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배터리에서 값비싼 리튬·니켈·코발트 추출해 재활용
중국 의존도·전기차 가격 낮추는 ‘일거양득’ 효과
이처럼 환경 보호를 위해 개발된 전기차에서 나오는 배터리가 친환경적이지 않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폐배터리 산업이 주목받고 있다.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폐배터리 발생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한국의 전기차 보급과 배터리 교체 주기를 고려할 때 폐배터리 배출량이 2024년 연간 1만 대, 2030년에는 약 8만 대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기차에 사용되는 리튬 2차전지는 초기 용량 대비 70% 이하로 감소하면 주행 거리 감소, 충전 속도 저하, 안전성 위험 증가 등의 문제가 발생해 교체할 필요가 있다.
보통 전기차 1대에 평균 70kWh의 배터리가 탑재되기 때문에 교체되는 배터리는 평균 56kWh의 용량을 가지고 있다. 다른 곳에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용량이 남게 되는 것이다. 배터리를 폐기하기보다 가공해 재사용 또는 재활용하는 것이 환경과 경제적인 면에서도 이득이다.
10년 뒤 8만 개 쏟아진다…600조원 폐배터리 시장
폐배터리 처리 방법은 차량용으로 더 사용되기 어려운 배터리를 에너지 저장 장치(ESS)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배터리 재사용(re-use)’, 차량 배터리에서 리튬·니켈·코발트 등 고가의 희귀 금속을 추출하는 ‘배터리 재활용(re-cycling)’ 등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배터리를 ESS로 재사용하면 지속적인 충·방전이 가능해 자원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배터리 양극활물질 중 희귀 금속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이를 회수하면 중국에 대한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재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배터리는 전기차 가격의 약 40%를 차지할 만큼 비싼데 그 이유는 핵심 원자재의 공급 부족과 높은 가격 때문이다. 배터리를 재사용할 수 있다면 배터리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여지도 커진다.
폐배터리 시장은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 세계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은 2030년 20조원에서 2050년 600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폐배터리 시장의 높은 성장 잠재력을 보고 중국과 유럽은 이미 폐배터리 회수·재판매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공격적인 투자로 시장 선점에 나섰지만 한국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전기차 시장 초기 단계인 한국은 아직 배터리 교체 시기를 맞이한 경우가 많지 않고 배터리 제조사들이 생산 확대에 집중해 온 만큼 폐배터리 관련 시장은 크지 않다.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표준화된 전기차 폐배터리 안전성 평가와 재활용 기준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매년 80만 톤의 자동차 배터리, 19만 톤의 산업용 배터리, 16만 톤의 일반 소비자 배터리가 소비되는 유럽은 폐배터리 재활용에 적극적이다. 쏟아지는 폐배터리를 재사용할수록 환경 오염을 줄일 수 있어 유럽연합(EU)은 2006년부터 ‘배터리 지침’을 통해 EU 국가들의 폐배터리 재활용 관련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배터리 지침에 따르면 EU 시장 내에서 출시되는 모든 배터리(산업용·자동차용·전기자동차용 등)는 안정적으로 장시간 사용돼야 하며 수명이 다한 배터리는 회수·재제조·재활용 등을 거쳐 시장에 재공급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EU는 2030년부터 폐배터리의 코발트 12%, 리튬 4%, 니켈 4%를 재활용하고 2035년부터 코발트 20%, 리튬 10%, 니켈 12% 등 재생 원료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폐배터리 회수율은 2023년 45%, 2025년 65%, 2030년까지 70%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원 선순환 ESG에 부합…포스코·두산重도 진출
배터리 재활용이 자원 선순환 차원에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에 부합하는 만큼 한국 기업들도 폐배터리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고 있다. 현대차는 한국수력원자력·파워로직스·OCI·한화큐셀 등과 폐배터리 기반의 ESS를 개발하기 위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세계 최대 전기차 배터리 생산 능력 확보와 함께 폐배터리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 법인인 얼티엄셀즈를 통해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나섰다.
얼티엄셀즈는 2021년 5월 북미 최대 배터리 재활용 업체인 리사이클과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배터리를 재활용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셀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배터리의 코발트·니켈·리튬·흑연·구리·망간·알루미늄 등 다양한 배터리 원재료를 재활용할 수 있게 됐다.
원재료 중 95%가 새로운 배터리 셀의 생산이나 관련 산업에 재활용할 수 있다. 배터리의 원재료를 재활용하는 하이드로메탈러지컬 공정은 기존 공정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이 최대 30%나 낮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또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10만km 이상 달린 전기자동차(EV) 택시 배터리를 재사용해 오창 공장에 전기차용 충전 ESS 시스템을 설치했다. 폐배터리의 잔존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한 배터리 수명 예측 기법도 개발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재사용까지 끝나 더 사용할 수 없는 배터리를 분해·정련·제련해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희귀 금속을 추출, 다시 사용하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글로벌 배터리 생산 공장을 중심으로 지역별 일괄 순환 체계를 구축해 폐배터리가 다시 배터리 원재료가 돼 공급되는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중국은 2021년 내 구축이 완료될 것으로 예상되고 한국과 폴란드는 2022년까지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SK이노베이션은 수리(Repair)·렌털(Rental)·충전(Recharge)·재사용(Reuse)·재활용(Recycling) 등 ‘5R’을 중심으로 한 폐배터리 재활용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SK렌터카 등과 사업 협력을 통해 배터리 렌털·충전·재사용·재활용 등을 통한 배터리 순환 경제 구축을 목표로 하는 배터리 서비스인 ‘BaaS(Battery as a Service)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최근 기아와 함께 폐배터리를 ESS로 재활용하거나 리튬·니켈·코발트 등 양극재용 금속을 회수해 다시 전기차용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기술 기반을 확보했다. 양 사는 2020년 3월 전기차 배터리 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업무 협약을 맺고 1년 동안 배터리 재활용 실증 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독자 개발한 리튬 기술로 폐배터리에서 수산화리튬·니켈·코발트 등 자원을 다시 회수해 배터리 소재로 활용하는 방안도 연구하고 있다.
삼성SDI는 2019년 폐배터리 재활용 전문 기업 피엠그로우에 지분 투자했고 성일하이텍 등 한국의 재활용 업체들과도 협력하고 있다. 성일하이텍은 세계에서 폐배터리 재활용을 통한 희귀 금속 회수 기술을 가진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로, 미국·중국·말레이시아·인도·헝가리 등 해외에서도 사업장을 갖고 있다.
배터리 소재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포스코는 폴란드에 폐배터리 법인을 설립하며 폐배터리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폴란드 법인은 유럽 내 배터리 공장에서 나오는 폐배터리를 가공하는 생산 기지 역할을 하게 된다.
해당 공장 근처에 LG에너지솔루션·SK아이이테크놀로지 등 배터리 제조사들이 집중돼 있어 시너지가 예상된다. 포스코는 올해 5월 중국 화유코발트와 65 대 35의 지분 비율로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사업을 위한 합작사 ‘포스코HY클린메탈’을 설립하기도 했다.
두산중공업은 화학제를 사용하지 않고 폐배터리를 재활용해 탄산리튬을 회수하는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폐배터리에서 탄산리튬을 추출하기 위해서는 열처리, 산침출(산성 용액으로 재료를 녹이는 작업), 결정화 공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황산 등 화학물질이 사용된다. 두산중공업은 독자 개발한 친환경 공법을 통해 2021년 하반기부터 연간 1500톤 규모의 사용 후 배터리를 처리할 수 있는 설비 실증을 추진하고 순도 99%의 탄산리튬을 생산할 예정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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