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닥 상장 성공, 커지는 유럽 비건 시장…비주류 겨냥 넘어 매출액 급성장
[글로벌 현장] 우유의 대체품으로 유럽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귀리 음료 회사인 스웨덴의 푸드 테크 스타트업 오틀리(Oatly)가 5월 19일 나스닥에 상장했다. 이번 상장으로 오틀리는 100억 달러(약 11조2950억원) 이상의 기업 가치를 평가받았다.오틀리는 식물성 우유 시장의 대표 기업으로, 귀리·아몬드·코코넛 등을 사용한 우유 대체 음료와 요구르트 등 식물성 유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1993년 설립됐고 육류·유제품·달걀 등을 먹지 않는 비건 문화와 함께 성장했다. 오틀리의 주원료인 귀리는 우유 대비 5분의 1 수준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재배 시 더 적은 양의 물과 토지 자원을 이용하기 때문에 지속 가능성을 중시하는 젊은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오틀리는 1980년대 후반 스웨덴 룬트대 연구진이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유당 불내성 환자를 위한 대체 음료를 개발하는 데서 시작됐고 귀리를 액체로 만들어 영양학적으로 우수하고 환경적 측면에서는 지속 가능한 귀리 음료를 세계 최초로 생산하게 됐다. 이후 오틀리는 귀리 기반의 식품을 개발하고 생산하기 시작했다. 오틀리는 2019년 1억6500만 리터의 제품을 생산하면서 전년도 대비 거의 2배 정도 생산량이 증가할 정도로 시장의 수요가 늘어났다.
유럽에서 환경 이슈가 중요해지면서 오틀리의 매출도 동시에 증가했는데 2019년 2억400만 달러(약 2309억7000만원)를 기록했던 매출은 2020년 4억2140만 달러(약 4771억원)로 증가했다. 오틀리 매출의 87%는 귀리 기반 음료이고 7%는 유채유다. 오틀리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요구르트 등 반드시 플라스틱을 쓸 수밖에 없는 제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포장이 종이로 만들어진다. 이러한 성장에 힘입어 스웨덴 말뫼의 본사 이외에도 헬싱키·암스테르담·런던·베를린·상하이·홍콩에도 지사를 설립하고 나스닥 상장으로까지 이어졌다.
유럽의 기업들이 주목하는 식물성 음료 시장
스위스의 글로벌 식료품 기업 네슬레도 완두콩을 재료로 한 식물성 음료 ‘분다(Wunda)’를 출시했다.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신규 브랜드를 내놓는 일이 드문 네슬레가 현재 170억 달러(약 19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식물성 음료 시장에 뒤늦게 진출했다”며 네슬레의 진출을 다분히 ‘오틀리에 대한 견제’로 해석했다.
분다는 프랑스·포르투갈·네덜란드에서 가장 먼저 출시될 예정이고 귀리 음료보다 단백질 함량이 높은 것이 차별점이다. 우유 찬성론자들에게 귀리 음료는 그간 ‘단백질 함량 미달’이라는 약점에 노출돼 왔기 때문이다. 네슬레는 기존 생산 시설을 조정해 분다의 생산량을 높일 예정이고 우유 기반 음료와 식료품에 대한 대체품을 생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기존 제품인 네스퀵에 식물성 우유 대체 음료를 적용하고 스타벅스에 납품하고 있는 커피 크리머도 귀리와 아몬드 음료를 혼합한 제품을 사용해 이른 시일 내에 시장점유율을 높여 갈 예정이다.
현재 유럽의 1위 식물성 음료 브랜드는 벨기에의 알프로(Alpro)다. 1980년 설립된 알프로는 프랑스 다국적 기업인 다논(Danone)의 자회사다. 주로 콩·아몬드·헤이즐넛·캐슈너트·쌀·귀리·코코넛으로 만든 식품과 음료를 제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식물성 우유 대체 음료를 생산하는 기업들은 이미 설립된 지 오래된 글로벌 기업들이지만 이들이 생산하는 식물성 음료의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기후 위기’가 중요한 이슈가 되면서 소비자들의 관심도 지속 가능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오틀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사모펀드 블랙스톤의 스티븐 슈워츠먼 최고경영자(CEO)가 ‘기후 위기는 사기’라고 주장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인 것이 밝혀져 한때 불매 운동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만큼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소비자의 민감도가 큰 영역이기 때문이다. 식물성 우유는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니다. 리서치 업체 민텔(Mintel)에 따르면 2015년 이후의 영국 식물성 우유 매출은 비거니즘과 같은 채식주의 열풍으로 30% 증가했다.
식물성 고기 만드는 기업들도 주목, 커지는 비건 시장
음료뿐만이 아니다. 지속 가능성을 지향하는 소비자가 늘고 비건이 미래 지향적 음식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식료품 시장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베를린에 본사를 둔 유럽의 비건 슈퍼마켓 체인인 비건즈(Veganz)에 따르면 2020년 유럽의 비건 인구는 260만 명으로, 2016년 130만 명 대비 두 배로 증가했다. 우유와 달걀까지 먹지 않는 철저한 채식주의인 비건뿐만 아니라 육식만 하지 않는 베지테리언, 의식적으로 고기 소비를 줄이려는 플렉시테리언까지 포함하면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유럽 인구의 약 30%를 차지한다. 같은 조사에서 유럽인의 20%는 식물성 재료로 만드는 대체육을 소비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소시지와 햄 등 빵과 함께 먹는 주식에서 가장 많은 소비자들이 대체육을 원하고 있고 그 밖에는 치즈 대체품, 식물성 제과류와 스낵에 관심이 있다고 응답했다. 통계 회사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유럽 대체육 시장은 2020~2025년 동안 연평균 7.3%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2019년 기준 유럽 대체 육류 시장의 가치는 17억1860만 달러(약 1조9451억원)다.
유럽 국가 중 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네덜란드 순으로 채식 소비자의 수가 많고 시장이 가장 크다. 현재는 육류와 가장 식감이 비슷한 밀 글루텐이 유럽 채식 재료 시장의 4%를 차지하고 있다.
아직은 육류 시장에 비해 작은 규모이지만 성장 잠재력이 크기 때문에 대형 식품 회사들도 대체육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영국 투자은행 바클리스(Barclays)는 향후 10년 내 전 세계 육류 대체품 판매량이 10배 증가해 시장 규모가 1250억 유로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비건 제품은 앞으로 점점 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주류 소비 트렌드가 될 것이다.
식자재뿐만 아니라 식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도 ‘지속 가능성’은 중요한 키워드다. 농작물 재배를 비롯해 식품 가공 과정에서 탄소와 질소 배출량을 줄이고 생물의 다양성과 생태계를 보전하고 있는지는 정치적 이슈만이 아니라 젊은 소비자들의 최대의 관심사가 됐다. 또한 로컬 푸드를 소비하자는 움직임, 식생활뿐만 아니라 동물 성분으로 만들어진 화장품과 동물의 가죽이나 털로 만들어진 옷을 이용하지 않는 ‘라이프스타일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존에 비건이나 채식주의가 일종의 사회적·정치적 운동의 관점에서 견지됐다면 최근에는 다양한 이유로 비건을 선택하며 하나의 유행으로 확산돼 비건 시장 또한 크게 성장하고 있다. 따라서 유럽 내의 많은 기업과 연구 기관들도 이에 발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 연구·개발(R&D)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여전히 육류 제품보다 가격이 비싼 비건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탄소 배출 관련 유럽연합(EU)의 규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친환경·비건·제로 플라스틱’ 등이 유럽의 기업들에는 R&D뿐만 아니라 마케팅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됐다.
베를린(독일)= 이은서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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