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료사업만으론 성장 한계
‘페인트 빅5’ 사업 다각화 5色 경쟁

[비즈니스 포커스]
드론 개발하고 종자 키우고…페인트 외길 접고 신시장 개척 드라이브
페인트업계는 KCC·노루페인트·삼화페인트공업·강남제비스코·조광페인트 등 5개사가 시장점유율 80%를 차지하고 있는 과점 체제다. 도료 산업은 제조 공정이 단순하고 소규모 자본으로 시장 진입이 가능해 고부가 가치 기술 확보와 신성장 동력 발굴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60~70년간 페인트 분야 ‘한 우물’에만 집중해 온 페인트업계는 향후 100년을 좌우할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해 이종 산업에 진출하고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자동차·건설·조선·전자제품 등의 전방 산업 업황에 따라 실적이 좌우되는 구조에서 탈피하기 위해 페인트업계가 사업 영토 확장에 속도를 내면서 사업 다각화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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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소재와 정밀 화학 기업으로 변신 중

KCC는 페인트 사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 2위 실리콘 기업 인수에 5년 치를 선투자해 실리콘 중심의 고부가 사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2018년 3조4000억원에 인수한 미국 실리콘 제조업체 모멘티브 얘기다.

정몽진 KCC 회장은 2020년 신년사를 통해 “우리는 모멘티브 인수를 통해 향후 5년 치에 해당하는 선투자를 이미 감행한 셈”이라면서 “독자적인 첨단 기술을 다수 확보하게 됐지만 동시에 연결 재무제표상 부채도 증가했기 때문에 앞으로 5년간은 영업력을 강화해 더욱 내실 있는 기업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 회장은 모멘티브 인수를 통해 글로벌 첨단 소재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한때 3조원이 넘는 인수 금액 때문에 모멘티브 편입 효과 대신 재무 부담이 부각되면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기도 했다. 정 회장은 모멘티브와 KCC의 실리콘 사업의 시너지를 높이기 위해 실리콘 사업 부문 자회사들을 모멘티브에 매각하는 사업 구조 재편을 마쳤다.

2021년 1분기 KCC 실리콘 부문 매출액은 1조295억원으로 전년 대비 9% 증가했다. 모멘티브 중심의 실리콘 사업 실적이 크게 개선되며 계열 회사들 간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노루페인트 지주회사인 노루홀딩스는 2015년 농업회사법인 ‘더기반’을 설립하고 종자·바이오 산업에 뛰어들었다. 종자 산업은 노루그룹이 20~30년 뒤 그룹을 먹여 살릴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분야다.

더기반은 한영재 노루그룹 회장의 장남인 한원석 전무가 대표이사를 맡아 진두지휘하고 있다. 더기반의 설립 배경은 당초 비닐하우스와 유리온실에 적합한 페인트 제품인 농업용 차광제 개발 중 식물 공장을 통한 재배, 대량 생산을 위한 재배 방식에 관심을 둔 것이 계기가 됐다. 종자 산업은 품종력에 따라 판매량과 가격의 차이가 크고 시장에서의 장기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연구·개발(R&D) 투자가 중요하다.

더기반은 2016년 10월 농생명 연구 클러스터인 더기반 안성 연구단지를 준공해 종자 산업 분야에서 사업 기반을 구축해 사업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국책 사업인 ‘골든시드프로젝트(GSP)’에도 참여해 수출형 종자 연구·개발도 하고 있다.

노루홀딩스는 세계적인 화학회사 듀폰이 글로벌 화학회사이자 농업회사로 거듭난 것을 벤치마킹했지만 더기반 설립 후 5년간 200억원의 영업 적자를 내는 등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오너의 강력한 의지가 없었다면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장기간 사업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이다.

2019년부터 서서히 매출이 늘고 있어 성장 궤도에 올랐다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종자 산업은 농산업 중에서 가장 부가 가치가 높고 기술 집약적인 분야이기 때문에 장기간의 R&D가 필요한 산업으로 꼽히는 만큼 향후 시장 규모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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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먹거리로 인수한 기업들 실적 본궤도

삼화페인트는 2018년 특수 정밀 화학 업체인 대림화학을 인수하며 전자 재료 소재, 의약품 중간재 생산 등 사업 다각화에 힘쓰고 있다. 삼화페인트는 전통적인 도료업체에서 대림화학 인수를 계기로 특수 기능성 케미컬 시장에 진출하게 됐다.

2018년 기업 회생 절차를 신청할 만큼 유동성 부족에 빠져 있던 대림화학은 삼화페인트에 인수된 후 뚜렷한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 삼화페인트는 반도체 패키징용 ‘에폭시 밀봉재(EMC)’ 사업 설비를 구축하기 위한 투자에 나서며 미래 먹거리로 반도체용 EMC를 키우고 있다.

삼화페인트는 2019년 페인트업계 최초로 펫 비즈니스를 추가하며 펫 관련 페인트를 출시한 바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발맞춰 다공성 항바이러스 무기물을 적용해 표면에 접촉되는 바이러스가 사멸되는 항바이러스 기능성을 인정받은 ‘안심닥터’도 선보였다. 항바이러스 기능을 갖는 조성물을 통해 우수한 바이러스 사멸 효과를 가진 도료를 제조할 수 있는 특허도 취득했다.

강남제비스코는 2012년 오너 2세였던 황성호 회장이 별세하면서 3세 황익준 사장 체제로 전환했다. 최근 몇 년간 주력 시장인 한국 사업 실적이 부진해 중국과 베트남 등 해외 시장에서 활로를 찾는 모습이다.

전방 산업의 부진 속에서 성장 정체를 타개하기 위해 노후화된 중국 공장에 설비 투자와 베트남 공장 증설을 비롯해 한국에서는 약 1000억원을 들여 평택 공장 신설과 안양 공장 이전을 추진하며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조광페인트는 도료 업체에서 정밀 화학 업체로 변신 중이다. 도료에 집중돼 있던 사업을 다각화해 신사업으로 2018년 정밀 화학 분야에 진출했다. 2018년 설립한 경기 군포시 조광이노센터가 미래 기술 연구·개발의 전초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친환경 종이 빨대용 수성 접착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제품 안전성을 인정받았다. 조광페인트의 종이 빨대용 수성 접착제는 미국 FDA ‘176.170’과 ‘176.180’ 승인까지 모두 받았다.

이는 액체뿐만 아니라 건조 식품 및 지방성 식품과 접촉하는 종이·판지의 코팅에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음료용 빨대에만 국한되지 않고 디저트용 포크, 케이크 커팅 칼 등 카페나 베이커리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플라스틱 제품을 대체할 친환경 종이 제품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종 산업인 드론 시장에도 진출했다. 조광페인트는 고성능 산업용 드론 개발 업체 피앤유드론과 공동 개발 협약을 체결하고 드론용 케미컬 솔루션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