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디자인보호법 국회 통과…VR·AR 세상 속 화상 디자인으로 보호 범위 확대

[지식재산권 산책]
가상현실 속 지재권,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2045년 미국의 한 빈민촌. 아파트처럼 층층이 쌓인 컨테이너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고글을 쓰고 게임에 몰두한다. 시궁창같은 현실에서와 달리 가상현실 ‘오아시스’에서는 원하는 캐릭터가 돼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오아시스’ 속에 숨겨진 엄청난 보물을 찾기 위해 제각기 모험을 떠난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스마트 렌즈를 착용하는 순간 현실 위에 또 하나의 세계가 펼쳐진다. 동상이 갑자기 움직이는 등 가상의 캐릭터들이 등장해 나를 공격한다. 캐릭터들과의 대결에서 이겨 레벨업하면 다양한 아이템과 무기를 획득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더 강한 캐릭터들과 대결하며 게임을 진행해 간다.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최근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가상현실(VR) 혹은 증강현실(AR) 기반 기술들을 소재로 다루는 장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VR은 실제가 아닌 가상의 상황을 만들어 현실처럼 느껴지게 하는 기술이다. 실제 현실이 보이지 않도록 고글처럼 생긴 커다란 디스플레이를 착용한다.

AR은 실제 현실에 무엇인가를 덧붙여 시각적인 증강 효과를 높이는 기술이다. 맨눈으로 볼 때는 탁자 위에 아무것도 없지만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통해 보며 입체적인 동물이나 장치가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서두에서 언급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VR을 기반으로 한 것이고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AR을 소재로 제작된 드라마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포켓몬 고’와 같은 현재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는 VR·AR 기술은 향후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을 혁신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

기존 ICT 시장을 크게 변화시키고 신규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파괴적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VR·AR 기술을 ‘10대 미래 핵심 전략 기술’로 지정해 투자해 왔다.

한국에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비대면 시대’의 도래와 함께 현실과 유사한 환경에서 원격으로 협업·소통할 수 있게 해 주는 VR·AR이 새로운 플랫폼으로 부상하면서 정부 차원에서 ‘실감 콘텐츠 산업’ 육성을 위한 계획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그 중요성이 날로 커져 가고 있는 VR·AR의 지식재산권은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을까.

VR·AR을 구현하기 위한 기술이나 장비, 소프트웨어 등에 관한 지식재산권은 발명, 디자인, 컴퓨터 프로그램 저작물, 영업 비밀 등에 해당한다. 당연히 각각 관련 법률에 따라 보호받을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삼성전자는 ‘AR을 위한 스마트 콘택트 렌즈와 그 제조 및 동작 방법’이라는 명칭의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VR·AR 세상 속에 구현된 대상물의 경우 독창적인 캐릭터에 해당하는 부분은 미술 저작물로 보호될 수 있다.

이 밖에 VR·AR을 조작하기 위한 환경에 해당하는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나 아이콘·이미지 등 디자인은 보호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현행법상 저작물로 보호받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사상이나 감정의 표현을 담고 있어야(창작성이 있어야) 하고 등록 디자인으로 보호받기 위해서는 물품에 표현돼야만 한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인터페이스 등은 누가 하더라도 같거나 비슷할 수밖에 없다. 또 홀로그램 등과 같이 물품에 표현됐다고 보기 어려운 것도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월 디자인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디지털 기술 또는 전자적 방식으로 표현되는 도형·기호 등으로 기기의 조작에 이용되거나 기능이 발휘되는 것’을 화상으로 정의하면서 이를 물품의 한 유형으로 구분하고 기능성이 있는 화상 디자인을 보호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또한 화상 디자인의 온라인 전송을 사용 행위로 규정해 VR·AR에 사용되는 GUI나 아이콘 등도 화상 디자인으로 등록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VR·AR 관련 산업과 시장의 성장이 계속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개정 디자인보호법은 VR·AR 세상 속 신기술 디자인에 대해서까지 보호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관련 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계속해 VR·AR 등 디지털 기술로 창작된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송재섭 법무법인(유) 세종 변호사·법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