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뛰어넘는 수요 반등으로 물량 부족…‘친환경·고부가 가치’ 중심 시장 재편 급물살
[스페셜 리포트] 자동차 산업이 부활하고 있다. 신차가 발표되면 사전 계약이 1만 대가 넘고 차량 수령까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늘어나는 소비자 수요에 생산 기업의 공급 물량이 따라가지 못해서다. 차량에 사용되는 반도체를 구하지 못해 생산 라인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원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소비자 수요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해 올해 생산 예정 대수를 크게 줄여서다. 지난해 글로벌 신차 수요는 2019년 대비 14% 감소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코로나19 여파에 해외 대신 국내 여행을 즐기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차량 구매 수요가 더욱 커졌다. 이에 따라 예측 물량과 실제 주문량에 불균형이 나타나 차량 인도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지난 1분기 자동차 생산·내수·수출이 모두 늘어나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지난해 1분기에 비해 생산은 12.2%, 내수는 11.3%, 수출은 16.9% 증가했다. 내수는 역대 1분기 중 최고 판매 대수를 기록했고 수출액은 2014년 1분기(124억8000만 달러), 2012년 1분기(123억 달러)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고성장을 이끈 것은 향후 내연기관차를 대신할 친환경차가 있다. 친환경차의 1분기 수출 대수는 9만2000대로 역대 최대다. 내수 판매 또한 역대 2위를 기록했다. 전체 자동차에서 친환경차가 차지하는 판매 비율 역시 15.9%로 역대 최고다. 공급 과잉보다 공급 부족이 낫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부족의 근본적 배경은 예상보다 빠르고 강력한 수요 회복이다. 시장에선 ‘공급 과잉보다 공급 부족이 낫다’고 판단한다.
현대차·기아도 4월 들어 일부 공장이 휴업하거나 라인 조정이 불가피했다. 반도체 부품이 부족해서다. 단, 2월부터 주요 공장이 휴업에 들어간 경쟁사 대비 양호한 생산을 이어 왔다.
또 월 계약 대수 증가세가 이어지고 신차 출고 대기 기간 장기화 등으로 생산 잔량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즉, 반도체 부족은 자동차 시장을 10년 넘게 짓눌러 온 구조적 공급 과잉을 해소하고 있다. 창고에 제품을 쌓아 두고 파는 것이 아니라 주문 수량에 맞춰 생산하는 시대가 됐다. 재고가 줄어들면서 판매비용도 대폭 절감되고 있다.
글로벌 환경 규제의 변화도 만성 공급 과잉 해소의 한 요인이다. 환경 규제 강화는 내연기관차의 판매 대수를 제한한다.
전기차와 고수익 차종을 최우선적으로 판매하고 중저가의 저마진 차량은 판매를 줄일 수밖에 없다. 소비자로선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셈이지만 규제가 강화될수록 저가·내연기관차는 빠른 속도로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결과적으로 예기치 못한 수요 급증은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을 야기했지만 완성차 업체에는 실적 개선을 가져다줬다. 1분기 실적이 이를 뒷받침한다. 현대차는 올해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달성했다. 매출 27조3909억원, 영업이익 1조6566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2%, 영업이익은 91.8% 늘었다.
기아는 1분기 매출 16조5817억억원, 영업이익 1조763억원을 달성했다. 매출은 13.8%, 영업이익은 142.% 늘어난 수치다. 반도체가 부족해 차량을 덜 생산해도 이익은 늘어났다. 영업이익률도 2.6%포인트 상승한 6%에 달했다.
생산량이 줄었음에도 실적이 향상된 것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제네시스 등 고부가 가치 제품의 판매 비율이 높아져서다. 현대차는 1분기 글로벌 시장에서 100만281대를 판매했다. 전년 대비 10.7% 늘어난 규모다. 그중 SUV가 차지하는 비율은 44.3%로 지난해 1분기보다 1.4%포인트 상승했다. 제네시스는 4.3%로 2.5%포인트 높아졌다.
김준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공급 차질은 단기적 이슈에 불과하다”며 “반도체 부족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도 지난해 말부터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주가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반도체 공급 부족에도 고부가 가치 차량의 판매 확대가 주가 상승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친환경차 전성시대, ‘전기차 천하’ 개막
자동차 산업 반등의 계기는 친환경차다. 바야흐로 친환경차 전성시대가 열리면서 ‘전기차 천하’가 시작됐다. 2025년 글로벌 전기차 수요는 2641만 대다. 글로벌 차량 판매 점유율의 26.6%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기준 글로벌 시장에서의 전기차 비율은 2% 수준에 불과한데 4년 후에는 전체 시장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셈이다. 전기차 시장은 지난 5년간 연평균 52%씩 성장해 왔다. 향후 5년 동안 35%씩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는 아직 시장 경제 논리가 완벽하게 적용되는 시장은 아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 등 관련 정책이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을 포함해 대부분의 국가는 친환경 정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에 따라 친환경차 시장을 더욱 확대하고 있고 유럽은 탄소 배출 가스 규제를 한 단계 강화했다. 미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2005년 대비 50~52%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2050년 탄소 중립 실현 의지를 강력히 피력한 것이다. 이에 맞춰 바이든 정부는 2022 회계연도 예산 요구안에 전기차 충전소 지원을 대폭 확대했다.
유럽연합(EU)은 2030년 배출 감축 목표(1990년 기준)를 기존 40%에서 최소 55%로 강화할 방침이다. 특히 프랑스는 국제적 탄소 가격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전기차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활약은 내연기관보다 더욱 두드러진다. 현대차·기아의 글로벌 내연기관차 판매량은 5~6위다.
반면 전기차 시장에서는 3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2025년까지 각각 전기차 생산량을 현재의 600%, 1000% 늘릴 계획이다. 같은 해 100만 대 이상 전기차 판매 계획을 잡은 기업은 현대차그룹과 폭스바겐뿐이다. 그만큼 현대차·기아는 자동차 기업 중 가장 적극적으로 전기차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현대차는 최근 전용 전기차 플랫폼 E-GMP 기반의 아이오닉5를 출시했다. E-GMP는 전기차에 최적화된 모듈형 플랫폼 설계로 부품 공용화를 통해 경쟁사보다 한 발 앞서 높은 수익성이 구현된 제품이다. 경쟁사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아직 출시하지 못한 상황이다.
차량 운영체제(OS)와 소프트웨어 부문에서도 엔비디아 등 다수의 글로벌 기업과 협업해 높은 경쟁력을 갖췄다. 차량 OS는 향후 자율주행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유지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현대차는 2종, 기아는 1종의 E-GMP 차량을 양산한다”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양산이 이뤄지는 전용 플랫폼 기반의 차량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현대차그룹의 기업 가치 증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호승 기자 y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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