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정상화에 다가서면 풀린 돈이 ‘부메랑’…올해 하반기 테이퍼링 이슈 부각 우려

[머니 인사이트]
(사진)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AP 연합뉴스
(사진)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AP 연합뉴스
5월은 가족의 달이다. 어린이날·어버이날·스승의 날에 함께 모여 기쁨을 나눈다. 주식 투자자들이 떠올리는 5월은 다르다. ‘5월에 팔고 떠나라’라는 주식 시장의 오랜 격언 때문이다. 실제 통계적 유의성은 높지 않지만 어쩌다 한 번 급습했던 5월의 공포가 트라우마처럼 주식 투자자들에게 선명한 아픔으로 살아있다. 2013년 5월의 ‘테이퍼 텐트럼(긴축 발작)’도 그러한 사례 중 하나다.

Fed, 2013년의 실수 재연하지 않을 것

2013년 5월 22일,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한마디가 글로벌 금융 시장을 뒤흔들었다. 2008년 금융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1차 양적 완화(QE1), 2차 양적 완화(QE2), 3차 양적 완화(QE3)로 이어진 양적 완화가 머지않아 작동 중지될 것이란 신호였다. 주식 시장의 상승과 하락을 일으키는 주요 동력은 돈의 양이다. 돈이 돌지 않아 생기는 문제는 돈의 양을 늘림으로써 해결할 수 있지만 일단 경제가 정상화에 다가서면 풀린 돈이 부메랑이 될 수 있다. 돈이 돌기 시작하는 신호가 나오자마자 버냉키 전 의장은 바로 시장에 경고 신호를 줬던 것이다.

시장 참가자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금리가 상승하고 달러가 강해졌다. 2013년 5월 이후 미국채 10년 금리는 1.6%에서 돌아서 9월 3%를 넘어갔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미국채 금리가 3%대인데 굳이 위험한 미국 외 신흥국에 투자할 유인이 사라진 것이다. 신흥국에서의 자본 유출로 글로벌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기준 금리를 인상해서가 아니라 돈을 거둬들이는 신호로 출현한 긴축 발작이다.

중국은 2013년 5월을 잊지 않고 있다. 2013년 달러가 중국에서 빠져나가자 단기 금리가 급등하고 중국의 그림자 금융 이슈가 빠르게 부상했기 때문이다. 올해 미국 경제가 정상화에 조금씩 다가서는 지표가 확인되자 중국은 2013년을 경험 삼아 기다리지 않고 행동했다. 중국 인민은행은 3월 24일 통화정책위원회 정례 회의에서 ‘긴급한 출구 전략 지양’ 문구를 삭제했다. 4월 2일엔 시스템적 중요 은행(SIB)들에 대해 등급별 추가 자본 확충을 요구하고 4월 13일 국무원에서 금융회사를 통한 지방 정부 차입 금지 등 악성 부채의 억제를 강조했다.

시장 참가자들이 당황한 것은 전인대에서 리커창 총리가 긴급한 출구 전략이 없다고 한 지 불과 2~3주 만에 정책 전환 신호를 보냈다는 데 있다. 중국이 먼저 긴축으로 한 발 나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중국 경기가 정상 궤도에 먼저 도달했고 머지않아 미국도 이를 뒤따를 것으로 본 것 아닌가 싶다. 중국의 경기는 이미 정상화에 도달해 있다. 올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18.3% 증가하면서 시장 컨센서스를 0.2%포인트 밑돌았고 전기 대비 성장률 역시 둔화됐다. 하지만 신규 고용 회복과 가처분 소득 반등으로 소비 중심의 경기 정상화가 확인(-0.51%포인트→+11.6%포인트)됐다. 정상 궤도에 도달한 상황에서 추가적 부양책보다 정책 정상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더 큰 이유는 상대적으로 강해진 미국 경기에 있다. 4월 1일 순궈펑 통화정책국장은 상대적으로 빠른 미국 경기 정상화가 신흥국의 자금 유출로 연결될 수 있다고 밝히고 저우란 금융시장국장은 그로 인한 부동산 디벨로퍼들의 잠재적 부도 위험을 경고했다. 중국 정책 당국은 중국 외 국가들이 행동하기 전에 먼저 긴축으로 자금 유출을 막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실제 캐나다 중앙은행도 지난 3월 통화 정책 회의에서 QE 조정을 시사한 후 4월 21일 실제로 자산 매입 규모 축소 및 금리 인상 관련 가이던스 변경을 통해 스탠스 조정에 나섰다. 선진국 중 가장 먼저 긴축으로 한 걸음 내디딘 것이다.

내년 상반기 자산 매입 규모 축소 개시 전망
2013년 5월과 2021년 5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반면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시장 참가자들의 의구심을 잠재우기 위해 반복해 Fed의 스탠스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연초 일부 Fed 위원들이 ‘테이퍼링’ 가능성을 언급했고 이로 인해 미국채 10년 금리가 치솟았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은 하반기 미국의 성장은 매우 강력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 불안 요인이 남아있다고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여행·접객업·식당 등 컨택트 업종이 아직 회복되지 못했고 여전히 일자리도 부족하다는 것을 예로 들었다. 물가 상승률에 대해선 경제 활동 재개에 따른 지출 확대와 공급망 장애 등으로 연내 인플레이션 압력이 크지만 최근 물가 상승세는 일시적 현상인 만큼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인다. 설령 물가가 더 상승하더라도 기준 금리 인상은 한참 뒤에나 가능하다고 연설과 인터뷰를 통해 미디어에 반복해 전하고 있다.

다행이 글로벌 금융 시장도 이에 반응하고 있다. 연초 미국채 10년 금리가 1.75%를 넘어가자 2013년 악몽을 떠올렸던 이들도 ‘2013년과 2020년은 다르다’는 공감대와 함께 다시 채권을 사들이고 있다. Fed가 당분간 테이퍼링를 시사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것이다. 4월 들어 미국채 금리는 헤지펀드 쇼트 커버, 새롭게 회계연도가 시작된 일본 투자자 유입에 기인해 하락세가 완연하다. 3월 생산자물가지수(PPI)와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시장 컨센서스를 웃돌았지만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오히려 물가 선반영 논리에 힘이 실리며 금리의 낙폭이 확대됐다. 일본 재무성에서 발표하는 일본 국내 거주자의 해외 채권 투자는 4월 들어 순매수세 규모가 확대되는 등 일본 투자자들의 미국채 시장 귀환도 ‘카더라’가 아니라 현실화하고 있다. 3년·10년·20년·30년 양호한 미국채 입찰 결과도 우려와 달리 양호했고 그로 인해 2013년과 달리 2021년의 5월은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미국만 본다면 이미 ‘방역’이 아닌 ‘백신’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슈의 중심이고 미국 경제가 얼마나 빨리 달려가는가에 달려 있을 뿐 연내 정상화에 대한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집단 면역에 다가서면 다가설수록 고용 문제가 해결 수순에 들어서고 테이퍼링을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제임스 블라드 세인트루이스 Fed 총재가 말하는 미국의 테이퍼링 검토 조건(인구대비 백신 접종 비율 75% 이상)은 오는 7~8월, 고용 조건은 이르면 내년 1월 정상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파월 의장이 4월 14일 테이퍼링이 정책 금리 인상 시점보다 빨리 시행될 수 있고 2013~2014년을 참고할 것이라고 언급한 부분을 상기해야 한다.

4월 유럽중앙은행(ECB) 정책 회의에서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의 발언도 흥미롭다. 미국과 정책적 공조를 이어 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이다. 지난해 4분기 성장률에서 유로존은 전 분기 대비 0.7% 감소했고 올해 1분기도 역성장이 전망되는 반면 미국은 4분기 전 분기 대비 4.3% 증가했고 1분기도 플러스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시적이든 아니든 일단 미국과 유로존 모두 헤드라인 물가 상승률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라가르드 총재는 유럽과 미국 경제의 온도차를 인식하고 그로 인한 정책 차별화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ECB의 완화적 정책 지속 시간이 미국보다 길 수밖에 없고 Fed의 테이퍼링 시기는 그보다 앞서 언급될 것을 시사한 것이다. 1~2개월의 차이를 정책 디커플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하면 Fed의 테이퍼링 언급 시점이 적어도 올해 4분기, 이르면 3분기 중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파월 의장은 2013년 Fed의 실수를 재연하지 않을 것이다. 성급한 정책 정상화 표명이 약한 고리의 국가들에 충격을 줄 수 있고 Fed 역시 이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냥 기다려줄 수는 없다. 백신 접종률의 차이가 미국과의 경제 정상화 격차를 벌린다면 신흥국의 위험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전체의 회복이 수반되지 않은 미국 경제 정상화가 걱정이다. 예기치 않은 달러 강세로 인한 부작용에 대비해야 한다.

Fed는 물가보다 고용에 방점을 두고 통화 정책을 운용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역설적으로 고용 지표 호조에 경기 회복 기대감이 높아질수록 조기 테이퍼링과 테이퍼 텐트럼 우려가 수면 위로 부상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최근 시장에서 나오는 주요 인물들의 발언과 시장의 코멘트에서 테이퍼링이라는 단어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시장의 반응은 항상 결과보다 빠르다. 머릿속에 테이퍼링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시장이 반응할 시점이 점차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올해 하반기 테이퍼링을 언급하고 내년 상반기 내에 월 자산 매입 규모 축소를 개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