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기업으로 창업해 세계 유일 기술 개발…재재생도 가능, 폐가죽 100% 순환 경제 실현

[ESG 리뷰] ESG 혁신 기업
김지언 아코플레닝 대표가 가죽 실을 들고 직접 짠 원단 앞에 서 있다.
김지언 아코플레닝 대표가 가죽 실을 들고 직접 짠 원단 앞에 서 있다.
최근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은 ‘지속 가능성’에 빠져 있다.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는 2025년까지 10개 제품 중 9개를 지속 가능한 제품으로 만들 계획이다.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려는 노력 중 하나로, 올해 초에는 50% 재활용 소재로 구성된 운동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재생 소재를 찾아다니는 아디다스가 폐플라스틱과 함께 주목한 소재, 바로 폐가죽이다.

전 세계 연간 가죽 폐기물 발생량은 약 700만 톤에 달한다. 전체 폐기물의 약 10%를 차지한다. 가죽 폐기물 중 재활용되는 비율은 약 10%로 일부 종류에 국한된다. 가죽은 썩지 않도록 가공되며 폐기될 때는 대부분 소각 또는 매립돼 토양과 대기를 오염시킨다. 환경 전문가들은 페플라스틱·폐배터리와 함께 ‘순환 경제’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게 폐가죽이라고 조언한다.

버려진 가죽을 럭셔리 브랜드들이 열광하는 재생 소재로 탈바꿈시키는 한국의 작은 중소기업이 있다. 1인 기업으로 창업 후 ‘가죽 폐기물의 지속적인 자원 순환 실현’의 미션을 향하는 아코플레닝이다. 폐가죽의 리사이클로 생활 소품을 만드는 시도는 기존에도 이어 왔다. 하지만 폐기된 가죽을 활용하는 게 아니라 완전 분해해 재사용하는 기술은 보편화되지 않았다. 아코플레닝은 재생 가죽 분야에서 ‘재생 가죽 실’이라는 새 분야를 개척하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자리한 작은 공장에 아디다스·아르마니를 비롯해 지속 가능성에 빠진 럭셔리 브랜드들이 줄을 서고 있다.
‘폐가죽에서 실 뽑는다’…아르마니·아디다스도 열광하는 아코플레닝
전 세계 20여 개 업체들이 경쟁하는 재생 가죽 시장

전 세계적으로 가죽을 재생하는 아이디어는 독일의 살라만다에서 100년 전 가죽 뒷면을 깎아낸 가루인 세이빙 스크랩(shaving scrap)으로 레더보드(leather board)를 만들면서 본격화됐다. 김지언 아코플레닝 대표는 “재생 가죽은 시대상을 반영한다”면서 “종이가 너무 비쌀 때 마분지를 대체하기 위해 종이의 물성을 가진 레더보드가 나왔듯이 지금 다시 재생 가죽은 지속 가능하게 선순환돼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의류학을 전공하고 피혁 디자니어로 가죽과 함께 생활해 왔다. 17년간 패션 기업에서 일하는 동안 가죽 공정에서의 환경 파괴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가죽의 특장점에 대해 그 누구보다 깊이 고민했다. 폴리염화비닐(PVC)과 같은 기존 합성 대체품은 플라스틱 폴리머로 생산돼 생물 분해가 되지 않는다. 특히 9900원에 세 켤레짜리의 신발을 만드는 과정에선 회의감을 느꼈다. 제조 공장은 손수건으로 막아도 눈물이 흐르는 현장이었다. “엄마도 신고 동생도 신을 수 있는 신발을 만들고 싶다”고 선언하고 직장인이 아닌 창업가로서 재생 가죽 시장에 뛰어들었다.

가죽 폐기물 재활용 회사, 아코플레닝은 처음부터 타깃이 생활 폐기물이었다. 하지만 현재 제도에서는 생활 폐기물에서 폐가죽을 분리 수거할 수 없다. 그 대신 가죽 생산 공정에서 버려지는 가죽 폐기물을 가져온다. 한국의 가죽 산업은 미국·호주·남미 등에서 수입해 온 가죽을 가공해 수출하는 데 강점을 가진다. 그 과정에서 표면이 좋지 않거나 불량인 가죽은 전량 폐기되고 있다. 아코플레닝은 이러한 불용 스크랩을 독자 기술의 섬유화 기술로 가용 폐기물로 자원화했다. 그것으로 실을 만들고 실로 원단을 짜기도 한다.
가죽 가공 과정에서 나오는 가죽 폐기물들.
가죽 가공 과정에서 나오는 가죽 폐기물들.
진정한 재생이란 무엇인가?

아코플레닝이 세계의 주목을 받은 특별한 계기가 있다. 가죽으로 실을 뽑아내는 혁신을 이루면서다. 또한 이 실로 직접 원단을 짜기도 한다. 면·마·견·모 등 네 종류의 방적사만 존재하는 시장에 가죽이라는 새로운 방적 섬유가 등장하면서 학계에서 먼저 주목했다. 산업에서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와 스포츠 브랜드들이 “크레이지 컴퍼니”라며 치켜세웠다. 유럽에서도 가죽으로 실을 뽑아내는 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현재까지 전 세계 20여 재생 가죽 업체 중 실과 원단을 구현한 곳은 아코플레닝이 유일하다. 특히 아르마니에서는 지속 가능성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별도의 택을 제작했다. ‘재생 리얼 가죽(Recycled Real Leather)’이라는 택이 들어간 아르마니의 모든 가방은 아코의 소재를 사용한 것이다. 이는 럭셔리 브랜드 세계에서 좋은 레퍼런스가 돼 입소문을 타게 되는 계기가 됐다.

김 대표는 “처음에는 최초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는데 ‘섬유계의 아카데미’라고 불리는 프리미에르비종 전시회에서 2019년 대상을 수상한 뒤 ‘온리 원’, ‘넘버 원’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때부터 타미힐피거·발렌시아가 등 30여개 브랜드에서 앞다퉈 아코플레닝의 재생 가죽 소재를 도입했다. 재생 가죽은 항공사 좌석의 시트 커버로 납품되거나 자동차 내장재, 가구나 전자 제품의 외장 등에도 활용된다. 아코플레닝은 현재 자동차 브랜드와의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고 있다.

아코플레닝에 입사하면 무조건 외워야 하는 구호가 있다. ‘가지자’, ‘사가지’가 그것이다. 아코플레닝의 미션과 기술 개발 원칙이다. ‘가죽 폐기물의 지속적인 자원 순환 실현’을 줄인 가지자는 미션에 해당한다. 또 4대 기술 원칙은 가죽 폐기물을 주원료로, 물을 쓰지 않고 화학 처리하지 않으며 반드시 재재생돼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 대표는 “재생 가죽 글로벌 넘버원이라는 목표를 꼭 달성할 예정”이라며 “최근 많은 곳에서 관련 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하고 있지만 새벽 세 시 반에 일어나 하루종일 가죽 생각만 하는 저를 따라오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4가지 기술 개발의 원칙은 궁극적으로 재재생하기 위해 물성 변화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데서 만들어졌다. 고형 형태의 폐기물을 재활용할 때 이것으로 다시 제품을 만들면 재단 폐기물이 발생한다. 이러한 폐기물이 다시 재생돼 자원의 선순환을 이루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아코플레닝은 가죽의 대체제로서의 대안과 화학 섬유의 간접적 대체 솔루션으로서의 역할을 완성하고자 한다.

또한 가죽 재활용 과정에서 친환경 공정을 유지하는 점도 최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트렌드와 맞아떨어지고 있다. 환경 기술은 진정성에서 가치가 결정된다. 재생하는 과정에서 물과 화학 제품을 쓰면 폐수가 나오고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게 돼 진정한 의미의 친환경 소재라고 볼 수 없다는 게 김 대표의 지론이다. 가죽 폐기물을 친환경적 방법으로 재생해 가죽실을 제조하는 것도 아코플레닝이 글로벌에서 인정받고 있는 비결이다.

최근 김 대표의 고민은 원천 기술 보호·확산에 있다. 디자이너이자 개발자로 직접 개발 노하우와 설비를 제작한 김 대표는 최근 친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에 따라 동시에 원천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실제 협업을 제안하면서 특허 기술을 탈취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한국이 소재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원천 기술을 지키고 나아가 글로벌 표준을 만드는 게 급선무다. 이를 위해 아코플레닝은 세계 최초로 재생 가죽 방적사 표준의 KS 제정을 통한 글로벌 국제표준화기구(ISO) 재생 가죽 방적사 기준 표준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가죽 폐기물의 순환 경제 생태계 확립이 과제로 꼽힌다. 한국 유일인 만큼 힘을 보태줄 경쟁사가 없다는 점이 정책의 도움을 받는 데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가죽 폐기물을 모두 대체하면 연간 45만 톤 정도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한경 에코앤파트너스 대표는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고 나아가 생활 폐기물을 통한 재생이 가능해진다면 한국이 가죽 재생 소재 강국으로서 글로벌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