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재그·W컨셉은 각각 카카오·신세계로... 빅데이터 확보·타 소비재로 확장 가능

[비즈니스 포커스]
소비 침체에도 잘나가는 ‘패션 플랫폼’, MZ세대 힙플레이스로
주마다 두세 벌의 옷을 습관적으로 구매하던 20대 직장인 A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한 지난해 초만 해도 거의 옷을 사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억눌렸던 소비 욕구가 다시 살아났다. 거리 두기로 인해 외출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A 씨가 택한 대안은 ‘온라인 패션 플랫폼’이었다. A 씨는 “집에서 배송받아 볼 수 있는 것도 좋지만 몇몇 패션 플랫폼만 둘러보면 지금 유행하는 스타일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 패션 플랫폼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패션 플랫폼이 급부상하고 있다. 연간 거래액만 지난해 기준 무신사 1조2000억원, 지그재그 7500억원, 에이블리 3800억원, W컨셉 3000억원, 브랜디 3000억원에 이른다. 패션업계는 온라인 패션 플랫폼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소비 침체에도 잘나가는 ‘패션 플랫폼’, MZ세대 힙플레이스로

코로나로 옷 안 산다지만…패션 플랫폼은 ‘예외’
‘온라인 패션 플랫폼’은 2000년대 중반 온라인 패션 시장을 이끈 독립 쇼핑몰과 인스타그램·블로그를 중심으로 성장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마켓을 한곳에 모아 놓은 형태를 띠고 있다.

주요 패션 플랫폼으로는 무신사·지그재그·W컨셉 등이 있다. 이 업계 1위로 꼽히는 무신사는 4월 기준 840만 회원과 6000개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무신사는 모던 베이식 캐주얼 웨어 브랜드 ‘무신사 스탠다드’와 여성 패션 브랜드 스토어 ‘우신사’를 론칭하며 영역을 넓히고 있다.

2015년 출시된 ‘지그재그’는 동대문 노하우에 기반한 4000곳 이상의 온라인 쇼핑몰과 패션 브랜드를 모아 개인화 추천과 검색, 통합 결제를 제공하는 모바일 서비스다. 2030대 충성 고객을 확보해 올해 연간 거래액 1조원을 바라보는 등 패션 버티컬 플랫폼으로 차기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조원인 스타트업)에 올라섰다.

2008년 설립된 W컨셉은 회원 수만 500만 명에 육박하는 온라인 패션 플랫폼이다. 최근 3년간 연평균 성장률 50%를 꾸준히 유지했다. W컨셉의 성장 비결은 ‘신진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이다. 입점 브랜드 중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가 80%를 차지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소비가 침체됐다지만 온라인 패션 플랫폼만은 예외였다. 거래액 기준 업계 1위인 무신사는 지난해 전년 대비 51% 증가한 3319억원의 매출을 달성하며 성장했다. 무신사 측은 신규 회원 증가와 입점 브랜드 매출 성장이 실적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4월부터 이어진 깜짝 인수 소식은 패션 플랫폼의 영향력을 실감나게 하고 있다. 지난 4월 14일 지그재그를 운영하는 패션 기업 ‘크로키닷컴’은 카카오가 자사의 최대 주주가 된다고 밝혔다. 카카오커머스에서 인적 분할된 스타일사업부문과 크로키닷컴이 합병을 진행해 카카오의 자회사로 편입된다. 카카오 관계자는 “오는 7월 출범하는 합병 법인은 카카오와 카카오 공동체가 보유한 기술력과 여러 사업과의 시너지를 통해 한국의 대표 패션 커머스 플랫폼으로서의 선도적 위치를 확보하고 신규 비즈니스 기회를 발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신세계는 W컨셉 인수를 통해 패션 채널 다각화에 나섰다. 쓱닷컴(SSG.COM)은 4월 1일 IMM프라이빗에쿼티와 아이에스이커머스가 각각 보유한 W컨셉의 지분 전량을 양수하는 주식 매매 본계약(SPA)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인수 가격은 2000억원 중·후반대로 알려졌다. 쓱닷컴은 인수 후에도 핵심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 전문 인력을 승계하는 등 현재와 같이 플랫폼을 별도 이원화로 운영한다.
소비 침체에도 잘나가는 ‘패션 플랫폼’, MZ세대 힙플레이스로

패션 넘어 ‘라이프스타일’ 엿볼 수 있어 각광
양 사가 패션 플랫폼 인수를 통해 노리는 것은 미래 고객 확보와 의류 품목 강화다. 지그재그는 전국 동대문 등 소호 의류몰의 옷들을 한곳에 모아 뒀는데 개인의 체형과 취향에 따라 맞춤 옷을 추천해 주면서 1020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쓰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자리잡았다. 이 때문에 카카오는 미래의 고객인 1020을 잡아두는 데 지그재그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신세계는 W컨셉 인수로 의류 품목을 강화할 수 있다. 쓱닷컴이 종합몰로 성공하기 위해선 패션 플랫폼의 인수가 꼭 필요한 시점이었다. 남성현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쓱닷컴의 주요 판매 제품군은 식품에 한정돼 있고 신세계는 오픈 마켓 진출을 위한 킬러 아이템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W컨셉 인수는 쓱닷컴이 식품·가전·가구 등 다양한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지만 의류 품목군의 경쟁력이 높지 않았던 상황에서 상품과 사업적 모델을 안착시킬 수 있는 계기로 적용한다는 분석이다.

공통적으로 노리는 것도 있다. 기업은 패션 플랫폼 인수를 통해 ‘고객 빅데이터의 확보’를 기대할 수 있다. 채진미 한성대 글로벌패션산업학부 교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의 향후 소비는 계속 증가할 것이므로 이들에 대한 데이터는 기업의 마케팅 전략 수립에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패션 산업이 다른 기업들이 진출하기 어려운 산업이라는 점도 그렇다. 채 교수는 “패션 상품은 다른 상품군과 달리 디자이너 인력이나 브랜드 명성, 유행의 민감성 등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미 시장에서 인정받는 플랫폼들을 인수하는 것이 사업적으로 유리하다”고 말했다.

패션 플랫폼을 통한 타 유통 산업군으로의 확장도 가능하다. 패션 플랫폼이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통로로 자리 잡으면 신발·가방·화장품 등 트렌드에 민감한 다른 상품군도 판매량이 급증할 수 있다. 이은하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유행은 다른 상품군에서도 존재하는데 패션 플랫폼은 라이프스타일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확장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패션 산업 부문의 확장을 원하는 기업들이 언제든지 인수에 뛰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패션 플랫폼의 성장 동력을 파악하기 위해선 ‘패션’이라는 산업이 가진 특성을 알아야만 한다. 온라인 패션 플랫폼은 소비자들이 패션에 대해 기대하는 것을 성공적으로 충족시켰다. 우선 온라인 패션 플랫폼은 마치 포털 사이트처럼 소비자들을 잡아 두는 매력이 있다. 이은하 교수는 “온라인 패션 플랫폼은 소비자가 구매 결정을 하기 전 정보를 탐색할 때 지속적으로 들락날락하게 하는 즐거움을 제공한다”고 분석한다. 잘 꾸민 모델이 옷을 스타일링하고 있는 모습만 구경해도 시간이 빨리 간다는 것이다.

동시에 최근 패션 플랫폼은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관심사 내에서 가장 ‘힙’한 아이템들을 노출한다. 패션 플랫폼만 따라가도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패션이 갖는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의류는 구매 시 가격과 함께 디자인과 유행 등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고려되는 품목이다. 패션이 곧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한다는 인식을 지닌 소비자들도 많다. 쿠팡이나 네이버쇼핑과 같은 오픈 마켓이 아무리 성장하더라도 의류는 패션 전문 플랫폼에서 구매하는 소비자 층이 견고한 이유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