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인터뷰

[인터뷰]
 “핵심은 미·중 갈등…반도체는 경제 아닌 정치 문제”
김정호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는 ‘김정호의 경제TV’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일반에게 어려운 반도체를 쉽게 소개하고 있다. 김 교수는 “반도체 수급난은 경제가 아닌 정치 문제”라며 “해결하기 요원한 미·중 갈등 문제 그 사이에 반도체가, 한국이 끼여 있다”고 말했다.

-지금 반도체 부족 현상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대란이다. 반도체 부족은 지난해 4분기 차량용 분야에서 주로 일어났다. 지금은 가전제품·컴퓨터·게임기 등 모든 분야에서 반도체 품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수요가 폭발한 데다 일본 반도체 업체인 르네사스에서 화재가 났고 텍사스에 한파가 몰아 닥치면서 반도체 공장 가동이 중단됐다. 곳곳에서 반도체 수요는 폭발하는데 공급은 부분 중단되니 모든 분야에서 반도체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반도체는 B2B에서 이뤄지는 부분이라 소비자가 체감하기는 어렵다. 다만, 주문 후 발주까지 시간이 더 지체되면서 차츰 체감할 것이다. 2021년 1분기 반도체 부족으로 생산하지 못한 차량 대수를 보면 미국을 비롯한 북미 지역의 피해가 41만1000대로 가장 크다. 독일과 프랑스 등 서유럽은 28만6000대다. 아시아 지역은 23만9000대로 추산됐다.”
 “핵심은 미·중 갈등…반도체는 경제 아닌 정치 문제”
-반도체 대란, 얼마나 더 오래 갈 것으로 보나.
“쉽게 해결될 일은 아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가 증가하는 만큼 차량 반도체 수요도 계속 증가한다. 하지만 공급은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차량용 반도체는 구식 공정에서 제조하는 것이 많다. 7나노, 5나노 식의 최신 공정으로 만드는 반도체가 스마트폰이나 고성능 PC에 사용된다면 자동차는 공간이 넓기 때문에 굳이 스마트폰용처럼 극단적으로 미세 공정을 쓸 필요가 없다. 문제는 그런 구식 공정들을 위한 장비를 공급하는 기업도 별로 없거니와 반도체 생산 업체에서 차량용 반도체의 우선순위가 낮기도 하다. 게임기용 반도체가 300~400달러 수준인데 차량용 반도체는 하나당 1달러 수준에 그칠 정도로 싸기 때문이다. 사정이 급하다 보니 자동차 생산이 막힌 미국과 유럽에서 정부 외교 채널을 통해 대만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지경에 달했다. TSMC도 차량용 공급을 늘리겠다고 했지만,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0%일 정도로 매력적인 품목은 아니란 점이 문제다.”

-공급 부족 문제가 저마다의 반도체 굴기로 번졌다.
“반도체가 없어 나라 경제가 셧다운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생겼다. 그러니 자기 영토에 반도체 공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반도체 생태계에서 자립은 사실상 불가하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2001년 당시 첨단 공정의 반도체 공장이 29개였는데 급격하게 줄어들어 2020년에는 3개만 남았다. 미국의 인텔, 대만의 TSMC, 한국의 삼성전자 등 세 군데다. 반도체 제조 공장의 숫자가 줄어드는 이유는 반도체 제조에서 규모의 경제 효과가 워낙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2020년 TSMC가 대만에 건설한 3나노급 첨단 시설은 무려 20조원이 들었다. 비용의 문제뿐만 아니라 실패 가능성도 매우 높기에 파운드리 시장에 직접 뛰어들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핵심은 미·중 갈등…반도체는 경제 아닌 정치 문제”
-이 같은 지각변동이 삼성전자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외신은 이 같은 규모의 경제로, 최후의 승자는 TSMC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TSCM와의 파운드리 경쟁에서 후발 주자란 점 외에도 삼성전자의 최대 약점은 자기 비즈니스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 파운드리에 맡기자니 고객사로서는 삼성의 메인 비즈니스와 상품(스마트폰·PC·TV 등)이 겹친다. 설계에 담긴 노하우가 새나갈 가능성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삼성이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리하기는 했지만 라인을 완전히 따로 만들지 않는 한 신뢰도 부분에서 위탁 생산만을 전문으로 하는 TSMC보다 우위에 서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일본 기업과 협력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최근 TSMC는 R&D센터를 일본에 세우기로 하고 후공정 공장도 두기로 했다. 친미·일 구도에 다가가는 것은 물론 소재 분야에서 높은 경쟁력을 가진 일본 업체들과 협업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삼성전자에 일본 업체와의 협력은 정치적으로나 여론으로 보나 쉽지 않은 일이다.”

-각국의 반도체 굴기가 한국에 미칠 영향은 뭔가.
“사실 이번 공급 대란으로 한국(삼성전자)과 대만(TSMC)의 몸값이 굉장히 비싸진 상태다. 단, 정치적인 코드가 문제다. 대만은 이미 미국 편에 섰고 그 후 대만 경제는 폭발적인 성장 단계에 진입했다. 한국도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반도체 문제는 단순 경제 문제가 아닌 정치 문제다. 바이든 정부 들어 미국과 일본이 굉장히 가까워졌다. 미국이 한국을 불러들이고 있지만 우리로서는 반도체 수출의 60%를 차지하는 중국의 눈치도 봐야 한다. 만약 한국이 미국편에 선다면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 조치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미·중 갈등은 해결하기가 요원한 문제다. 점점 더 치열해질 것이다. 그 사이에 반도체 문제가 끼여 있다. 반도체를 손에 쥔 한국이 지금까지는 눈치싸움으로 미국과 중국 시장 모두를 상대했는데 바이든 정부에서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어려운 문제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