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준 회장, 수소·친환경 섬유 사업 드라이브…액화수소 생산에 5년간 1조원 투자
[스페셜 리포트] 섬유·화학·중공업 등 전통적인 ‘굴뚝 산업’으로 성장해 온 효성이 향후 기업을 이끌어 갈 100년 먹거리로 ‘친환경’을 내세웠다. 주요 먹거리였던 소재 산업에서 친환경 섬유를 키우고, 미래 성장동력인 수소에 대대적 투자를 진행 중이다.효성은 지난 4월 이사회 내 투명경영위원회를 ‘ESG경영위원회’로 확대 개편하며 친환경 리사이클 섬유 사업, 수소·태양광·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친환경 에너지 사업의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친환경 섬유로 ESG 실천하는 효성티앤씨
효성티앤씨는 글로벌 스판덱스 시장에서 30%의 점유율을 지닌 1위 기업이다. 중국의 공급 과잉으로 골머리를 앓던 스판덱스 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수요가 늘어나면서 판매량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효성티앤씨도 올해 전례 없는 실적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효성티앤씨는 친환경 섬유 ‘리젠’을 통해 친환경 경영에 앞장서고 있다. 2008년 효성티앤씨가 개발한 리젠은 그간 축적한 섬유 기술력을 바탕으로 버려진 페트병을 재활용해 개발한 폴리에스터 섬유다. 2009년 친환경 인증 전문 기관인 컨트롤 유니온(Control Union)으로부터 글로벌 리사이클 표준(GRS) 인증을 세계 최초로 받았다. 효성 관계자는 “효성티앤씨는 3대 대표 화학 섬유(나일론·폴리에스터·스판덱스)의 친환경 원사를 모두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춘 회사”라며 “친환경 섬유를 제작할 때 기술력만큼 중요한 신뢰도와 제조 공정의 투명성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효성티앤씨는 지난해 제주도의 폐페트병을 섬유로 재탄생시키는 ‘리젠제주’ 프로젝트에 이어 올해 초 서울시와 투명 페트병을 분리 수거해 재활용 섬유로 생산하는 자원 선순환 프로젝트 ‘리젠서울’을 진행하고 있다. 리젠서울로 CGV와 협업해 친환경 인식 개선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5월부터 두 달 동안 CGV 영화관 3개 극장(영등포·여의도·강남)에 리젠서울의 제작 과정을 소개하는 부스를 운영하며 시민들의 친환경 인식 제고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동시에 리젠의 브랜드 파워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최근에는 여수광양항만공사와 손잡고 입출항 선박에서 나오는 페트병을 ‘리젠오션’으로 재탄생시키는 프로젝트로 친환경 패션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리젠은 패션·의류 브랜드들과의 협업을 통해 마스크·티셔츠·가방 등 소비자가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소비자를 만나고 있다. 효성티앤씨는 친환경 패션 스타트업 플리츠마마와 2018년 첫 협업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꾸준히 환경 친화적인 제품을 함께 출시 중이다. 최근 리젠서울을 사용해 제작한 의류를 선보였고 추후 리젠오션으로 만든 제품도 출시할 예정이다.
효성티앤씨는 지난 6월 플리츠마마와 지분 투자 협약식을 열고 ‘리젠 랩(Lab)’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리젠 랩 프로젝트는 효성티앤씨가 개발한 친환경 소재를 플리츠마마 등 패션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친환경 패션 상품으로 만들어 소비자에게 바로 선보이는 시도다. 이 밖에 효성티앤씨는 최근 카카오프렌즈의 친환경 제품 라인 ‘프렌즈 그린라이프’ 제품에 리젠을 공급해 보랭 백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을 꾀하고 있다.
효성티앤씨가 사내에 설립한 ‘패션디자인센터’는 고객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고객이 원하는 것을 소재에 적용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효성 관계자는 “소재에 대한 고객의 니즈를 섬유에 반영하고 의류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섬유 업체에서 패션 트렌드까지 제시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한다.
효성티앤씨는 지난 2월 패션디자인팀을 필두로 친환경 의류 브랜드 ‘G3H10’을 론칭하며 리젠과 무농약 면화로 만든 면으로 된 의류를 선보였다. 코로나19로 의류 소비가 줄어 일감 부족의 어려움을 겪는 중소 원단·봉제 업체들과 협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재 2번째 제품군까지 출시했다.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G3H10 제품을 출시해 중소 협력사들과의 협업을 확대해 섬유·의류 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방침이다.
G3H10의 론칭은 단순히 섬유를 공급하는 것을 넘어 어패럴 브랜드의 고객인 최종 소비자들의 목소리까지 반영한 섬유를 개발하기 위해서다. ‘G3H10’은 패션디자인팀이 있는 ‘공덕역(G) 3번 출입구, 효성빌딩(H) 10층’의 머리글자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 사이에서 불고 있는 친환경 가치 소비 바람에 힘입어 출시 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국 최초’ 탄소 섬유 독자 기술 보유한 효성첨단소재
효성이 친환경 섬유에 이어 최근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리는 분야는 ‘수소 산업’이다. 전 세계는 화석 연료에서 친환경 에너지원으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그중 수소는 단연 주목받는 에너지원이다. 최종 에너지로 변환할 수 있고 대용량을 오랜 시간 동안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2019년 산업통상자원부가 ‘수소 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하며 글로벌 수소 경제를 선도한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하지만 수소 경제는 인프라가 갖춰져야만 실현될 수 있다. 다양한 관계자 및 기관들의 참여도 필요하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화두로 급부상하고 전 세계적으로 ‘넷 제로(탄소 배출량을 0으로)’ 대열이 가속화되면서 기업들도 수소 산업을 강화하고 있다. 효성을 비롯해 현대차그룹·SK그룹·포스코그룹이 오는 9월 중 수소기업협의체를 설립하며 인프라 구축에 뛰어들었다. 4개 그룹은 6월 10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최정우 포스코 회장, 조현준 효성 회장이 현대자동차 기술연구소에서 수소기업협의체 설립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올해 초 현대차그룹·SK그룹·포스코그룹은 수소 경제 활성화와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해 민간 기업 주도의 협력 필요성을 공감하고 최고경영자(CEO) 협의체인 ‘한국판 수소위원회’ 설립을 추진하기로 뜻을 모았다. 여기에 효성그룹이 협의체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4개 그룹 회장이 회동, 수소기업협의체 설립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게 됐다.
수소기업협의체는 7월까지 참여 기업을 확정하고 9월 중 CEO 총회를 개최해 출범을 공식화할 예정이다. CEO 협의체 형태로 운영되며 정기 총회와 포럼 개최를 통해 한국 기업의 투자 촉진을 유도하고 수소 산업 밸류체인 확대를 추진한다. 이를 통해 수소 사회 구현과 탄소 중립 실현에 적극 기여한다.
그간 효성은 수소 산업에 꾸준한 투자를 지속해 왔다. 2008년 경기도 화성의 현대차 남양기술연구소에 한국 최초로 수소 충전소를 건립했고 현재까지 국회와 세종정부청사 등 전국 총 18곳에 수소 충전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한국 시장점유율 35%를 차지하고 있다. 동시에 효성첨단소재는 수소차 연료 탱크의 핵심 소재인 탄소 섬유 기술을 보유한 한국 유일의 기업이다. 효성첨단소재는 2011년 독자 기술을 바탕으로 한국 최초로 고강도 중탄성 탄소 섬유 ‘탄섬’을 개발해 2013년부터 전주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꿈의 소재’로 불리는 탄소 섬유는 철에 비해 무게는 4분의 1 수준으로 가볍지만 강도는 10배 높기 때문에 자동차·풍력·우주항공·스포츠 레저 등 철이 사용되는 다양한 용도에서 대체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 효성첨단소재는 2011년 일본·독일·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 한국에서는 최초로 탄소 섬유 독자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2013년부터는 전북 전주시에 연간 생산량 2000톤 규모의 탄소 섬유 공장을 완공하고 생산을 시작했다.
이에 더해 효성첨단소재는 전주 탄소 섬유 공장에 2028년까지 약 1조원을 투자해 연산 2만4000톤의 탄소 섬유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단일 규모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효성첨단소재는 지난해 1차 증설을 완료해 연산 4000톤 규모의 생산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또 최근 한화솔루션과 고압 용기에 쓰이는 고강도 탄소 섬유를 올해부터 6년간 장기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안정적 수주 물량을 확보했다.
탄소 섬유는 안전성과 친환경성 때문에 차량의 압축천연가스(CNG) 연료 탱크나 수소 연료 탱크에 사용된다. 연료 탱크는 수백 기압의 고압 상태로 가스를 주입할 필요성 때문에 고강도의 탄소 섬유가 적용되며 기존의 금속 탱크보다 줄어든 중량으로 주행 성능 향상은 물론 배기가스 배출량 감소 효과가 있다.
탄소 섬유는 고강도·고탄성·경량화라는 특성상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항공 우주, 선박용 연료 탱크 등 다양한 용도로 확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탄소 섬유는 수소 경제 활성화와 함께 올해부터 성장에 본격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액화수소 생산 앞장 설 효성중공업
또 다른 계열사 효성중공업은 액화수소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효성중공업과 글로벌 가스·화학 전문 기업 린데는 울산시 효성화학의 용연 공장 부지에서 6월 21일 수소 사업 비전 선포식과 액화수소 플랜트 기공식을 개최했다. 조현준 회장은 “수소 에너지는 인류의 미래를 바꿀 에너지 혁명의 근간으로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수소 에너지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효성과 린데의 생산 합작 법인인 린데수소에너지는 효성화학의 용연 공장 부지의 연간 생산량 1만3000톤 규모의 액화수소 플랜트를 완공해 2023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한다. 또 이와 별도로 효성중공업은 중·장기적으로 액화수소 생산 능력을 3만9000톤까지 늘리기 위해 5년간 1조원을 투자한다. 효성중공업은 한국의 수소 충전 시스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판매 합작 법인인 효성하이드로젠은 액화수소 플랜트 완공 시점에 맞춰 액화수소 충전 인프라를 구축한다. 울산시에 한국 1호 액화수소 충전소를 건립하는 것을 시작으로 정부의 대형 상용 수소차 보급 정책에 따라 전국 30여 곳에 대형 액화수소 충전소를 건립할 방침이다.
액화수소는 기체 수소를 섭씨 영하 252.7도로 냉각해 액화한 것으로, 기체 수소에 비해 부피가 800분의 1 수준에 불과해 저장과 운송이 용이하다. 액화수소를 이용해 충전하면 수소를 재충전하는 리커버리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어 시간당 충전 용량이 기체 충전소 대비 3배 이상이다. 이에 고용량 수소 연료가 필요한 대형차(25kg) 등 충전 시간이 대폭 줄어들어 버스나 트럭 등 대형 수소 자동차 시장이 확대될 전망이다. 이 밖에 액화수소는 차량용을 비롯해 에어택시·드론·선박·지게차 등의 다양한 모빌리티 분야 등에 사용처를 다변화하며 수소 경제를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1966년 동양나일론 울산 공장에서 시작된 효성은 이번 기공식을 울산에서 열며 새로운 ‘100년 효성’의 장을 열었다. 조현준 회장은 “효성의 역사가 시작된 울산에서 백년 효성으로 나아갈 새 장을 열게 돼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그간 섬유 산업으로 성장한 효성이 향후 먹거리로 수소를 낙점한 것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장소였다.
효성은 수소 생산을 위해 린데와 협력을 강화한다. 효성은 린데와의 기술 협력을 통해 2024년까지 린데의 크라이오펌프 테크놀로지(Cryo Pump Technology)를 적용한 액화수소 충전 기술과 설비 국산화도 추진한다. 또 2025년까지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블루 수소와 그린 수소 추출 기술 개발에 나선다.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그린 수소 생산 라인도 구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양 사는 그린 수소 생산과 함께 이산화탄소 포집·재활용(CCU : Carbon Capture and Utilization) 기술을 포함한 다양한 응용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한국의 CO₂ 배출량의 10% 감축에 기여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저감 기술 개발과 실증도 추진하기로 했다. 이날 행사에서 효성과 린데는 울산시와 대형 상용 액화수소 충전소 구축에 상호 협력해 나가기로 하고 이를 위한 업무 협약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효성은 수소의 생산부터 공급까지 이른바 ‘밸류 체인’을 갖춘 기업으로 전환하게 됐다. 주력 사업인 섬유에서는 친환경 섬유로 ESG 경영에 대비하며 미래의 먹거리로 수소에 대한 투자를 지속한다는 전략이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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