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적자를 벗어나고 싶다면 민간의 지혜를 빌려라.’통념적으로 볼 때 문화계는 비즈니스와 거리가 먼 곳이다. 창의와 자유를 존중하는 예술작품을 다루다 보니 모든 것을 숫자로 따지고 살펴야 하는 비즈니스 감각이 부족하기 일쑤다.문화계 가운데에서도 국가, 지자체 등 공공부문이 관련된 곳은 사정이 한술 더 뜬다. 수익, 비용개념을 배제한 채 작품을 다루고 시설을 운영하다 보면 비즈니스 마인드는 딴 세상 이야기가 된다.넘치는 달러를 주체 못하던 일본이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 사이에 무더기로 세운 호화 문화시설, 그중에서도 도쿄의 상당수 문화공간들은 낭비와 비능률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돼 왔다. 입지와 교통여건을 감안하지 않고 호화롭게 꾸며놓기만 한 미술관, 오페라공연장 중에서는 인건비도 건지지 못하는 곳이 적잖은 상태다.하지만 이런 문화공간을 수익체질로 탈바꿈시키고 비즈니스의 보고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실험이 최근 도쿄에서 진행 중이다.조례, 문화시설 비즈니스 발목 잡아도쿄도 현대미술관은 지난 6월14일부터 ‘스튜디오 지브리 입체조형물전’이라는 이름의 기획행사를 펼쳐 화제가 되고 있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한국에서도 대박을 터뜨린 만화영화 <센과 치히로의 실종 designtimesp=24056>을 만들어낸 일본 최고의 애니메이션 제작회사.2002년 5월부터 관장을 맡고 있는 우지이에 세이이치로 일본텔레비전협회 회장이 “관객을 모으려면 강한 펀치를 날려야 한다”며 <센과 치히로 designtimesp=24059>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씨를 설득해 기획한 행사가 이 입체조형물전이다.이 행사에는 일본 미술계의 찬반양론이 적잖았다. 아무리 관객이 없어 고민하기로서니 어떻게 만화영화를 현대미술과 연결시켜 행사를 열 수 있느냐는 것이 반론이었다.그러나 우지이에 회장은 “미술관의 지명도를 높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어디 있는 곳인지를 알리려면 이만한 행사가 없다”며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였다는 후문이다.우지이에 회장은 젊은 여성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의 일류 레스토랑을 지난 4월 미술관에 유치시키는 등 파격적 카드를 잇달아 내놓으며 ‘관객을 잡기 위해서는 미술관도 발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앞장서 보여주고 있다.도쿄도 현대미술관은 400억엔 이상의 공사비가 들어갔지만 운영상태가 취약해 지자체 살림에 큰 짐이 돼온 것이 사실. 이시하라 도쿄도지사는 40년 친구인 우지이에 회장의 비즈니스 감각을 높이 사 신통술을 발휘해 달라고 간청한 것으로 알려졌다.2000년 11월에 후쿠와라 요시하루 시세이도 명예회장을 관장으로 영입한 도쿄도 사진미술관은 전시회를 열 때마다 예상 수입과 지출이 담긴 보고서를 학예 실무자에게 작성, 제출하도록 한다.예술작품 속에 묻혀 사는 학예관들도 관객을 고객으로 생각하고, 어떤 고객들이 찾아올지 미리 예상해 서비스 정신을 갖추라는 신호다. 이 사진미술관은 이 제도를 도입한 후 학예관들이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다른 화제에 대해서도 관객에게 자상히 설명하게 됐고, 경비원들도 더 친절해지는 등 효과가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지난 한해 동안 입관자수는 36만4,300명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 도쿄도의 지원이 크게 줄었어도 재정적으로는 더 튼실해졌다는 것이 미술관측의 자체 평가다. 공공문화시설의 비즈니스 마인드 접목은 음악계에서도 활발, 국립오페라극장은 히구치 히로타로 전 아사히맥주 회장을 이사장으로 맞아들인 후 무대 주변을 견학하는 관광상품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이 상품은 공연이 없는 날 음악애호가들을 극장 안으로 안내하면서 평소 가까이 볼 수 없었던 무대 주변과 음향장치 등 시설을 견학, 오페라감상의 묘미를 높여준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기도 했다.일본 공공문화시설의 비즈니스 마인드 수혈에 걸림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입장료의 상한을 정해놓거나 전시내용에 따라 요금을 변경할 수 없도록 한 조례다. 패션쇼 등 미술전시 외의 목적에 시설을 사용하려면 3개월 전에 사용허가서를 내야 한다.우지이에 회장은 “좀더 문화시설에 재량권을 줘야 비즈니스 마인드가 활성화될 수 있다”며 “지나치게 경직된 조례의 문제점을 지자체 당국에 알리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