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더리움 기반 디지털 채권 발행 계획에 사상 최고가 기록…디지털 금융 혁신망의 핵심으로 재주목

[비트코인 A to Z]
암호화폐 과세 방침을 두고 혼란이 커지는 가운데 28일 비트코인 가격이 6500만원 선으로 반등했다. 서울 역삼동 암호화폐거래소 빗썸 고객센터에 설치된 전광판에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시세가 표시돼 있다.
암호화폐 과세 방침을 두고 혼란이 커지는 가운데 28일 비트코인 가격이 6500만원 선으로 반등했다. 서울 역삼동 암호화폐거래소 빗썸 고객센터에 설치된 전광판에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시세가 표시돼 있다.
4월 중순 비트코인이 5만 달러가 무너졌을 때 이더리움은 2000달러를 지켜 냈다. 2018년의 폭락 장세를 경험했던 투자자라면 이번 조정이 그와 같은 폭락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힌트를 얻을 만한 일이다.

만약 블록체인 산업 전체에 대한 피로감과 비관이 원인이었다면 비교적 가치가 안정된 비트코인보다 다른 코인들이 더 큰 폭으로 내려갔어야 했고 비트코인 총 가치 비율이 높아지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반적으로 코인들의 가격이 폭락했지만 비트코인의 총 가치 비율은 낮아졌다. 이런 현상은 비트코인의 폭락에도 불구하고 이더리움을 비롯한 블록체인 토큰들이 나름 선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투자자라면 비트코인과 다른 블록체인 자산과의 역학 관계까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장세였다.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이 비트코인을 무작정 금지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와도 관련 있다.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경제학자들은 하루에도 자산 가치가 수십 배가 오르내리는 이 ‘난장판’을 하루빨리 정리하라고 정부에 주문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진짜 타깃은 법정화폐에 도전하는 것으로 보이는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이더리움 관계 이해해야

4월 폭락은 코인 생태계와 직결되는 환경적 변화와는 무관했다. 비트코인과 기타 코인들에 대한 도덕적인 비난과 거품 우려가 확산되고 있었고 이와 관련해 정책적 결단이 임박했다는 위기의식이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 금융 당국이 당장이라도 거래소를 폐쇄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자마자 또 다른 도덕적 반론이 쇄도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이는 ‘김치 프리미엄’이 꺼진 이유를 두고 한국에서 일었던 논란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젊은 세대의 잘못된 투자를 걱정하는 금융 당국의 ‘어른스러운’ 우려는 제대로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는 완고한 꼰대의 시대착오로 낙인 찍혔고 가상화폐를 금지하는 정책은 신기술과 미래 산업에서 스스로 낙오하려는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공격받았다. 가상화폐 발행과 블록체인 플랫폼이라는 양면성에 걸맞게 ‘가짜 화폐’에 대한 혐오와 신기술을 선도해야 한다는 명분론이 팽팽하게 맞서는 셈이다. 3년 전에 한국 정부가 내건 원칙은 ‘코인은 막고 블록체인은 장려한다’는 일종의 이분법이었다. 설득력이 있어 보였던 이 원칙은 4년 후 도래한 가상화폐의 폭발적 성장 앞에서 현실성이 없는 구호에 불과했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했다.

비트코인이 가상화폐를 대표한다면 이더리움은 블록체인 플랫폼을 대표한다. 정부의 원칙이 실효적 의미를 가지려면 비트코인을 막으면서 이더리움을 활성화할 수 있는 묘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분리하기 어렵다. 이 둘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 블록체인 생태계의 미래를 논하는 것은 3년 전 ‘코인은 안 되지만 블록체인은 된다’는 어설픈 수사를 되풀이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다.

적대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생명력을 이어 온 비트코인은 주류 학계나 미디어의 지원을 기대할 처지가 아니었다. 이런 태생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비트코인은 관심이 쏠리지 않을 때 고개를 쳐들고 올라온다. 하지만 미디어가 주목하면 집중포화를 도맡아 맞고 위축되곤 했다. 이번 폭락도 코인베인스 상장 직후 벌어졌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반면 이더리움은 세상에 나올 때부터 주목 받았다. 비트코인의 단점을 극복하면서 장점을 극대화한 기술이라는 마케팅이 먹혔다. 즉 이더리움은 미디어의 주목을 받을수록 성장하는 특징을 보여 줬다.

실제로 지난 4월 폭락 국면에서 구글에서 영문으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검색해 보면 이 둘의 차이가 대조적으로 나타난다. 비트코인 검색에는 거품과 폭락, 정부 규제라는 키워드가 검색됐다. 하지만 이더리움을 검색하면 수수료 절감 효과와 플랫폼 개선 같은 긍정적인 뉴스가 두드러진다. 2017년 가상화폐 상승장에서도 비트코인은 튤립 거품과 연관됐고 블록체인은 4차 산업혁명으로 검색됐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경쟁적으로 성장했지만 각각의 신봉자들이 서로를 공격하는 것만큼 상호 적대적인 관계는 아니다. 리플을 기소한 미국증권감독위원회(SEC)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증권이 아니라고 명시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규제 당국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 두 블록체인은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 SEC가 중시하는 것은 이 두 블록체인이 분산성을 달성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단일 주체의 영향력이 제한되기 때문에 규제 대상이 명료하지 않다. 규제하더라도 규제의 실효성이 없다.

규제 당국에는 비슷해 보이는 두 개의 플랫폼이 대중에게는 전혀 상반되는 이미지로 각인됐다는 것은 블록체인 옹호론자 쪽에서는 상당히 편리하다. 코인 투자 열기가 도덕적 비난에 직면할 때면 이더리움은 생태계를 확장하는 뉴스를 생산하곤 하는데 이더리움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내세워 규제주의자들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인 폭락의 공포, 이더리움은 고개를 세웠다[비트코인 A to Z]
폭락장, 최고가 기록한 이더리움

코인 시장에 폭락의 공포가 채 가시지 않았던 지난 4월 28일, 이더리움이 역사적인 최고가를 기록했다. 언론들이 주목한 원인은 유럽투자은행(EIU)의 디지털 채권 발행 소식이었다. EIU가 이더리움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만기 2년의 디지털 채권을 1억 유로(약 1343억원)어치 발행할 계획이라는 뉴스였다. EIU는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주주로 있는 국제 금융 기관이다. 3월 초에는 아마존웹서비스가 블록체인 플랫폼으로서 이더리움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비자도 마찬가지다. 비자는 이더리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가상 자산 결제 시스템을 만들기로 했다.

불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금융 기업과 빅테크들이 각기 독자적으로 블록체인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것이 정설이었기 때문에 이 뉴스들이 중요하다. 아마존과 같은 빅테크와 비자와 같은 금융 기업이 이더리움을 하나의 선택지로 삼고 있다는 것은 블록체인 플랫폼 표준화 경쟁에서 여타의 플랫폼을 제치고 이더리움이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을 만하다.

이더리움은 블록체인의 핵심인 작업 증명(PoW) 방식을 변경하고 있는데 비트코인처럼 전기를 소비하지 않으면서도 분산 협업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다는 수학 이론에 따른 것이다. 즉 채굴이 전기를 소비하고 지구 온난화를 가중시킨다는 도덕적 비난으로부터 비켜 설 준비를 해 왔다. 또한 이더리움은 비트코인처럼 발행량을 반감시키지 않는데 통화론자를 필두로 한 주류 경제학자들의 디플레이션 화폐에 대한 적개심에 가까운 반감도 이더리움과는 상관없다. 이런 이더리움이 긍정적인 뉴스를 쏟아낼수록 가상화폐 자체를 악마화하는 경제학자들은 난처해진다. 정치인들은 경제학자들이 주저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런 선택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다만 이더리움 생태계의 확장이 곧바로 이더(코인)의 폭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은 이더의 인플레이션 속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이더리움이 채택하려고 하는 지분을 활용한 작업 증명 방식이 비트코인처럼 지속적으로 가치가 증가하는 자산을 지키는 데 적합한지에 대한 논쟁도 아직은 열려 있는 상태다.

하지만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이런 상반된 속성은 두 시스템이 공존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더리움은 비트코인보다 플랫폼의 확장성이 크기 때문에 디지털 자산들의 발행과 거래의 네트워크로 발전하고 있다. 블록체인이 초래할 금융과 물류의 통합에 이더리움이 한 축을 담당할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이더리움이든 이더리움을 대체한 다른 플랫폼이든 그 플랫폼에서 비트코인은 최종적인 담보물로서 기능할 것이 확실하다. 쉽게 말해 이더리움상에서 비트코인이 본원통화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고 이더리움 플랫폼은 디지털 금융 혁신망의 핵심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정보 고속도로라고 명명했던 것에 빗대 이런 망을 신뢰 고속도로라고 한다.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을 떼어 놓고 보려는 부자연스러운 시도보다 지구적 신뢰 고속도로의 등장과 성장이라는 관점을 가져야만 투자에 실패하거나 신기술이 초래하는 변화에서 낙오되지 않을 것이다.

오태민 ‘비트코인은 강했다’, ‘비트코인 지혜의 족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