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 법정 관리 이겨내고 알짜 회사로 변모…1년 새 주가도 113% 급등
[마켓 인사이트] 팬오션이 자본 시장에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두 번의 기업 회생 절차(법정 관리)를 이겨내고 역대 최고 신용도 회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강도 높은 구조 조정과 균형 있는 재무 정책 덕분에 이리저리 주인이 바뀌던 ‘골칫덩이’ 해운사에서 탄탄한 수익 창출 능력을 갖춘 하림그룹의 ‘알짜’ 자회사로 변모하는 모습이다.‘전성기’ 신용 등급 눈앞…주가도 급등
올 4월 한국의 신용 평가사들은 팬오션의 신용 등급 전망을 잇따라 상향 조정했다.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 모두 팬오션의 신용 등급 전망을 종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바꿨다. 신용 등급이 ‘긍정적’이라는 것은 팬오션의 신용도에 영향을 미칠 만한 주요 평가 요소를 감안할 때 신용 등급이 상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는 팬오션의 신용 등급을 ‘A-’로 평가했다. 신용 등급이 한 단계만 올라도 팬오션은 10년 만에 역대 최고 신용 등급을 되찾게 된다. 선종 다각화로 사업 안정성이 높아진 데다 영업 현금 흐름이 꾸준히 확대된 덕분이다.
팬오션은 매출 기준으로 한국 2위의 대형 해운사다. 총 217척의 선단을 운영하고 있다. 지분 54.7%를 갖고 있는 하림지주가 팬오션의 최대 주주다. 팬오션은 포스코·한국전력·한국제분협회·한국가스공사 등 업력이 오래되고 시장 지위가 우수한 거래처와 장기 운송 계약을 맺고 있다. 지속적으로 신규 수주에 성공하면서 장기 계약에서 발생한 매출은 지난해 8억 달러(약 8940억원)로 늘었다. 해운업계에선 중·장기적으로 10억 달러 이상으로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팬오션이 보유한 장기 계약은 선박 도입 때부터 약 15~25년간 특정 화주의 전용선으로 사용되는 연속 항해 용선과 특정 계약 기간 동안 일정 선적량을 기준으로 일정 간격을 두고 지속 운송하는 장기 대량 화물 운송으로 구분된다. 37건의 연속 항해 용선 계약의 평균 잔존 기간은 약 14년(지난해 말 기준)이다. 한국 선사 중 가장 길다.
장기 대량 화물 운송 계약은 명시된 기간이 6개월~1년 정도다. 비교적 단기 형태지만 지속적으로 계약을 갱신하고 있다. 컨테이너선도 협의체를 통한 진입 장벽을 바탕으로 큰 변동없이 매출을 내고 있다.
단기 영업은 변동성이 큰 벌크선 시황에 따라 이익 가변성이 나타나고 있지만 오래 축적해 온 영업 노하우와 선대 경쟁력으로 이익 변동을 완화하고 있다. 김종훈 한국기업평가 선임연구원은 “단기 용선의 비율을 높이고 운송 실수요와 운용 선대를 연결 짓는 탄력적인 선대 운용을 통해 단기 영업의 위험을 통제했다”고 설명했다.
팬오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시황이 급등락한 지난해에도 단기 영업 부문에선 소폭의 매출 총이익을 올렸다. 이렇다 보니 팬오션의 지난해 영업이익(연결 기준)은 2252억원을 기록했다. 2016년 1679억원, 2017년 1950억원, 2018년 2039억원, 2019년 2100억원으로 증가세다.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마진(별도 기준)은 지난해 21.1%를 나타냈다. 이전까지 18% 안팎에서 움직이다가 지난해 큰 폭으로 뛰었다.
시황을 따르는 선박 투자 대신 수익성이 좋은 우량 장기 계약 중심으로 보수적인 투자를 진행하면서 재무 구조도 모범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팬오션의 부채 비율은 66%에 그쳤다. 한때 300%를 훌쩍 웃돌던 부채 비율은 50~60%대에서 유지되고 있다. 투자 자금의 외부 차입 조달 비율은 경쟁사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대규모 사업 구조 조정에 힘입어 2014년 이후 영업 현금 흐름이 흑자를 이어 가고 있다. 장기 운송 계약을 기반으로 3000억원 이상의 영업 현금 흐름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 해운업의 특성상 운전 자본 투자 부담이 크지 않다 보니 순영업 활동 현금 흐름도 안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업황 전망도 팬오션의 신용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해운업은 대표적인 위험 업종으로 꼽혀 왔다. 이 같은 ‘해운업 디스카운트(저평가)’ 때문에 자본 시장에서도 수년째 기관투자가에게 외면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주요 국가의 경기 회복 기대에 따른 수요 반등과 해운사들의 운항 감축 등이 맞물려 글로벌 해운 시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팬오션을 바라보는 기관투자가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주식 시장에서도 호평이 이어지면서 최근 1년 새 팬오션의 주가(올 4월 말 기준)는 113% 급등했다.
굴곡진 과거 털고 하림에 안착
팬오션의 신용도가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달린 것은 아니다. 1966년 범양상선으로 시작한 팬오션은 첫 법정 관리 후 2004년 STX그룹에 인수됐다. STX그룹에 인수된 이후 2011년까지는 안정적으로 신용 등급 ‘A’를 유지했다.
하지만 해운 업황 악화와 과도하게 낮은 가격에 체결해 놓은 장기 용선 계약이 맞물리면서 재무 상태가 빠르게 나빠졌다. 사업·재무 전망을 우려한 한국의 신용 평가사들이 2012년 부정적 신용 등급 전망이라는 ‘꼬리표’를 달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2012년 말 ‘BBB급’까지 내려앉은 후에도 수차례 신용 등급이 떨어졌다. 2013년엔 STX그룹 전체가 부실화되면서 결국 팬오션도 둘째 법정 관리를 신청했다. 신용 등급은 채무 불이행 상태를 의미하는 ‘D’까지 추락했다. 신용 등급이 ‘D’라는 것은 자본 시장에서 팬오션의 가치가 휴지 조각과 다름없다는 말이다.
법정 관리를 거치면서 팬오션은 ‘부활’의 기회를 노렸다. 강도 높게 채무 재조정을 단행하고 사업 구조를 재편했다. 그리고 하림그룹의 품에 안겼다. 2015년 당시 1조원이 넘는 거액을 들여 팬오션을 인수한 하림그룹을 두고 시장에선 우려의 시각이 많았다. 해운 업황의 불확실성이 높았던 상태여서 자칫 ‘승자의 저주’를 겪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았다. 팬오션을 비싼 가격에 인수해 하림그룹의 재무 상태까지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부정적인 전망이 이어졌다.
이런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하림그룹은 팬오션에 과감하게 구조 조정의 ‘메스’를 들이댔다. 불리한 장기 용선 계약을 털어내고 우량한 장기 운송 계약에만 집중했다. 고비용 장기 용선 계약을 해지하는 방식으로 운영 효율화에 집중한 것이다. 하림그룹 차원에서 물동량도 지원했다.
이런 노력으로 팬오션은 하림그룹에 인수된 지 4년 만에 신용 등급을 ‘A-’까지 회복했다. 여전히 총차입금이 1조4000억원(지난해 말 기준)으로 적지 않지만 차입금의 80% 이상이 장기의 선박 금융이어서 만기가 잘 분산돼 있어 단기 상환 부담이 크지 않은 편이다.
자본 시장에서도 팬오션을 반기는 분위기다. 팬오션은 STX그룹에 속해 있던 시절, 법정 관리 전까지는 매년 꾸준히 자본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했다. 그 덕분에 투자은행(IB)이나 기관투자가들과 네트워크가 좋은 편이다. 법정 관리 이후 한동안 자본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재무 상태를 재정비한 뒤 자본 시장에 다시 얼굴을 내비치고 있다. 하림그룹에 인수된 초반엔 시중은행의 보증을 받아 자금 조달에 나섰지만 점차 자체 신용도만으로 독자적으로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다.
강교진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발주 잔액과 최근 수주한 계약의 신조 투입이 이어지면서 이익 규모가 계속 확대될 것”이라며 “업황 전망을 감안하면 올해 이익이 전년 대비 소폭 개선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은정 한국경제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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