합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