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댓값에 따라서 행동하지 않아 발생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설’

[장동한의 리스크 관리 ABC]
기대 수익 무한대인 도박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 [장동한의 리스크 관리 ABC]
동전 던지기 게임을 생각해 보자. A가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B는 A에게 2달러를 주고 게임은 끝나고 뒷면이 나오면 A는 다시 동전을 던진다.

만약 두 번째 던지기에서 앞면이 나오면 B는 A에게 2의 2제곱달러($2²)를 지불하고 게임은 끝나는데, 뒷면이 나오면 A는 다시 동전을 던지게 된다. 이런 식으로 동전의 앞면이 나올 때까지 게임이 계속되는데 만약 n번째 던지기에서 앞면이 나오면 B는 A에게 2의 n제곱달러($2ⁿ)를 지불해야 한다.

오랫동안 계속 뒷면이 나오다가 결국 언젠가 앞면이 나오면 A는 큰돈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 A는 B에게 얼마만큼의 참가비를 지불할 수 있을까. 물론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10달러 이상의 참가비를 내고 이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왜 사람들은 큰돈을 벌 수도 있는 이 동전 던지기 게임에 10달러 이상을 지불하려고 하지 않는 걸까. 18세기 스위스의 수학자 다니엘 베르누이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강의하며 착안했다고 해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설’이라고 불리는 문제를 분석하기 위해 이 게임의 기댓값을 구해 보자.

정상적인 동전을 던졌을 때 앞이나 뒤가 나올 확률이 50 대 50이라는 것을 유념하자. ‘$2(1/2) + $2²(1/2)² + $2³(1/2)³ + … = $1 + $1 + $1 + … = ∞.’ 이처럼 무한대의 기댓값을 갖는다. 실제 동전을 던졌을 때 계속 뒷면이 나오는 경우는 세 번 이상을 넘기기 힘들다.

세 번째에 앞면이 나와 8달러(2의 3제곱달러)를 받고 게임이 끝날 확률이 90%에 가깝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설은 우리가 의사 결정에 많이 사용하고 있는 기댓값 기준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좋은 예다.

도박에는 ‘공정한 게임(fair game)’이란 표현이 있다. 게임에서 이기고 질 확률이 정확하게 50 대 50으로 ‘공정하다’고 해서 나온 표현으로 알려졌다. 1달러를 걸고 공정한 게임에 참여하면 50%의 확률로 2달러가 되거나 50%의 확률로 완전히 털린다고 하자. 완전히 털리면 직전 베팅액의 두 배인 2달러를 베팅해 일거에 손실을 만회하려고 할 수 있다.

또 털리면 직전 베팅액의 두 배인 4달러를 베팅하고 또 털리면 직전 베팅액의 두 배인 8달러를 베팅하고 또 털리면 직전 베팅액의 두 배인 16달러를 베팅하고…. 계속해 잃고 계속해 두 배씩 베팅하면서 게임은 무한 반복될 수 있다.

이런 게임에 참여하는 것을 많이 꺼리겠지만 결론은 공정한 게임이라면 마땅히 해야 한다. 시간문제일 뿐으로 언젠가는 반드시 게임을 이길 것이고 수익 1달러를 항상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반드시 해야 하는 공정한 게임인데 실제 참여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이론과 실제의 차이 때문이다. 1달러, 2달러, 4달러, 8달러, 16달러, 32달러, 64달러, 128달러, 256달러…1024달러…. 베팅 금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런 베팅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주머니에 가용 자원이 항상 마련돼 있는 사람들만이 이길 수 있는 게임이 되는데 이는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결국 이 세상에선 가진 자, 있는 자가 이길 수밖에 없다는 냉엄한 교훈이다.

시계가 두 개 있다. 배터리가 없어 움직이지 않는 시계 A는 하루에 두 번 초침까지 정확하게 맞는다. 반면 항상 5분 늦게 돌아가는 시계 B는 평생 가야 정확할 수가 없다. 정확성 기준으로 보면 시계 A가 좋겠지만 실용성 차원에선 B가 월등하다는 점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이처럼 수리적 정확성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수리적 기준이나 계량적 분석은 매우 훌륭하고 유용하다. 하지만 정량적 분석이 다가 아니다. 경험이나 통찰과 같은 요인을 고려한 정성적 분석이 겸비될 때 우리는 더 훌륭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 정량적 분석과 정성적 분석을 겸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리스크 관리가 부각되고 있다.
기대 수익 무한대인 도박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 [장동한의 리스크 관리 ABC]
장동한 건국대 국제무역학과 교수·전 한국리스크관리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