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경력직 중심 수시채용 전환…희망퇴직 규모는 증가세

"은행 공채가 안보인다"...급변하는 금융권 채용시장
코로나19로 심화된 '비대면' 트렌드가 금융권 채용시장을 급격히 변화시키고 있다. 시중은행의 기존 대규모 정기 채용은 소규모 수시채용으로, 인문·경상 계열 위주의 신입행원은 비금융·IT 계열의 경력직 중심으로 대체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로 꼽혀온 금융권 신규채용이 경력·전문가 위주로 급변하면서 사회 초년생들의 고용절벽 우려는 갈수록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빅테크發 디지털 인력 선호현상 뚜렷

은행권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공채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은행권에서는 각 시중은행별로 매해 200여명에서 많게는 500여명 수준의 신규인력 채용을 진행해 왔다.
코로나19 확산 직전인 2019년 한해 동안만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은행 등 5개 은행이 새롭게 충원한 신규인력만 3000여명에 육박했다.

이는 지난 2016년 전체 채용규모(1500여명)에 두배에 달하는 수치로, '일자리 정부'를 자처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한 눈치보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기간 5개 은행은 대규모 채용에 따른 인력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연말, 연초 대규모의 희망퇴직도 동시에 단행하며, 전체 7만7000여명 안팎의 임직원 수를 꾸준히 유지해 왔다.

하지만 비대면 트렌드를 가속화시킨 코로나19 사태 이후 금융권 채용시장이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지난 한해동안 5개 은행이 채용한 신규인력은 1300여명으로 직전년 대비 절반 가까이 줄었고, 올해에는 이전과 같은 형태의 대규모 채용이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반면 희망퇴직 규모는 늘어나면서 5개 은행들은 올 들어서만 2500명이 넘는 인력을 감축하며 전체 인원수도 눈에 띄는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일부 은행은 올 들어서만 두차례의 희망퇴직을 단행하면서 인원감축의 상시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올 상반기 동안 채용계획을 잡지 못했던 시중은행들은 하반기 초입에 들어서야 채용방침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최근 국민은행은 200명 규모의 신규 채용 계획을 발표했는데, IT, 데이터, 경영관리 전문가, 장애인, 보훈 5개 부문으로 한정하며 사실상 경력직 위주의 핀셋 채용 방침을 확정했다. 이와함께 국민은행은 ICT(정보통신기술) 및 IB(투자은행) 전문인력 등에 대해서 상시 채용 시스템도 구축했다.

이에 앞서 신한은행도 지난 3월 디지털/ICT 수시채용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 은행은 지난 2019년 은행권 처음으로 ICT 직무에 특화된 채용절차를 도입한 바 있다. 신한은행은 올 하반기 진행될 신입행원 공채에도 디지털 역량을 측정하는 '디지털 리터러시(Literacy)' 평가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올 초 채용비리 피해자에 대한 구제방안의 일환으로 특별 채용을 단행했던 우리은행도 지난 5월 디지털/IT 부문에 국한해 상반기 채용을 진행했고, 하나은행은 그룹 차원의 ESG 특별채용과 함께 대학생 인턴 모집을 진행 중이다. 특히 ESG 특별채용의 경우 여행, 패션, 디자인, 미디어, IT 솔루션 등 비금융 부문에서의 경력자 모집에 초점이 맞춰져 눈길을 끌었다.

은행·보험사는 '다이어트' vs 덩치 불리는 금융투자

은행권의 이같은 변화는 인력 구조가 곧 '생존'의 문제와 직결될 수 있다는 절박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지금과 같은 비대한 덩치로는 무점포로 운영되는 카카오뱅크 등 빅테크 금융사와의 싸움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올 하반기에는 세번째 인터넷전문은행인 '토스뱅크' 출범과 함께, 국내 첫 빅테크 보험사인 '카카오페이손보'의 출격도 대기 중이다.

올 들어 은행권은 물론 보험업계에서도 신규 채용을 자제하고 희망퇴직 규모를 대폭 확대하고 있는 것도 빅테크 기업들과의 경쟁을 염두에둔 조치다. 앞서 KB손해보험은 출범 이후 처음으로 희망퇴직 대상 연령대를 40대 초반까지 확대했는데, 업계에서는 이번 KB손보의 행보가 보험사 인력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될 것 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면, 코로나19 확산 이후 때아닌 호황기를 맞은 금융투자업계는 사정이 좀 다르다. 개인고객 유입세가 지속되면서 대고객 응대는 물론 리서치 부문의 인력 쟁탈전으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국내 증권사의 경우 주식시장 상승세와 함께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가 주식투자 열기로 이어지면서 매분기 역대 최대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은행과 달리 금융투자업계의 인력은 오히려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실제 국내 증권사들의 전체 임직원 수는 지난 2018년말 3만5600여명에서 지난해말 3만7000여명 수준으로 늘었고, 자산운용사 임직원 수도 같은 기간 8300명에서 1만 여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자산운용사의 눈에 띄는 인력 증가세는 최근 수년간 계속되는 ETF(상장지수펀드) 인기에 기인한 것으로, 금융투자 상품이 과거 판매사(은행) 중심에서 생산자(자산운용사) 중심으로 옮겨가는 구조적 변화에 따른 영향으로 풀이된다.

공인호 기자 ba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