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괄 연봉 인상·스톡옵션 내걸고 인재 잡기…숫자는 늘었지만 실무형 인재는 품귀 현상
[비즈니스 포커스] 게임업계를 시작으로 연일 쏟아지는 개발자 연봉 인상 소식에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지난해 언택트(비대면) 비즈니스의 성장으로 거둔 이익을 인재들에게 환원함으로써 동반 성장하겠다는 취지로 여겨진다.하지만 중소·중견기업 개발자들에겐 최근의 현상은 그저 ‘그림의 떡’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처우의 양극화가 심해진다면 중소기업들이 개발자를 채용하는 것이 더더욱 힘들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개발자 유치전
‘개발자 유치전’에 불을 붙인 것은 게임업계다. 지난 2월 1일 넥슨이 신입 개발자 초봉 5000만원에 재직자 연봉 일괄 800만원 인상을 발표한 후 중견기업 컴투스와 게임빌도 연봉과 초봉 인상을 발표했다. 여기에 ‘배틀 그라운드로’로 유명한 크래프톤이 올해 개발직군의 연봉을 2000만원 올린 6000만원으로 책정하며 게임업계 최상위 수준의 대우를 약속했다. 최근엔 엔씨소프트도 연봉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엔씨소프트는 3월 11일 전 개발직군의 연봉을 최소 1300만원 인상한다고 밝혔다. 전 직원의 연봉을 일괄 인상하는 동시에 높은 성과를 달성한 우수 인재에게는 추가 연봉 인상을 진행한다.
게임업계가 촉발한 개발자 몸값 올리기에 플랫폼 기업들도 가세했다.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은 개발자의 최저 연봉을 5000만원으로 책정했다. 부동산 정보 애플리케이션 직방도 신입 개발자의 초봉을 6000만원으로 책정하고 재직 중인 개발직군의 연봉을 2000만원 인상하기로 했다. 또 경력 개발자에겐 기존 직장의 1년 치 연봉을 ‘사이닝 보너스(계약금)’로 지급한다.
기업들이 연봉 상승을 내건 것은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의 영향으로 정보기술(IT)·플랫폼업계의 실적이 좋아진 영향도 있다. 벌어들인 만큼 직원 처우 개선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급격히 성장 중인 IT·플랫폼 스타트업들이 인재 유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경쟁에 불이 붙었다. 특히 업계에서는 핀테크 서비스 ‘토스’를 운영 중인 ‘비바리퍼블리카’의 채용 전후 개발자에 대한 처우가 크게 달라졌다고 말한다. 비바리퍼블리카가 개발자의 처우를 높이면서 다른 기업들 또한 덩달아 복지가 좋아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해 하반기 언택트 비즈니스로 급격히 성장한 네이버와 카카오 등 IT 기업들이 개발자를 대거 채용하면서 인력 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여기에 유통·엔터테인먼트·금융 기업들도 개발자 채용에 나섰다. 이들은 예전이라면 IT업계와 인재를 두고 경쟁할 산업군은 아니지만 최근 코로나19로 언택트 비즈니스가 성장하면서 개발자들이 대거 필요해진 것이다. IT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부장급 개발자 A 씨는 “IT 대기업들이 지난해부터 인력을 스카우팅하면서 업계 전체가 구인난에 빠졌다”며 “올해 초부터 중소·중견기업들은 특히 대리급~과장급 개발자 인력을 뽑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개발자들 “처우 개선은 ‘그림의 떡’”
개발자들이 선호하는 기업들은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다. 최근엔 당근마켓과 토스의 인기도 높아 ‘네카라쿠배당토’로 분류된다.
‘네카라쿠배당토’의 선호도가 높은 이유는 처우 뿐만은 아니다. 개발자들은 이들이 IT 조직이 갖는 중요성을 인정해 준다고 말한다. A씨는 “일반 기업은 IT 조직을 영업 조직이 가져 온 일감을 수행하는 수동적인 부서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며 “반면 IT 기업은 IT가 근간을 이루거나 IT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투자해 개발자들이 일하기 더 좋은 환경”이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 인기 있는 IT 기업은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도전적인 개발자들이 선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재 양극화 현상’은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통 산업군에 속하는 중소기업이 인력 유치전의 최대 피해자가 될 것이란 예측이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개발자가 높은 생산성을 낼 수 있는 개방적인 조직 문화가 갖춰져 있지 않고 연봉 인상 등 처우 개선도 쉽지 않다. 여기에 대형 IT 기업처럼 IT 조직을 우대해 주는 기업 문화도 기대하기 어렵다. 자연스럽게 대기업과 IT 기업-IT 스타트업-중소기업 순으로 개발자들이 몰린다. ‘디지털화’가 중요한 시기에 개발자 채용이 여의치 않으면 중소기업들의 성장에도 브레이크가 걸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엔터프라이즈 AI 솔루션 스타트업 ‘엑스브레인’의 최진영 대표는 “공급 부족을 넘어 대기업 및 IT 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발생한다는 게 주목할 만한 부분”이라며 “대형 IT 업체들이 연봉을 대폭 인상하면서 대기업도 연봉 인상을 단행했지만 중소기업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고급 인력이 유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초봉 6000만원’부터 ‘스톡옵션’까지 너도나도 처우 개선을 내걸고 있는 상황에서 개발자들은 달라진 현실을 실감하고 있을까. 현직 개발자들은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3년 차 개발자인 B 씨는 “대형 IT 기업들이 처우 개선을 주도해도 대부분의 개발자들이 일하는 중소·중견기업들은 인건비 절감이 중요해 처우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대형 인재를 스카우트하지 않는 이상 처우 개선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개발자 몸값이 치솟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른바 ‘코딩 열풍’이 불면서 사설 학원과 기업에서 운영하는 교육 코스 등이 많아졌다. 비전공자들도 개발자가 될 수 있어 ‘숫자’는 늘었지만 사실상 기업이 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개발자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10년 차 팀장급 개발자는 ‘씨가 말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개발자는 주로 학력보다 실력이 우선시되는 직군이다. 부장급 개발자 A 씨는 “대리나 과장급을 채용할 땐 과거 프로젝트의 유형과 그 프로젝트 내에서 얼마나 깊은 부분까지 관심을 갖고 파악했는지가 우선시된다”며 당장 실무에 투입할 수 있을 만한 인재가 드물다고 말했다. 이처럼 모든 산업군의 기업이 개발자를 필요로 하지만 업무를 이끌어 갈 인력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하는 기업도 있다. 우아한형제들은 개발 인재를 양성하는 무료 교육 프로그램 ‘우아한테크코스’를 운영한다. IT업계 개발자 인력난 문제를 해결하고 업계 전반에 필요한 우수 개발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2019년부터 시작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현업에서 기대하는 실무 역량과 대학 등 교육 기관에서 배우는 프로그래밍 지식 간 차이가 크다는 것에 주목해 기업에서 바로 일할 수 있는 실무형 개발 역량을 갖추는 것에 중점을 뒀다. 2019년 처음 진행한 1기에는 1000여 명이 지원, 52명이 최종 선발돼 그중 45명이 교육을 수료했다. 수료생 중 23명은 우아한형제들, 15명은 네이버·카카오 등 주요 IT 기업에 신입 개발자로 입사해 87%에 달하는 취업률을 기록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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