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현지 생산 돌입…가격·주행 거리 등 경쟁 우위, 노조 반발 변수
[비즈니스 포커스] 현대차그룹이 테슬라가 독식 중인 미국 전기차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미국에 2025년까지 74억 달러(약 8조1400억원)를 투자해 현지에서 전기차를 생산하고 수소차와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인프라 구축 등에 나선다. 올해를 ‘전기차 도약의 원년’으로 설정한 만큼 현지 생산을 통해 앞으로 점유율을 얼마까지 늘릴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현대차그룹은 올해부터 4년간 미국 신규 투자로 제품 경쟁력 강화와 생산 설비 향상 등을 추진한다. 전기차와 수소차·UAM·자율주행·로보틱스 등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대규모 투자다. 미래 혁신 기술을 확보해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하고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퀀텀 점프를 달성한다는 목표다.
핵심은 전기차다. 현대차의 아이오닉5, 기아의 EV6 등 전용 전기차 모델은 내년 중 현지 생산에 돌입한다. 아직 생산 물량 계획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미국 시장 상황과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차 정책 등을 검토해 공장 가동 물량을 결정할 방침이다.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미국 생산을 결정한 배경은 거대한 전기차 수요에서다. 현지 전기차 시장은 2025년 240만 대, 2030년 480만 대, 2035년 800만 대 등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가 ‘그린 뉴딜’과 ‘바이 아메리카(미국 제품 구매)’ 정책을 강력하게 펼치고 있어 미국 생산을 결정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 미국 전기차 판매량, 테슬라 3% 불과
현대차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미국에서 전기차를 생산하면 최대 경쟁자는 역시 현지 시장을 독식 중인 테슬라다.
테슬라는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전기차를 20만6000대 판매했다. 이어 제너럴모터스(GM) 2만1000대, 폭스바겐 1만2000대, 르노-닛산 1만 대 순이다. 현대차는 7000대 판매에 그쳐 테슬라의 3%에 불과한 수준이다. 우선 테슬라를 제외한 GM 등의 판매량을 넘어서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
시장에선 2022년 이후 미국 현지 생산으로 현대차가 테슬라에 이은 2위 자리를 확보할 것으로 전망한다. 르노-닛산은 장기간 단일 모델인 ‘조에’만 판매 중이고 GM의 ‘EUV’와 폭스바겐의 ID.4는 주행 가능 거리 등 상품성에서 현대차에 밀린다. EUV의 가격은 3만8495달러, 주행 거리는 402km다. ID.4는 4만5690달러, 주행 거리는 418km다.
반면 아이오닉5는 4만5000달러, 주행 가능 거리는 467km다. EUV보다 가격은 비싸지만 전기차 운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행 거리 측면에서는 분명한 경쟁 우위가 있다. 김준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현대차의 아이오닉5는 GM과 폭스바겐의 전용 전기차와 비교해 가격과 주행 거리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며 “전기차 상품성과 현지 생산 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현대차그룹이 조만간 테슬라에 이어 시장 2위 자리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현대차그룹은 내연기관차 시장에서 GM·포드·피아트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3와 도요타·혼다 등 일본 업체에 밀려 현재까지 현지 시장에서 ‘톱5’에 든 적이 없다. 하지만 이번 대규모 투자를 계기로 지금까지의 시장 판도를 뒤엎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결단에 반발하는 노조
현대차그룹의 미국 대규모 투자는 정의선 회장의 결단에서 이뤄졌다. 정 회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도 지난 4월 미국으로 깜짝 출장을 다녀왔다. 당시 앨라배마 공장 등을 찾아 투자 계획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친환경 정책이 차량 생산 및 판매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파악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정 회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글로벌 친환경 선도 브랜드로의 입지 강화를 제1 과제로 꼽았다.
다만 정 회장의 대규모 투자 계획에 노동조합이 크게 반발하고 있어 실제 투자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관측된다. 노조는 미국 생산 라인 확대보다 국내 공장에 집중 투자해야 할 시기라고 주장한다.
노조는 “해외 공장은 현재 수준으로도 충분하다”며 “미국 등이 우선될 것이 아니라 한국의 산업 발전과 노조원의 고용 보장을 위해 국내 생산 거점에 투자해야 한다”고 반대하고 있다.
회사 측은 이번 미국 투자 결정은 전기차 신규 수요 창출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한국 전기차 생산 물량이 해외로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한국 공장은 여전히 전기차 핵심 기지로 역할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현대차그룹은 매년 20조원 규모의 투자를 집행한다. 이번에 발표한 5년간 8조원 미국 투자는 연간으로 따지면 1조6000억원으로 8% 수준이다.
현대차의 진화 작업에도 노조 측은 여전히 투자에 반대하고 있다. 올해 임금 단결 협상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상황에 더해 투자 계획까지 막아서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한국에는 이미 핵심 사업장과 연구·개발(R&D) 시설이 완비돼 있다”며 “미국 투자 결정은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차 정책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현지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투자 계획을 수정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유호승 기자 y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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