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위기에서 살아남은 한국 유일 국적 선사...장기 운송 벌크선 늘려야 안정적 성장 가능

[비즈니스 포커스]
‘10년 적자 터널’ 벗어난 HMM…고운임 순풍 올해도 계속될까
국적 선사 HMM이 창사 44년 만에 최대 실적을 거뒀다. 2020년 HMM의 영업이익은 9808억원으로 10년 만에 흑자 전환을 기록했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6% 증가한 6조4133억원, 당기순이익은 1240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이는 HMM의 전신인 현대상선이 창립된 1976년 이후 최대 실적이기도 하다.

시장의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은 ‘어닝 서프라이즈’였다. 2016년 한진해운의 파산과 함께 법정 관리에 들어간 이후 약 4년 만에 부활의 신호를 쏘아 올렸다. 지난해 급등한 컨테이너 운임과 함께 그간 HMM의 비용 절감이 효력을 보였다는 분석이다. HMM이 원양 선사로서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었던 비결과 향후 과제를 짚어 봤다.
‘공급 조절’로 급상승한 운임
“결국 선사의 실적을 결정짓는 것은 ‘운임’이다.” 컨테이너 선사 관계자들은 운임의 중요성을 이렇게 표현한다. 선사에서 화물 유치에 열심히 나서더라도 고운임의 효력 만큼은 못하다는 뜻이다.

지난해 HMM의 호실적의 출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도 불구하고 선방했던 운임에 있었다. HMM은 코로나19의 여파로 지난해 컨테이너 적취량은 전년 대비 9% 감소했지만 미주와 유럽 노선 운임이 연초 대비 3배 폭등하면서 HMM의 이익 체력이 크게 개선됐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전 세계 경제는 타격을 입었다. 수출에 차질이 생기면 물동량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지난해 2분기부터 선사들은 물동량이 하락할 것에 대비해 공급 감축을 시행했다. 빈 선박을 찾기가 어려워지자 자연스럽게 운임이 상승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2021년 해운 전망 국제 세미나’를 통해 지난해 컨테이너 운임이 상승한 원인으로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 재고율 하락, 상품 소비 증가’를 꼽았다. 최건우 KMI 전문 연구원은 “선사들이 미국과 유럽 등의 원양 항로에서 300회 이상의 임시 결항을 실시하는 등 공급을 축소해 운임을 방어했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2분기 물량 재고율이 하락하자 정상 수준의 회복을 위해 3분기에 들어서자 아시아~북미 노선을 중심으로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다.

컨테이너선에선 ‘비수기’로 분류되는 4분기에도 블랙프라이데이, 중국 춘제의 여파로 미주와 유럽 노선의 물동량이 크게 급증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컨테이너선 시황의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2641.87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초대형 선박·얼라이언스 가입’으로 비용 절감
뭐니 뭐니 해도 지난해 HMM의 성과 중 하나는 세계 3대 해운 동맹의 하나인 ‘디 얼라이언스’ 정회원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간 한국 선사는 2016년 한진해운 도산 이후 글로벌 해운 시장에서 영향력이 위축되는 등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일하게 남은 원양 선사인 HMM의 해운동맹 합류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지난해 4월 ‘디 얼라이언스’ 정회원에 합류한 HMM은 글로벌 해운 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물론 비용 구조 개선과 서비스 항로를 다변화했다. ‘디 얼라이언스’는 전 세계 78개 항만에 기항하며 총 33개의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HMM은 그중 27개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속적인 대형 선박의 투입도 비용 절감에 큰 몫을 했다. HMM은 2018년 정부의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한국 조선 3사와 약 3조1500억원 규모의 초대형 선박 20척의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 2년이 지난 지난해 4월 세계 최대 규모인 2만4000TEU(20피트의 표준 컨테이너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급 컨테이너선 ‘HMM 알헤시라스’호를 시작으로 12척의 선박을 인도 받았다.

그간 글로벌 선사들은 초대형 선박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이룸으로써 해운 시장의 불황을 이겨냈다. 2016년부터 한국 선사들이 위기를 겪으면서 HMM은 초대형 선박 발주 경쟁에서 다소 뒤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HMM은 올해 연이어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인도받고 선적량을 크게 늘리며 이러한 우려를 떨치게 됐다. 현재 HMM의 초대형 컨테이너선들은 31항 차 연속 만선을 기록 중이다. 여기에 상반기 현대중공업에서 건조 중인 1만6000TEU급 컨테이너선 8척까지 인도받는다면 HMM의 원가 구조는 더욱 개선될 전망이다.
‘10년 적자 터널’ 벗어난 HMM…고운임 순풍 올해도 계속될까

향후 관건은 ‘운임 흐름’과 벌크선 부문
해운 시황은 글로벌 경제의 흐름에 영향을 받는다.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지만 올해는 여전히 코로나19의 여파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세계 경제의 흐름은 아직까지는 불안정하다.

지난해 호조를 보였던 고운임 기조가 여전히 이어질지는 컨테이너 해운 시장의 최대 관심사다. 전 세계 해운 관련 기관들은 2021년 물동량이 소폭 상승할 것으로 전망한다. 코로나19가 진정되면 서비스와 투자가 활성화되면서 경기가 회복될 것이란 예측이다. 동시에 ‘보상 소비’로 하반기부터 컨테이너 화물 수요가 급증할 가능성도 있다. 세계 주요 해운 조사 기관인 드류리와 클락슨은 올해 물동량 상승률을 각각 6.6%, 5.5%로 예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해 운임은 손익분기점을 웃도는 수준에서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최건우 KMI 전문 연구원은 “만약 운임이 하락하면 선사들은 얼라이언스를 중심으로 공급 축소를 통해 운임을 방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운임을 시장 상황에 맡긴다지만 HMM으로서는 현재 컨테이너선에 쏠려 있는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간 법정 관리와 시장 불황으로 인해 HMM의 벌크선 부문은 크게 줄어들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HMM의 컨테이너와 벌크 부문 매출액 비율은 9 대 1이다.

벌크선 계약은 장기 운송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비수기에도 안정적으로 선대를 운영할 수 있다. 이에 따라 HMM은 향후 벌크선 부문의 비율을 높일 전망이다. 지난 2월 28일 트레이드윈즈 등 해운 외신에 따르면 HMM은 30만 톤급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 3척을 장기 용선하는 데 2433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뒤 이어 2월 26일 GS칼텍스와 6300억원 규모의 원유 장기 운송 계약도 체결했다. GS칼텍스의 중간 지주사인 GS에너지가 현대삼호중공업에 발주한 VLCC 3척을 인도받으면 HMM이 2022년부터 10년간 이들 선박을 임대해 GS칼텍스의 원유를 중동에서 한국으로 수송한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