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의 노사 대타협론이 새로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노사가 지금과 같은 대립갈등을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노조는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고 회사측은 경영에 노조를 제한적으로 참여시키는 등, ‘통 크게 합의를 보는 것’으로 노사평화를 얻어보자는 것이 이정우 실장의 생각이다.이실장은 <한국경제신문 designtimesp=24010>이 이를 크게 보도하고 논란이 일자 “노무현 대통령도 이 방안(구상)을 숙지하고 있으며 여론수렴을 거쳐 오는 8월께 구체적인 정책방향을 밝힐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노사가 임금동결과 경영참여를 맞교환하면서 소위 빅딜식 평화를 추구한다는 생각은 언제나 있을 법하고 또 네덜란드 등 일부 국가에서 이미 시행된 경험도 있어 굳이 청와대의 정책당국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주제라고 할 것이다.네덜란드에서는 경제위기가 심화되던 지난 82년 바세나르 협약이라는 것을 통해 노사가 평화협약을 맺었고 이것이 이후 이 나라의 경제회복에 큰 기여를 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네덜란드 방식으로 알려져 있는 이 협약이 시행된 이후 어떤 효과가 나타났는지도 잘 알려져 있다. 70년대 내내 연평균 8%씩 올랐던 인건비는 83년에 마이너스 0.5%, 84년에 마이너스 2.8%를 기록해 임금동결의 효과가 즉각 나타났다. 인건비가 줄어들면서 반사적으로 기업들의 투자수익률은 급증했다. 82년 5%였던 투자수익률은 95년 피크 때는 17%를 기록하기도 했다.임금동결의 내용도 주목을 끌 만하다. 임금 물가연동제를 2년간 유보한 결과 83~84년 사이에 실질임금은 9%가 떨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물론 사용자측의 양보도 없지는 않았다. 노동시간을 5% 단축해주고 사회보장제도를 유지하며 고용창출에 협조한다는 등이 사용자측의 타협조건이었다.논란이 되고 있는 경영참여도 관심거리다. 바세나르 협약의 경영참여는 노동자평의회를 통해 이뤄진다. 근로자들의 인원비례로 대표(일종의 대의원)를 뽑는데 회사 규모별로 2명에서 많으면 25명 정도다.이들은 회사 내 경영상황에 대한 정보를 청취할 수 있고 회사조직의 변동이나 해고, 채용, 근로시간 등 주요 사안에 대해 회사측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협의하는’ 권한을 갖는다.<한경BUSINESS designtimesp=24025> 독자들은 여기까지 읽게 되면 아마 심각한 의구심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 “거 이상하잖소. 그런 정도라면 우리나라에도 노사협의회 같은 것을 통해 이미 하고 있고 또 대기업 노조들은 대부분 이미 회사경영 청취 정도는 하고 있지 않소. 노조원이 관련된 조직문제 등도 이미 협의가 아닌 ‘합의’까지 거치고 있는데…”라는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다.맞는 말이다. 이미 우리나라에 전부 도입돼 있는 제도다. 네덜란드 모델의 하이라이트인 노사정 체제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노사정의 3자 합의가 전제돼야 하는데, 이 역시 지난 김대중 정권에서 이미 도입해 시행하고 있는 터다. 그러니 새삼스레 네덜란드 방식이 원용될 여지는 전혀 없다.‘합의’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노조측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미 더 많은 것을 얻어놓고 있는 터에 새삼 더 낮은 수준으로 임금과 근로조건을 양보할 것인가.무언가 새로운 자리를 맡게 된 사람들이 항용 저지르는 오류 중의 하나는 기존의 제도나 구조를 ‘잘 알지 못해’ 자신의 아이디어가 마치 전적으로 새로운 것인 양 착각하게 되는데 이정우 실장 역시 그런 오류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자신이 하면 사랑이요, 남이하면 불륜이라는 식이면 사회적 합의 운운하는 그럴듯한 구상은 언제나 허공을 맴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