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 농법에서 대체육까지 혁신 아이디어에 투자 몰려…“기업 가치 1년 새 10배 성장도 가능한 분야”
[ESG 리뷰] 이슈 테슬라(전기차 생산), 비욘드미트(대체육 개발), 인디고 애그리컬처(미생물 사용 비료 개발) 등 세 기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은 모두 기후테크를 연구해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조원인 스타트업)으로 성장한 곳이다. ‘기후테크’는 온실가스 배출 감소와 지구 온난화를 해결할 수 있는 범위의 모든 기술을 아우르는 용어다. 기후테크는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글로벌 과제일 뿐만 아니라 기업의 생존 전략이 됐다.투자자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성과에 따라 투자 기업을 결정하기 시작했다. 소비자 역시 기업의 ESG 성과에 따라 구매를 결정한다. 이러한 변화는 투자 시장에도 새로운 흐름을 가져왔다. 다국적 회계 컨설팅 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올해 1월 발간한 ‘PwC 기후 기술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테크 분야 투자는 2013년 4120억원에서 2019년 17조7100억원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투자자들의 관심을 끄는 기후테크 산업의 신흥 강자는 스타트업이다. 스타트업은 혁신적인 기술과 유연함이 강점이다. 테슬라나 네스트의 사례는 기후테크 스타트업이 유니콘으로까지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특히 기후테크로 접근할 수 있는 산업은 거의 모든 분야다. 스타트업의 새로운 먹거리, 기후테크
기후테크의 전신은 ‘클린테크’다. 2000년대 초반 등장한 클린테크는 재활용 및 폐기물 감소 등 환경 오염 물질을 처리하는 청정 기술을 의미한다. 클린테크는 등장과 동시에 각종 지원과 투자를 이끌어 내며 급성장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클린테크는 반짝 유행으로 막을 내렸다. 미국의 태양광 테크 기업 솔린드라가 대표적이다.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기대를 모았던 솔린드라는 경기 둔화와 함께 중국과의 가격 경쟁에서 패하며 2011년 파산하고 말았다. 투자 위험이 커지자 관련 시장이 축소됐다. 10년 뒤인 지금, 전 세계가 기후 위기 대응에 나서며 기후테크 시장에 투자자들이 다시 몰리고 있다.
기후테크 산업은 투자 성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부 정책이나 규제에 영향을 받기 쉽다. 투자자들은 대기업보다 덩치가 작아 업무 속도가 빠르고 변수가 많은 기후 정책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스타트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스타트업이 기후테크에 뛰어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소비자가 원하고 투자자가 찾기 때문이다. 빠르고 과감한 혁신이 필요한 기후테크 시장에서 스타트업에 매겨지는 가치는 크다. 글로벌 투자사들도 기후테크 스타트업에 집중하고 있다. 인스타그램·트위터 등을 발굴해 낸 크리스 사카가 설립한 로어카본캐피털은 탄소 중립을 연구하는 스타트업에만 투자하는 기후테크 전문 투자사다. 아마존도 청정 에너지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20억 달러 규모의 벤처캐피털 기후서약펀드(Climate Pledge Fund) 출범을 발표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10억 달러 규모의 기후혁신기금(Climate Innovation Fund)을 내놓으며 스타트업 성장 지원에 적극 나섰다.
기후테크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미국·캐나다로 세계 기후테크 투자금 중 약 절반 정도인 290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가장 많은 돈이 유입된 산업은 모빌리티와 운송 시장이고 애그테크·중공업·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탄소 제로 목표 달성하는 전기·수소 모빌리티
기후테크 투자자의 관심을 가장 많이 그러모은 곳은 다름 아닌 모빌리티다. 운송과 모빌리티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넷제로 목표를 선언한 국가들이 앞다퉈 내연기관차 생산 금지·중단 목표를 내놓고 있다. 각 국가들이 내놓은 목표치에 따르면 내연기관차 생산·판매는 2035년이 지나면 대거 중단되거나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전기차 시장은 필요 부품이 많고 생산 단계가 복잡한 내연기관차보다 시장 진입이 쉬워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스타트업도 경쟁에 합류해 당당히 독자적인 기술력을 뽐내고 있는 모빌리티 시장은 앞으로도 성장이 기대되는 분야다.
모빌리티와 운송 시장은 미국과 중국이 대부분의 투자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미국의 루시드모터스와 리비안이 그 대표 주자다. 루시드모터스는 테슬라 창립 멤버들이 세운 스타트업이다. 루시드모터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펀드에서 1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올해 2월에는 스팩(SPAC : 기업 인수 목적 회사)을 통해 우회 상장하며 기업 가치 240억 달러를 달성했다. 루시드모터스는 1회 충전으로 827km를 달릴 수 있는 루시드에어를 선보였고 예약 판매를 통해 내년 양산에 나선다.
리비안 오토모티브는 전기 트럭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생산을 목표로 설립된 스타트업이다. 리비안이 생산할 ‘R1T’는 세계 최초로 전기로 이동하는 픽업 트럭이다. 1회 충전에 최대 640km까지 달릴 수 있는 성능을 자랑하는 리비안의 생산 기술은 포드와 아마존 등에서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중국 시장의 전기차 대표 주자는 니오다. 니오는 텐센트·바이두 등 중국 내 테크 기업의 투자로 단기간에 급성장했다. 니오의 경쟁력은 배터리 교환이다. 방전된 배터리를 배터리 교환소에서 교체해 충전에 걸리는 시간을 줄인다는 새로운 접근으로 투자자들의 눈길을 끈다. 전동킥보드·스쿠터와 같은 마이크로 모빌리티의 발전도 기대된다. 마이크로 모빌리티는 전기차보다 탄소 배출량이 약 7배 적은 친환경 교통수단이다. 글로벌 전동킥보드 공유 서비스 라임은 전 세계 5대 대륙 27개국에 진출해 현재까지 약 750만 리터의 화석 연료를 절감했다. 라임은 지난해 세계자연기금(WWF)과 파트너십을 맺고 새로운 마이크로 모빌리티의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다.
한국에선 씽씽을 운영하는 피유엠피·킥고잉의 서비스가 눈에 띈다. 피유엠피의 씽씽은 약 1500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했다. 또한 출시 1년 6개월 만에 6대 광역시에 진출해 도시 단위의 새로운 이동 수단으로 떠올랐다. 킥고잉은 한국 최초의 공유 전동킥보드 서비스를 출시했다. 킥고잉은 LG전자와 전동킥보드 무선 충전 솔루션 개발, 네이버 인증서를 통한 모빌리티의 일상화 등을 통해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스타트업은 규모가 작기 때문에 규제에 의한 제한이 생산 중단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생산 과정부터 상용화까지의 과정 중 어디에서 추가적인 규제가 생길지 모른다. 생산 과정 전체가 환경 친화적이고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접근인지 미리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지속 가능한 농업으로 수자원 아끼고 탄소 배출 줄여
식품 연구·농사·토지 등 먹거리에 대한 청사진을 제공하는 애그테크(AgTech : 농사와 기술의 합성어) 분야는 모빌리티 다음으로 규모가 큰 산업이다. 애그테크는 2013년 이후 7년간 81억 달러 규모의 투자금을 받으며 성장했다. 크게 대안 식품과 스마트 팜으로 세부 분야가 나눠져 친환경과 지속 가능한 농업을 통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방향을 제시한다.
대안 식품은 세포 배양 연구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 축산업의 효율성을 개선한다. 대안 식품은 크게 식물을 기반으로 하는 대체육과 동물 세포를 기반으로 하는 배양육 연구로 나눠진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식물성 대체육을 기반으로 한 임파서블푸드와 비욘드미트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임파서블푸드는 유전자 변형 농수산물(GMO)인 대두를 기반으로, 비욘드미트는 완두콩과 쌀 등을 사용해 대체육 상품을 만들고 있다. 두 기업 모두 각종 프랜차이즈 레스토랑과 공급 계약하고 활발하게 새로운 식재료인 대체육을 연구 중이다.
한국에는 지구인컴퍼니가 있다. 지구인컴퍼니의 언리미트는 크기가 작거나 흠이 있는 못생긴 농산물을 사용한 대체육을 생산·유통·공급하는 브랜드다. 언리미트는 고기와 유사한 향과 맛까지 구현, 판매량 60% 정도를 해외에서 달성해 해외 스타트업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글로벌 스타트업 모사미트(Mosa Meat)와 한국 스타트업인 씨위드는 동물의 세포를 길러 만드는 배양육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모사미트는 2013년 세계 최초로 암소 세포를 배양해 햄버거용 인공 쇠고기를 개발했다. 씨위드는 해조류를 구조체로 사용해 한우 세포를 배양해 내는 기술로 실제 배양육 상용화를 앞뒀다.
스마트 팜 역시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는 산업이다. 최근 가장 주목받은 글로벌 기업은 앱하비스트다. 앱하비스트는 작물을 심은 판을 층층이 쌓아 올려 면적당 생산량을 늘리는 수직 농업(vertical farming) 기술을 활용한다. 앱하비스트는 미국 켄터키 주에 일조량, 수분 공급 등을 센서와 조명을 통해 조절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농장을 건설해 창업 3년 만에 상장에 성공했다.
한국에서는 팜에이트가 농업에 대한 새로운 지표를 제안한다. 팜에이트는 한국 최초로 지하철역 안의 스마트 팜인 ‘메트로팜’을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팜에이트가 재배하는 작물은 온도부터 습도, 물의 산성도, 이산화탄소 농도까지 제어해 높은 품질로 수확이 가능하다. 팜에이트는 현재 한국 최대 샐러드 공급자이자 아시아 3대 애그테크 기업으로 인정받는 기업이 됐다. 대체 연료 개발부터 에너지 효율성 탐구까지
에너지 분야는 투자 규모로는 셋째로 큰 시장이다. 태양광·풍력 에너지로 기반을 닦은 에너지 시장은 신재생에너지 발굴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해외 태양광 스타트업의 대표 격인 영국의 옥스퍼드PV는 차세대 태양전지로 꼽히는 페로브스카이트를 기반으로 한 전지판을 개발한 스타트업이다. 실리콘에 페로브스카이트를 코팅해 기존 전지판의 2배 이상인 28%의 광전 효율을 달성했다. 태양전지 효율성 개선은 적은 전지판 설치로도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어 인력·비용 절감으로 이어진다.
한국 스타트업은 에너지 개발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 스마트 모니터링 등의 테크 중심 접근도 함께 제안한다. 스탠더드에너지는 바나듐 이온 배터리 개발사다. 바나듐은 기존 배터리와 달리 저렴하고 화재의 위험성도 없으며 재활용도 가능하다. 바나듐은 한국에서도 채굴할 수 있는 광물이기 때문에 국제 관계로부터 오는 가격 변동 위험도 줄일 수 있다. 스탠더드에너지는 바나듐을 이용한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브이젠은 가상 발전소 운영 소프트웨어 ‘K-VPP’를 개발한 솔루션 스타트업이다. 브이젠이 운영하는 가상 발전소는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소를 클라우드 기반의 AI 소프트웨어로 관리할 수 있다. 여러 장소에 분산된 발전소를 하나의 소프트웨어로 관리하기 때문에 변수나 공급량을 중앙에서 통제,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최근 브이젠은 한국남동발전의 신재생 발전소 58곳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한국 최대 규모의 가상 발전소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세 가지 주요 산업 외에도 중공업, 온실가스 포집, 건축 등에서도 스타트업 발굴이 이어지고 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기후테크 스타트업은 단기간에 빠른 성장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투자 기업 중에는 투자 시작 1년 만에 기업 가치가 10배 이상 성장하기도 했다”며 “투자사들도 차세대 유니콘이 제안할 기후 변화 해결법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김영우 MYSC 컨설턴트
“달라진 투자자들, ‘ESG 렌즈’ 끼고 기업 평가”
김영우 컨설턴트는 대웅제약 해외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카이스트-SK사회적기업가센터에서 소셜 벤처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업무를 진행했고 현재 엠와이소셜컴퍼니(MYSC)에서 임팩트펀드 운용과 초기 기업 액셀러레이팅을 담당하고 있다.
-MYSC의 ESG 투자는 언제부터 시작됐나.
“MYSC는 초기부터 임팩트 투자, 즉 재무적 가치와 사회적·환경적 성과를 함께 달성하겠다는 테마로 설립됐다. 초기에는 인큐베이팅·액셀러레이팅을 위주로 운영했고 ESG에 대한 본격적인 투자와 컨설팅은 2019년부터 시작했다.”
-ESG 투자 시장과 기존 투자 시장의 차이점은 뭔가.
“기존 투자는 하이리스크·하이리턴(high risk & high return)을 바탕으로 기업의 재무적 가치를 우선으로 판별했다. 하지만 ESG 투자는 지속 가능성과 기업 가치, 기업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임팩트 등을 포괄적으로 다뤄야 하는 만큼 주주들의 높은 이해도도 요구된다. 투자자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정량적으로 측정되기 힘든 분야인 만큼 꾸준히 기업에 대한 평가와 ESG 관점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투자자들은 ESG 렌즈로 기업들을 본다고 이야기한다.”
-그린 워싱 우려도 있다. 투자 시 주의하는 점이 있나.
“모든 투자가 마찬가지겠지만 ESG 투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 ESG가 내재화돼 있는지, 혹은 내재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고 투자를 결정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의 거버넌스다. 거버넌스가 잘 잡혀야 환경과 사회적 가치가 뿌리내릴 수 있다. 단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지키기 위한 ESG는 지속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유념하고 투자를 결정하고 있다.”
-관련 기술을 보유한 대기업이 아니라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이유는 뭔가.
“대기업은 어떠한 변화를 전사적인 차원으로 녹이기 위해 드는 시간과 비용의 부담이 크다. 관련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스타트업들이 내놓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대기업들이 오히려 탐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유연한 구조와 빠른 성장이 스타트업의 가장 큰 장점이다. 물론 스타트업의 성장에는 초기 자본이 일정 규모 이상 요구되기는 하지만 투자 시장이 커지고 지원 제도도 발달하고 있어 투자 가치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본다.”
-한국 기후테크 생태계는 현재 어느 정도 수준인가.
“이제 막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해외는 기후테크 유니콘이 50여 개에 달하고 투자 금액도 조 단위를 달성했다. 한국은 아직 태동기이지만 법제화와 자본 유입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만큼 가파른 성장도 기대된다.”
조수빈 기자 subin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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