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이타카 인수, 글로벌 톱 라인업 확보…‘위버스’로 팬 플랫폼 산업 개척

[스페셜 리포트]
BTS·케이팝 넘어 세계로…‘1조 빅딜’ 방시혁의 도전
아티스트의 성공은 K팝 엔터테인먼트의 성장 동력이다.연습생을 발탁한 후 가수로 데뷔시켜 국내외 시장에서 성공시키는 것이 엔터테인먼트업계의 주요 캐시 카우다. 증권가에서는 아티스트들의 컴백이나 데뷔 일정을 엔터업계의 큰 이슈로 분류한다. 바꿔 말하면 핵심 아티스트의 부재는 엔터 기업의 동력이 사라짐을 의미한다. 그래서 BTS를 글로벌 아티스트로 키워낸 ‘하이브(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도 BTS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늘 숙제처럼 따라붙었다. BTS가 부재한 상황에서도 지금처럼 ‘잘나갈 수 있을까’ 라는 것이다. 최근 하이브의 행보는 이와 같은 우려를 깨고 있다. 아티스트의 육성과 함께 레이블 인수, 신규 사업 영역 진출로 영역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기업이 대중에게 익숙한 사명을 바꾸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특히 기획사가 하나의 ‘브랜드’처럼 여겨지는 K팝 시장에서는 더 큰 결단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과감하게 사명을 바꿨다. 지난 3월 19일 빅히트레이블즈 유튜브 채널에 올린 ‘뉴 브랜드 프리젠테이션’ 영상을 통해 사명을 ‘하이브’로 바꾼다고 밝혔다.

“우리가 하는 일을 설명하기에 빅히트엔터테인먼트라는 이름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밝힌 사명 변경의 의도다. 엔터테인먼트 회사지만 더 이상 ‘엔터’에만 안주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이브의 선견지명이 만든 ‘위버스’
BTS·케이팝 넘어 세계로…‘1조 빅딜’ 방시혁의 도전
방 의장은 “빅히트는 기존의 공감대보다 훨씬 더 넓은 의미로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을 이해하고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현재의 사업을 아우르고 이를 연결, 확장할 수 있는 구조의 상징으로 새로운 사명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새로운 사명을 발표하면서 하이브는 세 축으로 개편한 조직 구조에 대해 설명했다. ‘레이블’, ‘솔루션’, ‘플랫폼’이다. ‘하이브’라는 집합체 안에서 레이블은 창작에 집중하고 솔루션 유닛들은 도전을 지속하며 모든 것들은 플랫폼으로 연결돼 나가는 구조다. 레이블 영역에는 빅히트 뮤직과 빌리프랩, 쏘스뮤직,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KOZ 엔터테인먼트, 하이브 레이블즈 재팬이 포함된다. 각 레이블은 독립성과 독창성을 유지하며 크리에이티브 활동에 집중해 콘텐츠를 선보인다.

솔루션 영역에는 공연·영상 콘텐츠와 지식재산권(IP)·학습·게임 등에 특화된 전문 비즈니스 유닛인 하이브 쓰리식스티, 하이브 아이피, 하이브 에듀, 수퍼브, 하이브 솔루션즈 재팬, 하이브 T&D 재팬 등이 포함돼 각 레이블의 크리에이티브 결과물을 바탕으로 2차, 3차 비즈니스를 창출한다.

또한 플랫폼 영역의 위버스컴퍼니는 하이브의 모든 콘텐츠와 서비스들을 연결, 확장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를 쉽게 설명하면 레이블은 그간 엔터테인먼트사의 주 업무였던 아티스트를 육성하고 솔루션은 아티스트의 IP를 활용한 비즈니스 창출을 도맡는다. 하지만 최근 하이브의 행보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플랫폼 영역의 확장’이다.

과거 팬카페나 홈페이지를 통해 결속력을 다지던 K팝 팬덤들은 커뮤니티 플랫폼을 통해 모이고 있다. 이곳에서 팬들은 아티스트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자료를 공유한다. 여기에 전 세계를 덮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대형 공연이나 팬 미팅 등이 불가능해지자 엔터테인먼트 회사로서는 팬들을 집결시킬 수 있는 새로운 온라인 공간이 필요해졌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떠오른 것이 ‘팬 커뮤니티 플랫폼’이다.

하이브는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유행) 전인 2019년부터 ‘위버스’를 운영했다. 위버스를 통해 아티스트를 활용한 자체 콘텐츠를 송출하고 온라인 콘서트 중개와 티켓, 머천다이즈(MD) 판매까지 일원화함으로써 전 세계의 ‘아미’들이 집결했다. 위버스의 성장은 코로나19를 만나자 가속화됐다. 4월 7일 하이브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하이브의 총매출액 7963억원 중 위버스의 매출 비율은 41.2%(3280억원)로 급증했다.
BTS·케이팝 넘어 세계로…‘1조 빅딜’ 방시혁의 도전

저스틴 비버의 위버스 합류, 가능할까
BTS·케이팝 넘어 세계로…‘1조 빅딜’ 방시혁의 도전
최근 위버스는 네이버의 브이라이브와 결합하면서 K팝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더욱 넓힐 수 있게 됐다. 하이브는 지난 1월 네이버의 ‘브이라이브’와 위버스의 사용자·콘텐츠·서비스 등을 통합해 새로운 글로벌 팬 커뮤니티 플랫폼을 만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네이버는 하이브의 자회사인 ‘비엔엑스’에 4118억원을 투자해 지분 49%를 인수하고 비엔엑스는 네이버 브이라이브 사업부를 양수한다.

그간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오랜 기간 경험을 쌓아 온 하이브가 최대 주주로 사업을 주도하고 네이버는 서비스를 받쳐 줄 기술 역량에 주력해 시너지를 극대화한다. 새 플랫폼은 네이버가 가진 콘텐츠 송출과 라이브 스트리밍, 커뮤니티 플랫폼 분야의 기술력과 하이브의 비즈니스 역량을 합치는 청사진을 내세웠다.

하이브의 아티스트가 주류를 이뤘던 라인업에도 다양한 장르와 소속 가수들이 합류하기 시작했다. 선미와 CL 등을 비롯해 그레이시 에이브럼스, 뉴호프클럽, 알렉산더23 등 해외 아이트스트들로 합류했다. 여기에 하반기 블랙핑크를 비롯한 YG엔터테인먼트 아티스트들이 합류한다면 더욱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하이브가 미국의 매니지먼트 회사 ‘이타카 홀딩스’를 인수하면서 위버스에 저스틴 비버, 아리아나 그란데 등 대형 팝 스타들이 합류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이브는 4월 2일 자회사 빅히트 아메리카가 음악·정보기술(IT)·영화·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이타카 홀딩스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고 밝혔다. 인수 규모는 10억5000만 달러(약 1조1860억원)로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인수·합병(M&A) 역사상 최대 규모다. 이타카 인수로 저스틴 비버와 아리아나 그란데 등 글로벌 아티스트들이 하이브의 소속 아티스트로 합류하게 됐다.

이타카 홀딩스는 매니지먼트사 ‘SB프로젝트’와 컨트리 음악 레이블 ‘빅 머신 레이블 그룹’, TV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콘텐츠를 제작·유통하는 ‘사일런트 콘텐츠 벤처스’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하이브는 이타카 홀딩스와의 결합을 통해 하이브 소속 한국 아티스트들의 미국 시장 진출이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타카 홀딩스가 보유한 미국 시장 내 탄탄한 네트워크, 시장과 산업에 대한 전문성은 하이브가 미국 시장 내 점유율을 확대하는 데 추진력을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하이브는 저스틴 비버, 아리아나 그란데, 제이 발빈, 데미 로바로 등 글로벌 아티스트들의 합류로 K팝부터 라틴·컨트리 등 장르를 아우르는 글로벌 톱 티어(top tier) 멀티 레이블 체제를 구축했다. 다양한 장르의 톱 아티스트 IP를 활용해 글로벌 시장 내 사업 영역을 확대한다.

방시혁 의장은 “하이브와 이타카 홀딩스의 결합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도전”이라며 “지금까지 두 기업이 쌓아 온 성취와 노하우, 전문성을 바탕으로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고도의 시너지를 발휘하고 국경과 문화의 경계를 허물어 음악 산업의 새 패러다임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K팝 아티스트 집결한 플랫폼 나올 수도
사진=한경 DB
사진=한경 DB
플랫폼의 강화와 이타카 인수를 통해 하이브는 엔터테인먼트업계가 그간 걸어보지 못했던 길을 개척 중이다.

우선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하이브의 영향력 확대다. 방탄소년단(BTS)이 글로벌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전체 음악 시장에서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비율은 아직 미미하다. 현재 해외 음악 시장에서는 소니뮤직·유니버설뮤직·워너뮤직 등 대형 레이블들이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K팝 엔터테인먼트가 지금 가장 주목받는 기업들인 것은 분명하지만 규모는 대형 레이블들과 비교할 수 없다.

한국의 엔터테인먼트업계는 생산과 유통을 동시에 도맡지만 미국은 생산과 유통이 분리돼 있다. 그중에서 이타카는 미국 내 음악 산업의 유통망을 잘 보유하고 있는 회사란 평을 듣고 있다. 이에 따라 이타카 홀딩스를 통해 하이브는 미국 시장에서의 교섭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즉 미국 내 유통망을 확보하게 됐다는 점에서 이번 인수는 상당히 유의미하게 평가 받는다. 또한 또 다른 해외 레이블의 M&A를 기대할 수도 있게 됐다. 안진아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하이브의 이타카 홀딩스 인수가 글로벌 레퍼런스가 돼 규모가 더 큰 해외 레이블과의 교섭력 역시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이브는 상장 전부터 BTS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지적 받아 왔다. 오늘날의 하이브를 만든 것은 BTS지만 향후 BTS가 군 복무로 인한 공백기 때 어떻게 버틸 것인지는 늘 기업 평가 때 따라오는 요소였다. 이타카 인수가 이러한 고민을 지울 수 있을까. 이지현 DS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이타카 홀딩스 인수를 통해 하이브는 2020년 국제음반산업협회(IFPI) 글로벌 레코딩 아티스트 상위 10위 중 3명, 아티스트별 유튜브 구독자 상위 10위 중 4명을 보유하게 됐다”며 “막강한 아티스트 라인업을 통해 BTS의 매출 의존도 또한 완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BTS의 하이브 매출 비율을 2021년 약 60%에서 2022년 30~40%로 전망했다.

반면 이타카 인수 효과가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는 K팝 팬들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충성도가 높은 K팝 팬들과 달리 해외 아티스트들은 팬덤의 집결도가 강하지 않은 편이다. 즉 아미들이 BTS의 굿즈를 사 모으는 것 만큼 저스틴 비버의 굿즈 판매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해외 아티스트가 위버스 플랫폼에 입점하더라도 부가 가치는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효진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은 아티스트에 대한 개념이 개인 사업자에 가깝기 때문에 굿즈 등에서 한국 아이들과 같은 수익 구조를 바라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타 채널을 통해 판매되는 굿즈를 위버스샵으로 집중시키면 유통 수수료 증대는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버스의 잠재력은 단연 높게 평가 받는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양학부 교수는 “K팝은 주 언어가 한국어고 외국 매체에서 주류로 다루지 않다 보니 인터넷을 통해 소비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해외 K팝 팬들은 유튜브 등을 통해 가수를 접하는데 기획사로서도 외부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것보다 자체 플랫폼으로 팬들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팬덤의 집결력이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면서 다양한 기업들의 팬 플랫폼 시장 진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 출시된 NC소프트의 ‘유니버스’는 IT를 내세웠다. 인공지능(AI) 기술을 토대로 팬과 스타가 일대일 통화와 메시지 주고받기가 가능하다. SM엔터테인먼트도 자체 팬 플랫폼 ‘리슨’을 운영 중이다.

이규탁 교수는 “K팝은 장르도 브랜드화됐지만 기획사들도 브랜드화돼 있다. 만약 하이브의 위버스가 성공한다면 다른 기획사들도 비슷한 양식을 따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이들이 통합할 가능성도 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K팝 엔터테인먼트는 분명 지금 가장 주목받는 장르지만 전체 시장점유율은 높지 않다. 만약 전 세계 K팝 팬들이 모이도록 팬 플랫폼이 합쳐진다면 그 시너지는 어마어마할 것이란 전망이다.

협업의 시너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사례를 머지않아 볼 수 있게 됐다. 지난 1월 하이브와 자회사 비엔엑스가 YG플러스에 각각 300억원, 400억원 등 총 700억원대의 투자를 진행하면서 하이브와 YG플러스의 협업이 공식화됐다. YG플러스의 아티스트 글로벌 멤버십 관련 사업은 ‘위버스’를 통해 전개되고 YG플러스는 하이브의 음반·음원·유통과 MD 사업에 협업한다. BTS와 블랙핑크라는 대형 K팝 아티스트들을 보유하고 있는 양 사가 손잡으면서 팬 플랫폼 산업이 벌써부터 들썩거리고 있다. 만약 이들의 협력이 성공을 거둔다면 향후 협업 사례는 더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