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공급 원활해지지만 특허권 침해 등에 논란 소지

[지식재산권 산책]
코로나19 백신, ‘강제실시권’ 발동 가능할까 [송재섭의 지식재산권 산책]
얼마 전 영국에서 열린 G7 정상회담은 사상 초유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진행됐다. 당연히 백신 보건 협력 부분을 중요 의제로 다뤘고 문재인 대통령 역시 ‘글로벌 백신 허브’로서 한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런 ‘백신 협력’은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중요한 의제로 다뤄졌다.

전 세계적인 백신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백신 위탁 생산(CMO) 능력을 활용해 한국을 백신 생산의 허브로 만들어 필요한 백신을 확보하는 것과 동시에 안정적으로 백신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백신 확보 여부에 대해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이 대두됐던 작년 말 코로나19 백신 대란을 방지하기 위해 ‘강제실시권’을 발동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특허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뉴스가 주목받았다.

강제실시권은 국가나 제삼자가 공익적 목적을 위해 특허권자의 허락 없이 특허 발명을 실시할 수 있는 권리다. 백신의 신속한 공급을 위해 팬데믹(세계적 유행) 상황에서도 강제실시권을 발동할 수 있도록 특허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이 그 취지였다.
미국, WTO와 본격적인 논의 들어가그런데 백신에 대한 강제실시권 발동을 위해 반드시 특허법 개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현행 특허법 제106조의2에 따르면 국가 비상사태, 극도의 긴급 상황 또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특허 발명을 비상업적으로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정부가 직접 또는 제삼자를 통해 그 특허 발명을 실시할 수 있다.

또 특허법 제107조에 따르면 공공의 이익을 위해 특히 필요한 경우에는 특허 발명을 실시하려는 자가 일정한 절차를 거쳐 통상 실시권 설정에 관한 재정(裁定)을 청구할 수 있다. 여기서 ‘공공의 이익’은 국민 보건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경우의 이익을 의미하므로 현행 특허법에 따르더라도 백신에 대한 강제실시권 발동은 가능한 셈이다.

이처럼 현행 특허법에서 백신에 대한 강제실시권 발동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강제실시권을 발동하지 못하는(또는 발동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강제실시권을 발동하더라도 특허권자의 기술 이전이 동반되지 않는 한 백신의 품질과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백신 제조를 위해서는 단지 특허 명세서에 공개된 기술 사항 이외에도 특허권자가 보유한 영업 비밀이나 노하우 등이 필요할 수 있는데 강제실시권 발동만으로는 이러한 영업 비밀이나 노하우를 활용하기가 불가능할 수 있다.

또한 강제실시권은 특허권자의 의사에 반해 그의 이익을 중대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발동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한국은 의약품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 제품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다. 글로벌 제약사의 특허 발명에 대해 강제실시권을 발동할 경우 무역 보복 등 불이익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는 자칫 득보다 실이 큰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실제로 특허청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까지 한국에서 의약품과 관련해 강제실시권이 발동된 사례는 무려 30년 전인 1980년 11월의 ‘비스티오 벤젠’ 사례가 유일하다. 낙태약 ‘미페프리스톤’,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에 관해서는 모두 강제실시권 발동이 거절됐다.

특허권은 신약 개발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공중위생에 기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독점을 허용해 의약품의 접근을 제약한다는 점에서 양면성을 지닌다. 이와 같은 첨예한 긴장 관계는 백신에 대한 강제실시권 발동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와 백신에 대한 강제실시권 발동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를 통해 전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결과가 주목된다.

송재섭 법무법인(유) 세종 변호사·법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