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법 개정으로 판로 확대하고 가격 경쟁력 갖춰…4월 OEM까지 허용되며 편의점 ‘판매 1위’

[비즈니스 포커스]


한국의 주요 맥주 업체들은 늘 치열한 광고 경쟁을 펼친다. 판매량이 꺾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에게 꾸준하게 제품을 각인시켜 주는 것이 중요한데 여기에 광고만큼 효과적인 도구도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맥주 광고는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는 톱스타들이 주로 등장하는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맥주 시장에 불고 있는 ‘곰표 밀맥주(이하 곰표 맥주)’의 인기는 주류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큰 화제다. 흔한 TV 광고 한 편 없이도 ‘없어서 못 산다’는 말이 나올 만큼 품귀 현상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규제 완화의 힘’…곰표 맥주의 이유 있는 판매 돌풍
곰표 맥주가 맥주 시장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편의점 CU가 곰표 밀가루로 유명한 대한제분, 수제 맥주 업체 세븐브로이와 손잡고 지난해 5월부터 단독 판매 중인 이 제품은 최근 편의점 맥주 판매량(CU 기준)에서 1위를 차지했다.

CU에 따르면 수제 맥주 업체의 판매량이 대형 맥주 회사들을 제친 것은 CU 창사 이후 처음이다. 주류업계에서는 수제 맥주의 성장을 가로막던 규제의 족쇄가 하나둘 풀려 이 같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2018년부터 편의점·대형마트 판매 허용“주세법이 개정되지 않았으면 지금의 곰표 맥주도 없었다.”
김진만 한국수제맥주협회 과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처럼 불과 수년 전만 하더라도 수제 맥주 업체들은 엄격한 규제의 적용을 받아 성장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편의점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주세법에 따라 수제 맥주는 오직 이를 생산하는 양조장이나 술집과 같은 영업장에서만 판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 과장은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 맛있는 맥주를 만들어도 소비자들에게 판매할 기회조차 없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수제 맥주 업체들의 성장을 가로막던 ‘판매 제한’이라는 규제의 대못이 뽑힌 것은 2018년이다. 수제 맥주 업체들의 거센 반발 끝에 결국 주세법이 개정됐고 이때부터 이들이 생산한 제품을 편의점이나 대형마트 등에서 판매할 수 있는 길이 처음 열렸다.

만약 당시 규제가 완화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한 업계 관계자는 “당연히 CU와 같은 편의점의 주류 코너는 대기업 또는 수입 맥주사가 만든 맥주만 판매했을 것”이라며 “곰표 맥주와 같은 제품은 빛조차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 완화의 힘’…곰표 맥주의 이유 있는 판매 돌풍
지난해 추가로 개정된 주세법은 수제 맥주 업체들이 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제 맥주에 적용되는 과세 방식이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전환된 것이다. 김 과장은 “과세 방식이 바뀌지 않았으면 곰표도 그저 그런 판매량을 보였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현재 CU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곰표 맥주의 흥행 요인 중 하나는 ‘착한 가격’을 꼽을 수 있다. 4캔에 1만원에 판매 중이다. 곰표 맥주를 이런 가격에 판매할 수 있었던 배경이 바로 주세법 개정에 따른 과세 방식의 전환이다.

다시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수제 맥주 업체들은 편의점과 대형마트 등으로 판매처를 확대하는 데 성공했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설 자리가 점점 좁아져 갔다.

대기업이 만든 맥주나 수입 맥주와 비교할 때 가경 경쟁력에서 크게 밀렸기 때문이다. 당시 수제 맥주 하나의 가격은 5000원 이상으로 비쌌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여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제품을 싼값에 팔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제품 원가에 따라 내야 할 세금이 정해지는 이른바 ‘종가세’가 문제였다.

수제 맥주는 독특한 맛을 내기 위해 다양한 재료를 배합하고 소량 생산한다. 이런 특성상 원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한 개의 제품을 팔 때마다 내야 하는 세금도 많았다. 수익을 내기 위해선 결국 5000~6000원이라는 비싼 값에 판매할 수밖에 없었다. 그중 절반이 넘는 금액이 세금으로 부과됐다.
종량세 전환으로 가격 경쟁력 강화
대기업들이나 수입 맥주는 사정이 달랐다. 대기업들은 대량 생산을 통해 원가를 낮출 수 있었다. 수입 맥주도 마찬가지다. 원가를 낮게 신고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내야 하는 세금이 적었다.

그러다 보니 4캔 또는 6캔에 ‘1만원’과 같은 파격적인 프로모션을 연일 진행하며 소비자들을 그러모았다. 아무리 맛있어도 값이 비싸다 보니 수제 맥주는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규제 완화의 힘’…곰표 맥주의 이유 있는 판매 돌풍
지난해 주세가 종량세로 바뀌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수제 맥주도 충분한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구조가 됐다. 원가와 관계없이 알코올 도수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다 보니 제품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여력이 생긴 것이다.

가격이 낮아진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소비자들은 빠르게 반응했다.

예컨대 지난해 초 주세법 개정 직후 CU 편의점에서 국산 맥주 판매 비율은 약 3년 만에 수입 맥주를 제쳤다. 여기엔 수제 맥주의 판매량 증가가 크게 기여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런 수제 맥주의 흥행은 CU가 세븐브로이와 대한제분에 요청해 함께 수제 맥주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한 계기로도 작용했다.

CU 관계자는 “가격 경쟁력을 갖춘 수제 맥주가 갑작스럽게 인기를 끌면서 CU에서만 단독으로 판매하는 제품을 기획하게 됐고 그 결과 지난해 5월 곰표 맥주를 선보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곰표 맥주가 출시 약 1년이 지난 최근에서야 곰표 맥주가 판매량 1위를 기록한 것 역시 규제 완화 덕분이다.

곰표 맥주는 출시 직후부터 품절 사태를 일으키며 큰 인기를 끌었지만 판매량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제조사인 세븐브로이가 매달 생산할 수 있는 수량이 대략 20만 개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올해 4월부터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판매량에도 ‘날개’를 달 수 있게 됐다.

주류 제조업체가 다른 제조업체 시설을 이용해 위탁 생산(OEM)할 수 있도록 주세법이 개정된 것이다.

세븐브로이는 규제가 완화되자마자 롯데칠성음료에 곰표 맥주의 위탁 생산을 맡겼다. 곰표 맥주의 월 생산량은 20만 개에서 300만 개로 15배 급증했고 결국 편의점 판매 1위 자리까지 꿰차게 됐다.

곰표 밀맥주의 흥행으로 수제 맥주 시장의 성장 속도도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수제맥주협회는 지난해 약 1000억원대를 기록했던 시장 규모가 2024년 3000억원대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규제 완화의 힘’…곰표 맥주의 이유 있는 판매 돌풍
실제로 최근 CU의 곰표 맥주의 성공 사례를 목격한 다양한 기업들이 수제 맥주 업체에 의뢰해 협업 제품 생산을 제안하며 제품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또 OEM이 가능하도록 허용된 주세법 개정에 발맞춰 그동안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던 수많은 수제 맥주 업체들이 대기업에 의뢰해 생산량을 늘리는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