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자동차 문화의 아이콘 된 ‘한국의 수프림’
나이키·BMW·현대차·아모레도 러브콜
한국타이어·만도는 지분 투자까지

[스페셜 리포트]
피치스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시작된 ‘스트리트 카 컬처(street car culture)’ 기반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현대차·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BMW·메르세데스-AMG·나이키 등 글로벌 유명 브랜드들로부터 먼저 주목 받았다. /피치스그룹코리아 제공
피치스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시작된 ‘스트리트 카 컬처(street car culture)’ 기반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현대차·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BMW·메르세데스-AMG·나이키 등 글로벌 유명 브랜드들로부터 먼저 주목 받았다. /피치스그룹코리아 제공
피치스 브랜드명은
미국 젊은이들이 멋지게 튜닝한 자동차 뒤태를 보고
‘복숭아’라고 부르는 것에서 유래됐다



피치스(Peaches)는 자동차 문화의 성지로 불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시작된 ‘스트리트 카 컬처(street car culture)’ 기반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다. 콘텐츠·영상·패션·음악 등 다양한 사업을 하며 글로벌 브랜드들로부터 먼저 주목받았다. 2018년 혜성처럼 등장한 피치스는 그해 나이키가 뽑은 ‘주목해야 할 브랜드’에 선정됐고 포르쉐·BMW·메르세데스-AMG 등 완성차 브랜드들의 캠페인 영상을 찍으며 해외에서 마니아 층을 넓혀 왔다.

미국에서 진행한 슈퍼카인 람보르기니 우라칸을 타고 고객이 주문한 옷을 배송해 주는 마케팅으로 유명해 미국 브랜드라고 오해하지만 피치스는 여인택 대표를 비롯해 13명의 한국인 크리에이터들이 이끄는 토종 한국 브랜드다. 한국에서는 ‘현대차 N 브랜드’ 영상과 아모레퍼시픽 ‘레어카인드 FAKE 근절 캠페인’ 영상으로 유명하다.

글로벌 브랜드들은 평생 고객이 될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해 국내외 마니아 층을 보유한 피치스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콧대 높은 글로벌 브랜드들이 업력 4년 차 스타트업인 피치스와의 협업을 갈망하는 이유는 그들의 구매층이 점점 어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피치스에는 자사 브랜드 이미지를 ‘영(young)하게 바꾸고 싶다’는 기업들의 협업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피치스 도원은 실제 차량을 스타일링 할 수 있는 개러지를 비롯해 차량 전시와 공연, 브랜드 행사 등 문화 행사를 즐길 수 있는 갤러리, 피치스 의류 등을 판매하는 매장과 카페 등 다양한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김기남 기자
피치스 도원은 실제 차량을 스타일링 할 수 있는 개러지를 비롯해 차량 전시와 공연, 브랜드 행사 등 문화 행사를 즐길 수 있는 갤러리, 피치스 의류 등을 판매하는 매장과 카페 등 다양한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김기남 기자
스케이트보드에 스티커를 붙이고 휠을 바꾸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꾸미는 문화를 즐기던 세대가 성장해 구매력을 갖게 되면서 자동차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자동차에 스티커를 붙이고 타이어를 바꾸고 원하는 스타일로 스타일링(튜닝)하며 새로운 자동차 문화를 즐기고 싶어 하는 세대가 등장했는데 한국에는 이들의 니즈를 만족시켜 줄 만한 스트리트 브랜드가 전무했다. 피치스는 이런 틈새를 공략해 자동차 문화 기반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완판 이후 재생산 NO…한정판 마케팅에 열광

피치스의 성장 잠재력을 보고 발 빠르게 투자한 기업도 있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타이어)는 2019년 피치스를 운영하는 피치스그룹코리아에 대한 지분 투자를 통해 혁신 성장을 이끌 차세대 동력이 될 새로운 사업 영역을 함께 탐색하기 시작했다.

피치스가 최근 서울 성수동에 오픈한 복합 문화 공간 ‘도원(D8NE)’의 건립에도 한국에서 유일하게 투자하는 등 피치스그룹코리아와 함께 비즈니스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한 다양한 협업 프로젝트를 이어 가고 있다.

올해 4월 오픈한 도원은 기존에 한국에 없던 자동차·패션·다양한 길거리 문화가 복합적으로 융합되는 공간 플랫폼이다. 실제 차량을 스타일링 할 수 있는 개러지를 비롯해 차량 전시와 공연, 브랜드 행사 등 문화 행사를 즐길 수 있는 갤러리, 피치스 의류 등을 판매하는 오프라인 매장, 2층 스케이트보드 파크, 위스키바와 카페, 정원 등 다양한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벌써 성수동의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으며 하루 2000명 이상의 방문객이 몰리고 있다. 피치스는 오프라인 도원을 통해 문화의 실체를 만들어 나간다는 방침이다.
피치스의 복합 문화 공간이자 오프라인 플랫폼인 서울 성수동의 피치스 도원 전경.  /김기남 기자
피치스의 복합 문화 공간이자 오프라인 플랫폼인 서울 성수동의 피치스 도원 전경. /김기남 기자
수프림이 미국의 스케이트보드 문화를 대표하듯 피치스는 자동차 문화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폭풍 성장하고 있다. 피치스는 패션 아이템으로도 많은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보통 브랜드가 한 시즌의 컬렉션을 한 번에 발매하는 것과 달리 피치스는 옷과 모자 등을 한 달에 한 번 온라인으로 한정 판매한다.

이 같은 한정판 마케팅과 드롭(drop) 시스템 때문에 피치스를 수프림과 비교하는 사람이 많다. 한정 수량만 출시하고 완판 이후에는 더 이상 재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피치스의 패션 아이템을 구하려면 드롭데이에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득템’에 성공해야만 한다. 대부분 제품이 발매와 동시에 매진되고 4~5시간 내 95%가 완판된다. 이런 한정판 마케팅이 희소성과 소장 가치를 중시하는 MZ세대의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는 평가다.

피치스가 가장 잘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고객을 팬으로 만드는 마케팅이다. 자동차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보면 피치스 로고 스티커를 구하고 싶다는 글과 로고 스티커를 붙인 인증 사진을 쉽게 볼 수 있다. 검색창에 피치스를 검색하면 스티커가 연관 검색어로 뜬다.
여인택(가운데) 피치스그룹코리아 대표와 13명의 크리에이터들.  /피치스그룹코리아 제공
여인택(가운데) 피치스그룹코리아 대표와 13명의 크리에이터들. /피치스그룹코리아 제공
피치스 브랜드명은 미국 젊은이들이 멋지게 튜닝한 자동차 뒤태를 보고 ‘복숭아’라고 부르는 것에서 유래됐다. 피치스 멤버들이 두 개의 이파리가 달린 복숭아 로고를 자동차 뒤 범퍼에 붙이고 다니는 모습이 인스타그램에서 화제가 되면서 대중에 유행처럼 번진 것이다. 로고 스티커도 한 달에 한 번 1500장만 한정 판매하는데 물량이 풀리는 족족 완판되기 때문에 가품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여인택 피치스그룹코리아 대표는 “모두가 한국을 자동차 불모지라고 하는데 그런 한국에서 만든 피치스 브랜드 로고 스티커를 지금 해외 소비자들은 자신의 차량에 붙이고 다니며 피치스가 만든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며 “여기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피치스는 미국 LA에서 기반을 닦은 브랜드지만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한국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여 대표는 “올해 오프라인 도원과 주유소·주차장을 활용한 행사를 기획해 사람들이 소비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 계획이고 내년에는 코로나19로 주춤했던 미국 LA와 일본·영국 등에서 사업 기회를 살피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인터뷰] 피치스의 ‘힙한 감성’을 만드는 사람들
허재영 피치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  /김기남 기자
허재영 피치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 /김기남 기자
허재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는 첫 오프라인 공간인 도원(D8NE)의 전체적인 공간 기획부터 제품 디자인·패션·영상 등 콘텐츠 생산 부문을 담당하는 브랜드팀을 총괄한다. 누누라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부터 배스킨라빈스·던킨·쉐이크쉑 등 다양한 브랜딩을 성공시켰다.


-도원 공간 디자인의 특징은 뭔가.

“도원은 이제 틀은 갖춘 상태다. 이 공간을 처음 기획할 때부터 모든 것이 가변적으로 되기를 바랐다. 언제든 새로운 공간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집기들에도 모두 바퀴가 달려 있다. 도원(D8NE)은 ‘도원결의’라는 사자성어에서 따왔다. 도원 로고의 숫자 8은 처음에 피치스가 8명의 크루로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돌아가는 자동차 바퀴를 상징하기도 한다.

도원을 만들면서 방문객들이 피치스를 자연스럽게 알아가면서 어떤 브랜드인지 체험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동선을 바꾼 것이다. 꼭 안쪽의 정원을 거쳐 내부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동선을 짰는데 정원을 통해 방문객들은 사계절을 다 체험할 수 있다. 사람들과 친해지고 소통할 수 있는 일종의 놀이터라고 생각한다.”


-도원을 오픈하고 달라진 점은 있나.

“피치스는 자동차를 좋아하는 코어 팬이 있는 상태에서 패션·의류를 시작한 것을 계기로 고객층이 다양해졌다. 오프라인 공간인 도원을 열었더니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하는데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보다 자동차를 앞으로 좋아할 사람들이 오는 곳으로 확장된 것 같다.”


-한정판 마케팅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나.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있듯이 뭔가를 하나 만들면 그 소비가 한정돼 있다. 일정 정도 소비되면 그것은 더 이상 쿨하지 않게 된다. 아무리 좋은 것도 멈추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소비자가 항상 설렐 수 있도록 늘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미국은 노래 한 곡이 빌보드 차트에 오르면 수년 동안 인기가 지속되는데 한국에선 소비하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기 때문에 대중이 질리는 속도가 빠르다. 계속 변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한물간 브랜드가 될 수 있어 한정 판매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앤디 김 피치스 COO  /피치스그룹코리아 제공
앤디 김 피치스 COO /피치스그룹코리아 제공
앤디 김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피치스의 전략기획팀과 전사운영을 총괄하고 있다. 미시간대에서 경제·경영학을 전공하고 피치스에 합류해 현대자동차 N 프로젝트, 아모레퍼시픽 레어카인드 캠페인 등에 참여했고 협업 프로젝트 관리와 전략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피치스는 협업 파트너를 특별하게 찾나.

“협업할 때 업종에 제한을 두지 않지만 모든 제안에 움직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제안이 들어오는 브랜드들에 꼭 묻는 것이 있다. 왜(why) 피치스와 협업하려고 하는지다. 단순하게 ‘지금 가장 핫한 브랜드여서 협업하고 싶다’고 한다면 거절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내보낼 수 있는 메시지가 확고하다는 확신이 서면 그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한다.”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있나.

“아모레퍼시픽 레어카인드와 함께 한 ‘FAKE 근절 캠페인’ 영상이다. 자동차 문화 기반의 피치스가 화장품 브랜드와 협업한 것이 뜬금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이 세상에 메시지를 내보내는 매개체는 화장품이고 피치스는 자동차다. 당시 협업의 목적은 피치스와 아모레퍼시픽이 각자의 매개체를 합쳐 가짜 문화를 표방하는 이들에게 목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해당 영상을 보면 건물 옥상에서 던져지는 차량이 체어맨인데 체어맨은 벤츠 로고 갈이를 해 벤츠처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 페이크 차로 악명이 높다. 그 차에 레어카인드 립스틱으로 ‘FAKE’를 쓰고 옥상에서 차를 밀어버렸다. 그때 추락한 차가 현재 도원의 정원에 전시돼 있다. 이런 식의 스토리 라인이나 양 사가 협업할 때 확고한 메시지가 있을 것 같으면 협업을 추진한다.”


-피치스가 지향하는 가치는 뭔가.

“과거 스케이트보드 휠과 데크를 바꾸며 그 문화를 즐겼던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차량에도 똑같은 행위를 그대로 하고 있다. 피치스가 도원에 스케이트 파크를 만든 이유는 다양한 유스 컬처를 응원하고 서포트하고 리드해야 사람들이 소비력이 생겼을 때 그들을 자동차 문화로 자연스럽게 유입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핵심 고객에만 집중하기보다 미래 잠재 고객에게 씨를 뿌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피치스의 풀 네임이 ‘피치스 원 유니버스(Peaches one universe)’인 것처럼 자동차 문화에 대한 모든 선입견을 타파하고 국적과 인종을 넘어 이 문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 흩어져 있는 자동차 하위 문화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목표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