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 매출감소, 리치몬트 올 영업이익 40% 줄어들 것으로 전망

미국 명품시장이 주춤하고 있다. 명품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프라다 신발 판매가 떨어지고, 루이비통 핸드백 수요도 줄고 있다. 몇 년째 지속되고 있는 불황과 이라크전쟁, 그리고 최근 유로화 강세까지 겹치면서 명품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일반적으로 명품시장은 경기침체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명품회사들마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제 명품회사들이 생존을 위해 지금까지 유지했던 전략을 다시 점검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지금까지 명품회사들은 불황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명품관련 시장조사기관인 유나이트에 따르면 전세계가 불황에 허덕이던 지난해에 선두 18개 명품회사들의 매출은 전년 대비 6.6% 성장했다.2001년은 다소 낮았지만 4.4%로 여전히 성장세를 보였다. 닷컴 열풍에 힘입어 경기가 활기를 띠었던 지난 99년과 2000년은 무려 17.9%를 기록했다. 지난 90년에도 10~20%의 성장률을 이어갔다.올해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 명품시장의 부진으로 세계 명품시장이 동반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명품시장. 세계 명품시장에 대한 영향력이 크다. 실제로 명품회사 순위 1위인 LVMH의 전체 매출에서 미국시장이 차지하는 비율이 27%로 가장 크다.(표참조) 유럽은 20%, 일본이 15% 순이다.명품회사들의 매출도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명품시장 점유율 3위인 구치는 올 1/4분기 매출이 120만유로로 전년 동기 대비(3,550만유로) 97%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몽블랑과 카르티에로 유명한 스위스의 리치몬트는 올해 영업이익이 40%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다른 명품회사들도 구치만큼은 아니지만 매출감소로 고민하고 있다.올해 명품회사들의 매출부진 원인은 장기불황, 이라크전쟁, 사스(SARS)의 확산, 유로화 강세에서 찾을 수 있다. 명품 소비자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던 여행객들이 사스와 이라크전쟁 여파로 여행을 꺼리면서 명품시장이 타격을 받았다.유로강세는 가뜩이나 주춤하고 있는 명품시장에 결정타를 날렸다. 명품 대부분이 유럽에서 생산되는 만큼 유로강세는 주요 명품 소비시장인 미국과 일본에서 가격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올 들어 유로는 달러에 비해 12.7%, 엔화에 대해 10.9% 절상됐다.가짜 명품의 유통도 명품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세계적으로 명품의 8%가 가짜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액으로 3,750억달러에 달한다. 가짜 명품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미국 내에서 지난 한 해 동안 적발된 가짜 명품 규모는 1억달러. 지난 2001년 5,700만달러와 비교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할인정책으로 위기극복명품회사들은 눈앞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할인정책에 나서고 있다. 유나이트가 명품을 14개 품목으로 나눠 조사한 결과 단 한 품목만을 제외하고 소비자의 대부분이 할인 명품을 산 것으로 나타났다.그러나 전문가들은 명품 할인정책이 장기적으로 명품시장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할인정책이 브랜드이미지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명품은 실제 가치보다 브랜드 가치가 훨씬 중요하다. 한 번 명품 브랜드이미지를 잃어버리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워 장기적으로 부메랑이 돼서 돌아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명품시장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상황이 그렇게 암울한 것은 아니다. 명품시장은 일반소비재시장과 성격이 다소 달라 위기를 극복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전문가들은 명품시장 회복을 위해 우선 중산층 공략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나이트의 팸 댄지거 사장은 “명품시장이 경제상황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다.특히 명품의 주 소비자층인 고소득자들은 경기변동에도 소득변화가 크지 않다. 그렇지만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지난 10년 동안 명품시장이 정말로 성장한 시기는 중산층이 참여했을 때라는 사실이다.모든 미국인들은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명품을 사고 싶어 한다. 그들이 명품 가방 하나, 명품 신발 하나를 사면서 시장에 참가해야 시장이 성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전문가들은 또 명품의 기능적 만족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원래 명품은 정서적 만족감이 가장 큰 무기였다. 최근에는 명품 소비자들의 요구가 달라지고 있다. 정서적 만족감과 함께 기능적 만족감까지 원하고 있는 것이다.보스턴컨설팅그룹의 마이클 실버스타인씨는 “새로운 명품 소비자들은 단지 고가명품이라는 만족감뿐만 아니라 다른 제품과 확실히 구분되는 실질적인 우수성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전문가들은 명품시장 활성화를 위해 7,600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연령이 45~65세인 베이비붐 세대들은 인생에서 수입이 가장 많은 시기다. 자녀들도 성장해 교육비를 포함한 양육비 부담이 덜하다.베이비붐 세대가 자신들을 위해 더 많이 투자할 수 있는 시기가 온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명품을 살 수 있는 여유가 있고, 기꺼이 지불할 용의도 있어 최대의 명품 소비자로 떠오르고 있다.프랑스 리서치회사 IPSOS의 스테판 트루치씨는 “명품은 기분을 파는 것”이라며 “소비자들이 명품을 쓰면서 느끼고 싶어 하는 기분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일부에서는 명품시장이 조만간 회복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를 내놓고 있다. 메릴린치 이탈리아의 명품시장담당 애널리스트인 파올라 듀란테씨는 “올해 전망이 여전히 불확실한 것은 사실이지만 명품시장은 2005년까지 5%의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미국 명품시장에 대한 전망은 더 밝은 편이다. 이탈리아의 명품회사인 브루노마글리 미국 현지법인의 피터 그루터리히 사장은 “현재 미국 경기침체는 명품시장에 큰 장애요소가 아니다”며 “미국시장에서 브루노마글리의 매출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그는 또 “미국은 가장 중요한 시장이며 오히려 지금이 시장공략을 위한 적기”라고 덧붙였다. 브루노마글리는 향후 1년 안에 미국 내 점포 9개를 추가로 열 예정이다.유나이티의 댄지거 사장은 “향후 미국에서 명품시장은 가장 전망 있는 분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미국 명품 장에서는 최근 한 가지 관심을 끄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소비자들이 미국산 명품에 눈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명품 가죽제품으로 유명한 코치는 지난 2001년과 2002년 모두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유럽회사들이 선도하던 세계 명품시장이 주춤한 틈을 타 미국산 명품이 발돋움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해외 소비자들 사이에서 미국산 명품이 인기를 끌면서 수출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미국이 명품 최대 소비국에서 명품 생산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