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거래소시장에서 최대주주가 바뀐 기업은 모두 57개사. 이중 두 번 이상 바뀐 기업이 6개사, 세 번 이상 3개사, 네 번 이상이 1개사로 집계됐다. 지분처분이 전체의 32%, 구조조정 관련이 21%, 지분인수 20%, 계열사 내 조정이 17%로 나타났다. 실질적인 기업M&A라고 할 수 있는 지분처분과 지분인수가 52%인 29개사에 달했다.코스닥시장에서의 최대주주 변경은 정정을 포함해 올해 들어 7월10일 현재까지 무려 200개사에 달했다. 이중 약 30%인 60여개사가 M&A로 인한 주주의 변경으로 집계됐다. 거래소시장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은 수치이다.가히 M&A 열풍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코스닥 등록기업의 M&A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코스닥 기업의 M&A가 급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거래소 상장기업은 대부분 업력이 오래된 업체가 많다. 성장성은 떨어지더라도 매출이 안정적인 기업들이다. 반면 코스닥 등록기업들은 대부분 벤처기업이다. 말 그대로 모험기업인 셈이다. 안정성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아이템 하나만 잘 선택해서 기술력을 인정받으면 속칭 대박이 나는 사업모델이다. 한마디로 위험성이 큰 만큼 성장성이 막대하다는 것이다.김대중 정부는 IMF의 극복해법을 벤처육성에서 찾았다. 몇몇 대기업보다 건전한 중소기업이 나라의 근간을 이뤄야 국가경제가 원활한 발전을 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에 따라 IMF 이후 벤처 광풍이 휘몰아쳤다.기술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사업계획서만으로도 금융기관에서 자금조달이 가능했다. 일반투자자들 역시 벤처투자에 몰입했다. 새롬기술과 다음커뮤니케이션에 투자한 일반인들이 적게는 수십 배, 많게는 수백 배 차익을 남겼다는 기사가 신문지면을 장식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코스닥시장의 등록도 덩달아 용이해졌다. 어느 정도의 기술력과 매출만 이뤄지면 너도나도 코스닥시장의 문을 두드렸고 정부도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으면 등록을 허용해줬다. 수많은 신생벤처기업들이 코스닥시장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청년졸부들이 속속 등장했고 이들의 무분별한 행태가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그러나 이 같은 광란의 파티는 오래가지 못했다. 2000년 초반을 고비로 주식시장이 침체국면에 빠져들면서 코스닥 등록기업들의 주가거품이 빠지기 시작했다. 경기도 하강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기업들이 투자규모를 줄여나가자 코스닥 기업들에 서서히 적신호가 켜졌다.한두 가지 아이템에 의존하던 기업들이 경기가 나빠져 공공기관이나 기업들이 투자규모를 줄이자 매출에 애로를 겪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이 2년 이상 이어지면서 한계기업들이 속출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더 이상 기업활동을 영위하기 힘들어진 기업들이 매물화되면서 M&A시장에 속속 나오고 있다.한 M&A전문가는 “현재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는 코스닥 기업들은 줄잡아 30여개 정도 될 것이다”며 “시간이 조금 지나면 한계상황에 봉착한 기업들이 추가로 매물화돼 대량으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고 전망했다.기업을 인수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부실하지만 가능성 있는 기업을 인수해서 자본과 기술을 투자, 경영정상화를 도모하겠다는 사람과 기업인수를 통해 캐피털게인(자본이득)이나 회사의 자산을 빼돌리려는 기업사냥꾼들이다. 일명 ‘선수’로 통하는 기업사냥꾼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자기자본이 거의 없거나 있어도 턱없이 적은 자본으로 인수를 시도한다는 것이다.이 ‘선수’들은 사채시장에서 자금을 조달, 기업을 인수한 후 기업 내부자금을 이용해 사채를 되갚는 방법을 쓴다. 그야말로 거의 무일푼으로 기업사냥을 하는 셈이다. 이들은 주가조작도 서슴지 않는다. 기업인수 공시 전후로 주가를 최대한 끌어올린 후 일반투자자들이 따라붙으면 주식을 처분, 막대한 시세차익을 남긴다.최대주주 변경 후 부실기업 속출멀쩡했던 회사들이 경영권이 넘어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부도가 나는 경우는 거의 대부분 ‘선수’들이 회사를 인수한 후 회사 자산을 빼돌렸기 때문으로 보면 틀림없다.기라정보통신, 화인썬트로닉스 등이 대표적인 기업이다. 이들 기업은 M&A가 되기 전에 제법 큰 수익을 냈었다. 그러나 인수자들이 경영에는 신경 쓰지 않고 어떻게 하면 회사돈을 빼낼 것인가에만 골몰했기 때문에 부실기업이 되고 말았다.지난 4월 부도난 이론테크놀로지 역시 대주주가 사채시장에서 자금을 끌어쓴 후 주식을 담보로 맡겼다가 주가가 예상보다 오르지 않자 전주들이 주식을 시장에 내다팔아 주가가 곤두박질쳤고 그 와중에 대표이사가 사채를 막기 위해 회사돈을 횡령하면서 부도가 난 케이스다.지난해 M&A가 성사된 거래소 상장기업 A사, 올해 최대주주가 바뀐 코스닥 등록기업 K사, E사 등도 사채자금을 이용해 M&A가 성사됐다는 것은 업계에서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코스닥 등록기업 E사의 M&A에는 증권사 출신의 J씨가 관여됐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J씨는 앞에서 언급한 문제 기업에 모두 관여했다. 이제는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뒤에서 모든 실질업무를 총지휘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E사 역시 잘못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예의주시하고 있다.최근 경영권분쟁이 야기된 광명전기는 이모 사장이 자기자금 없이 차입금으로 회사를 인수한 후 회사 자금을 빼돌려 차입금을 변제한 것이 회사 직원들에게 적발돼 문제가 된 경우이다.이모 사장은 현재 직원들의 고발로 검찰에 구속된 상태이다. 지난 연말 M&A된 베네데스 역시 같은 경우다. 베네데스를 인수한 최모 회장은 자기자금은 거의 없이 사채를 무리하게 끌어들여 회사를 인수한 후 차입금을 갚기 위해 회삿돈 100여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현재 검찰에 구속됐다.사채자금으로 기업을 인수하면 구조적으로 정상적인 회사경영을 할 수 없다. 사채자금을 상환해야 하고 또 막대한 이자까지 감당해야 하므로 무리를 해서라도 회사 자산을 빼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회사는 부실화될 수밖에 없고 자칫 잘못해서 유동성 위기에 몰릴 경우 부도가 불가피한 것이다.물론 M&A의 긍정적인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자금이나 기술력의 한계에 봉착한 기업이 새로운 주인을 영입해서 재도약하는 경우를 우리는 주위에서 흔히 보아왔다.정부도 벤처기업의 M&A 활성화를 위해 소규모 합병시 미공개기업의 코스닥 등록요건을 완화하고 합병 및 신규등록시 최대주주와 임원의 일부 지분변동을 허용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그러나 문제는 건전하고 정상적인 인수자보다 비정상적인 기업인수자들이 많다는 데 있다. 더욱이 이들의 불법적인 행태의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투자자에게 돌아간다. 따라서 감독당국의 보다 치밀하고 체계적인 감시감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