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성 ‘반도체 제국의 미래’ 저자 인터뷰

[인터뷰]
정인성 작가 제공 / 유튜브 캡처
정인성 작가 제공 / 유튜브 캡처
‘반도체 제국의 미래’를 쓴 정인성 씨는 반도체 개발 검증 업무를 맡았으며, 현재는 인공지능 개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정 씨는 이번 각국의 반도체 굴기가 “TSMC나 삼성전자와 같은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과 갑자기 반목하게 됐을 때 최소한의 산업 기반을 지켜야 한다는 걱정의 발로”라며 “‘반도체의 안보적 가치’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9년 ‘반도체 제국의 미래’를 썼다. 작금의 상황을 예상했나.
“대규모 공급난이 발생할 것이란 예상은 하지 못했지만 전 세계가 반도체의 안보적 가치를 깨달을 것이란 것은 알았다. 정확하게는 (각 국가들이) 반도체 제조 역량의 안보적 가치를 알게된 것이다. 화웨이의 자회사인 하이실리콘도 세계 내로라하는 팹리스였지만 대만의 TSMC에 생산을 위탁하면서 결국 (정치적 문제로) 스마트폰 생산에 직격탄을 맞았다. 화웨이 사건을 놓고 한편에선 미국이 중국의 기를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또 다른 쪽에선 자체 제조 역량(파운드리)이 없으면 큰 피해를 보게 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특히 팹리스 기업으로 먹고사는 국가들이 말이다.”

-반도체 부족으로 각국이 반도체 굴기에 나섰다. 현 상황을 어떻게 보나.
“TSMC가 세계 2위 패권국인 중국의 기술 기업(화웨이)을 망가뜨리고도 현재 사상 최대 실적을 내는 등 부작용 없이 잘나가고 있다. 반도체 특히 제조 기술이 세계 2위 국가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다른 국가들도 당연히 ‘IF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했다. 이번 반도체 굴기는 아시아 대 서방의 구도가 아니라 TSMC나 삼성전자와 같은 파운드리 기업과 갑자기 반목하게 됐을 때 최소한의 산업 기반을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는 걱정의 발로라고 본다.”

-자국주의 현상이 앞으로 지속될 것으로 보나.
“반도체 기술이 성능을 높이고 부가 가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이 거대한 파운드리 기업들이 전 세계적 수요를 감당해 규모의 경제를 만들고 수많은 팹리스들이 엮이는 생태계를 필요로 한다. 이 과정에서 파운드리와 팹리스 간 사실상의 표준과 언어가 생긴다.

대부분의 팹리스들은 파운드리업계 1위인 TSMC와 협력할 것을 전제로 제품을 설계한다. 팹리스들이 자신의 칩을 설명할 때 ‘TSMC의 7나노에 우리 칩 설계를 더하면 이런 성능이 나온다’고 이야기할 정도다. 반도체업계에서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은 마치 영어를 쓰지 않고 새로운 언어를 하나 만들겠다는 얘기와도 같다.

이런 생태계를 벗어나 자국주의로 간다는 것은 매우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은 물론 엄청난 비효율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고리를 벗어나려는 시도는 머신러닝이나 언택트(비대면) 등 향후 4차 산업혁명에서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더 큰 시장에서 패배를 불러오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각 국가들이) 반도체의 안보 가치를 느끼더라도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파운드리 업체를 자기 집 마당으로 초대하는 일인 것이다. 결국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각 국가 간 충돌은 실현되지 않고 다시 원래대로 냉랭하지만 협업할 것은 하는 형태로 돌아갈 것이다.”

-미 행정부가 지난 12일 삼성전자 등을 백악관으로 초대했다.
“(친미로 돌아선) TSMC가 미국에 공장을 짓기로 한 것처럼 미국으로선 중국보다 우위에 서 파운드리의 목줄을 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제조 역량을 끌어들이기 위해 자기 텃밭에 공장을 유치하거나 합자회사를 세우는 방식을 생각하는 것이다.

TSMC는 미·중 무역 분쟁의 한복판에서 친미로 돌아섬으로써 국가 위상을 높였고 외교적 이익도 얻어냈다. 하지만 그 청구서로 미국 내 5나노미터 공정 반도체 공장 설립을 주문받았다(약 15조원 투입 예정). 삼성전자도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다만 TSMC는 ‘잘했으니 당근’ 형태였다면, 삼성전자에는 ‘안 따라오면 채찍’ 형태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삼성전자가 서방 세계를 이탈해 중국을 고객으로 두게 되면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의 청구서는 삼성전자가 서방을 이탈할 가능성에 비례해 커질 것으로 본다. 한국이 일본처럼 친미가 된다면 조그마한 공장 설립으로도 상징성을 인정해 주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대규모의 투자를 주문할 것이다. 한국에선 결국 투자를 위축시키고 핵심 기술의 유출을 부를 수 있는 일이다. 대만은 TSMC가 대만 대신 청구서를 받아 미국에 제출한 셈이 됐지만 기업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에는 져야 할 부담이 너무 크다. 정부가 외교적으로 나서 미국의 불안을 덜어 주고 중국 시장 역시 버릴 수 없기에 어느 정도의 양보를 얻어 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