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길을 간다는 문재인 정권은 소득 주도 성장을 선택했다. 정부가 지출을 늘려 민간 소비를 촉진하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내수 주도 성장의 논리다.
대기업·제조업 중심의 수출 주도 성장이 국내외 환경 변화로 약효가 떨어져 보완이 필요했다. 중국이 급성장하면서 한국 수출은 고인건비·저생산성으로 경쟁력이 약화됐고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과 보호무역으로 수출 시장도 위협받았다.
그렇다고 내수 주도 성장이 대안이 될 수 없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핑계를 돌리지만 그 이전인 2017년 소득 주도 성장 도입 이후 경제성장률은 계속 하락했다. 수출은 물론 민간 일자리가 감소하고 소득 불평등이 커지면서 내수도 망가졌다. 공공 단기 아르바이트와 복지 지출을 늘리면서 국가 부채만 지난 4년 사이 1000조원으로 폭주했다. 작년에는 정부 소비가 5% 늘었지만 민간 소비는 마이너스 5% , 수출도 마이너스 2.5%로 감소해 경제 성장은 마이너스 1% 역주행했다.
극일을 넘어 항일을 외친 문 정권은 일본의 내수 주도 성장 실패를 답습했다. 일본은 한국처럼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가까이 되던 1990년대 초 수출 주도 성장을 내수 주도 성장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고령화로 내수 시장이 위축되고 반면 세계화로 수출 시장은 확대되는데 이와 반대의 길로 가면서 성장이 멈춘 ‘잃어버린 20년’을 맞았다. 수출 비율이 낮아지고 소비와 투자도 제자리걸음하는데 복지 지출과 국가 부채만 급증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집권하면서 수출을 되살리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복원하지 못했다. 통화 확장으로 엔저를 만들어 수출 가격 경쟁력을 높여 보려고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또 재정 확장으로 소비를 촉진하려고 했지만 저성장은 계속됐다. 내수 주도로 성장한다고 혁신을 멀리해 정보통신기술(ICT) 활용이 뒤처졌고 새로운 상품을 내놓지 못했다. 또 구조 조정을 외면해 저생산성·저임금 구조가 굳어지면서 경제가 활력을 잃었다.
한국에서 내수 주도 성장은 앞으로도 성공하기 어렵다. 내수 주도 성장이 성공하려면 내부 혁신 동력이 있고 늘어난 공급을 흡수하도록 내수 시장의 수요 확대가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보다 규제가 많고 노동 시장이 경직적이어서 내부 혁신이 더 어렵다. 인구 규모는 일본의 절반에 지나지 않고 고령화 속도는 일본보다 빠르며 고령층의 빈곤화는 더 심각하다. 한국이 할 일은 수출 주도 성장 모델을 재정비하는 것이다. 수출은 시장의 해외 확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수출은 외부 자극으로 혁신을 촉진해 생산성과 임금을 높이고 고용이 늘게 한다.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의 분석(2017년)에 따르면 수출 기업은 내수 기업보다 혁신의 성공 비율이 2배 정도 높고 정규직 일자리 창출도 2배 정도 많으며 임금 수준은 수출 기업이 내수 기업보다 30% 높다.
한국의 수출 경제 모델은 중국 리스크를 줄이고 중소기업·서비스의 수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두 가지는 깊은 관련이 있다. 중국은 자유 무역을 표방하지만 중상주의적 보호 무역으로 한국 대기업의 수출을 위협한다. 반면 중국의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소비가 다양화돼 한국 중소기업·서비스의 수출 기회는 커진다. 중국뿐만 아니라 신흥국의 성장과 글로벌 중산층의 증가는 한국이 수출 주도 성장으로 다시 도약할 수 있는 호재다. 수출 말고 길이 있나?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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