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사 측 “친문 상당수 넘어오고 있다”
친문, 지난 대선 때 공격 당한 경험, “뒤통수 맞을 수도”

[홍영식의 정치판]
이재명 경기도지사(앞줄 가운데)가 4월 20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경기도, 청소·경비노동자 휴게시설 개선 국회 토론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토론회엔 민주당 의원 40여 명이 몰려들었다.    연합뉴스
이재명 경기도지사(앞줄 가운데)가 4월 20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경기도, 청소·경비노동자 휴게시설 개선 국회 토론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토론회엔 민주당 의원 40여 명이 몰려들었다. 연합뉴스
서울 지역 재선의 더불어민주당 A의원은 최근 이재명 경기지사 측 B 의원으로부터 집중적인 구애를 받고 있다. 그는 “평소에도 허물없는 사이지만 요즘 부쩍 내 방(의원회관)에 자주 찾아오거나 식사를 같이하자는 요구를 많이 한다”고 했다. 친문(친문재인)계로 분류되지만 이른바 ‘찐문(진짜 친문)’은 아닌 그는 이 지사 측뿐만 아니라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측, 정세균 전 총리 측으로부터도 ‘러브콜’을 자주 받고 있다.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 선출이 끝나자 민주당 대선 주자 간 경쟁이 본격 불붙고 있다. 민주당 당헌·당규상 당내 경선은 대선(2022년 3월 9일) 6개월 전인 9월 초까지는 치러야 한다. 이 전 대표 측과 정 전 총리 측이 경선 일정 연기를 요청하고 있어 변수는 남아 있지만 현행대로라면 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정 전 총리가 총리직에서 내려왔고 이 전 대표도 대표를 그만두면서 대선판에 올라오자 이 지사도 부쩍 여의도로 발걸음을 자주 하고 있다.

이 지사의 첫 과제는 세 불리기다. 민주당 경선 투표 결과는 대의원 45%, 당비를 내는 권리당원 40%, 국민 10%, 일반 당원 5%의 비율로 각각 반영된다. 당심(黨心)이 90%를 차지한다. 당심을 움직이는 데는 지역구 의원들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이 지사는 의원 경력이 없기 때문에 이 대목이 약점으로 꼽힌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지지율은 여권에서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이런 지지율이 당심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여의도행(行)이 늘어난 이유다.

이 지사 측 의원들은 조만간 ‘대한민국 성장과 공정 포럼’을 발족하고 세력화 신호탄을 쏜다는 계획이다. 대선 캠프 구성과 메시지, 정책 관리 등을 담당하며 세력화의 전초 기지로 삼는다는 것이다. 포럼 이름을 이렇게 지은 데는 이 지사가 그간 공정과 성장을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성장과 공정 포럼’, 세력화 전초 기지 삼아

그는 페이스북에서 “공정이 기업 발전과 경제 성장을 뒷받침한다”며 다음과 같은 논리를 내세웠다. “한 연안에서 어족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출 만큼 생태계가 파괴되는 일이 있었다. 더 강력한 선박, 더 촘촘한 그물이 등장해 분별없이 싹쓸이해 버린 탓이다. 그물코 규격에 제한을 두고 산란기 동안 어획을 금지하는 등 규칙들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의 공정한 질서가 만들어지자 연안은 다시 풍족한 해역으로 돌아왔다.”

이어 “대기업과 중소기업, 기업과 노동자, 골목 자영업자와 유통 재벌 간에도 모두 함께 이익이 되는 ‘합리적인 합의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유능한 경제인일수록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정한 경제 환경’을 선호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공정과 친기업은 양립할 수 없는 가치라고 오해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 반대라고 믿는다.”

포럼 발족을 준비하고 있는 이 지사 측의 한 의원은 “이 지사의 공정 가치를 대변하는 정책 브랜드인 기본 소득과 기본 주택 등 ‘기본 시리즈’와 탈탄소를 비롯한 기후 위기 대응,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산업과 경제 구조 재편 등 성장을 위한 정책의 토대를 포럼에서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이 의원 측은 민주당 의원과 지 역위원장 등을 대상으로 포럼 가입서를 받는 등 대대적인 세력 확장에 나서고 있다. 이 지사를 돕는 핵심 의원은 정성호·김영진·김병욱·이규민·임종성 의원 등이다. 여기에 최근 이 지사의 중앙대 선배인 노웅래 의원이 가세했다. 김남국·김한정·민형배·김윤덕·이동주 의원 등도 이재명계로 분류된다.

이 지사의 최대 ‘아킬레스건’은 친문이다. 이 지사는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과 첨예하게 각을 세우면서 친문과 악연을 맺었다. 경선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상당수가 친문 성향으로 알려져 있는 상황에서 대선 1차 관문인 경선에서 당심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여론 지지율이 높아도 소용 없는 노릇이다.

민주당 의원 174명 가운데 친문은 대략 130~140명에 이른다는 분석이다. 물론 이 가운데 이른바 ‘찐문’은 70~80명 정도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 지사 측은 친문으로 분류되지만 계파 색이 옅은 ‘범친문’을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이 지사 측의 한 의원은 “범친문 의원들 중 공개를 꺼려 이름을 밝히기는 어렵지만 상당수가 이 지사 쪽으로 넘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 원동력은 지지율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경선이 4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 지사의 지지율이 여권의 타 주자에 비해 크게 앞서고 있는 것이 범친문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극렬 친문 지지자들을 배제한다고 하더라도 경선에 자신있다는 것이 이 지사의 관측이다. 이 지사가 강성 친문에 대해 “과잉 대표되고 과잉 반응하는 측면도 있다”며 “민주당 당원이 80만 명, 일반 당원이 300만 명에 달한다. 강성 당원이 그중 몇명이나 되겠나. (그들의 SNS) 1000개만 차단하면 된다”고 한 것은 그런 차원이다. 이 지사 측의 핵심인 김병욱 의원은 친문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해 기자에게 일찌감치 “지지율이 깡패”라며 “친문도 대선 본선 경쟁력이 높은 사람을 지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지사 측의 딜레마는 친문을 너무 가까이하기도, 멀리하기도 난감한 상황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친문의 지지를 받지 않고는 당 대선 후보가 되기 쉽지 않고 친문과 함께했다가는 대선 본선에서 이기기 힘드는 딜레마에 빠졌다”고 했다. 이 지사의 지지율이 20%대 박스권에 묶여 있는 것도 고민거리다. ‘이재명 대세론’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선 최소한 지지율 30%대로 올라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지지율 20%대에서 벗어나 30%대 넘어서는 게 관건”

한 여론 조사 전문가는 “20%대의 지지율은 친문들에게 대세론을 주입하기에는 미흡한 수준”이라며 “당심과 민심을 확 끌어당겨 ‘밴드왜건(이길 가능성이 큰 후보에 지지율이 쏠리는 현상)’을 타려면 최소한 30%대로는 치고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 지사의 지지율이 박스권에 갇힌 이유에 대해 “정 전 총리, 이 전 대표 등과 나눠 갖고 있는 여당 성향의 지지층을 더 확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30%대로 올라가려면 중도층의 지지를 끌어당겨야 하지만 이 지사의 포퓰리즘 성향, 이념과 정책 지향 때문에 그러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친문으로서도 딜레마다. 경선은 다가오는데 친문 주자 중 현재로선 지지율 면에서 이 지사에게 확고하게 대척점에 설 만한 인물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관건은 이 전 대표와 정 전 총리의 지지율이다. 이 전 대표의 지지율은 한 자릿수까지 내려갔고 정 전 대표는 2%대에서 맴돌고 있다. 두 주자의 지지율이 치고 올라가 이 지사와 어느정도 경쟁된다면 친문으로서도 선택의 여지가 있다. 이 전 대표 또는 정 전 총리와 손잡고 이 지사와 경쟁시키면 된다.

하지만 두 주자의 지지율이 이 지사와 경쟁이 안 되는 수준에 머무른다면 친문으로선 고민스럽지 않을 수 없다. 진 교수는 “이 지사는 거버너로서는 능력이 출중한데 포퓰리스트적, 갈라치기에 굉장히 강하다”며 “지난 대선 때 이 지사가 문 대통령을 공격한 기억을 강하게 갖고 있는 친문으로선 이 지사가 언제든지 뒤통수를 칠 수 있다는 불신이 있다”고 했다. 친문이 이 지사에 선뜻 손을 내밀기 어려운 이유다. 이렇게 서로 딜레마를 갖고 있는 이 지사와 친문 간 관계 설정이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따라 여권 대선 경선판이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홍영식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