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포트폴리오 기후 리스크 관리 본격화
대출·투자 기업 탄소 배출량 국내 첫 공개

탄소 중립에 힘주는 KB금융…수익 상품 개발은 숙제
올해부터 파리기후변화협약(파리기후협약)이 시행되면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중에서도 기후 환경 분야가 주목받고 있다. 파리기후협약은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해 산업혁명 대비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 폭을 2도 이내로 제한하기로 한 것이다. 각국 정부는 탄소세 부과 등 친환경 정책 논의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 정부도 지난해 10월 ‘2050년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K택소노미(친환경 녹색 사업 관련 한국형 분류 체계) 제정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그런데 탄소 배출 규제가 생기면 필연적으로 고탄소 산업 위축과 자산 가치 하락, 신용 위기가 뒤따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기업에 대출해 주고 투자하는 금융사가 탄소 중립(탄소 순배출량 0)을 고려하지 않으면 부실 리스크를 떠안게 되는 것이다. 금융사들이 녹색 금융 활성화에 고삐를 죄고 있는 이유다. 한국에선 리딩 금융 자리를 수성하고 있는 KB금융그룹이 탄소 중립에 앞장서고 있다. KB금융그룹의 탄소 중립 사업을 짚어 봤다.
탈석탄 선언으로 물꼬 터, 탄소 중립 앞장
탄소 중립 하면 철강·석유화학 등 전통 제조 기업을 떠올리기 쉽다. 금융사가 직접적으로 배출하는 탄소는 그리 많지 않아 초기에는 기후 변화 이슈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에 속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기후 환경 리스크에서 금융 산업의 역할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기업의 가치는 단순하게 보면 미래에 벌어들일 현금 흐름의 합계다. 금융사의 역할은 이러한 미래 흐름을 보고 돈을 대출해 주거나 투자하는 것인데 금융사가 고탄소 배출 기업으로 흐르는 자금을 차단하지 않는 한 다른 노력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세계 각국에서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환경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유럽연합(EU)은 세계 첫 탄소 국경세를 도입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탄소세가 급등하면 석탄·천연가스·휘발유·전기 가격이 급격히 상승해 실물 경제와 금융회사에 영향을 미치고 금융회사가 다시 실물 경제에 타격을 주는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전 세계 은행·증권·보험회사를 관리하는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국제증권관리위원회기구(IOSCO)·국제보험감독기관협회(IAIS) 등이 기후 리스크를 금융 감독에 적용하기 위한 국제 기준을 만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ING·모건스탠리 등 외국계 금융사들은 국제기구의 가이드라인을 적용하고 고배출 업종에 대한 대출 포트폴리오의 탄소 배출량 감축 성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 금융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KB금융그룹도 탄소 제로에 앞장서기 위해 체질 개선에 한창이다. 탄소 중립을 포함한 그룹 ESG 사업은 양종희 부회장이 관할하고 김진영 상무가 실무 총괄을 맡는다. 올해 3월엔 이사회 내 ESG 경영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ESG위원회를 신설했다.

우선 KB금융그룹은 지난해 9월 한국 금융그룹 중 가장 먼저 모든 계열사가 참여하는 ‘탈석탄 금융’을 선언하며 녹색 금융의 물꼬를 텄다. 같은 해 11월과 12월 각각 신한금융그룹과 우리금융그룹도 탈석탄 방침을 발표했고 올해 2월과 3월 NH금융그룹과 하나금융그룹이 각각 동참했다.

최근엔 탄소 중립 중·장기 추진 전략 ‘케이비 넷 제로 스타(KB Net Zero S.T.A.R.)’를 선언했다. 넷 제로 스타는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에 기여하고 파리기후협약의 적극적 이행을 통해 환경을 복원하는 ESG 전략이다. 넷 제로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감축량을 더해 온실가스 순배출량이 ‘제로(0)’인 상태를 말한다. KB금융그룹은 그룹 내부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은 2040년까지 ‘0’을 달성하고 자산 포트폴리오 배출량은 2050년까지 ‘0’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자산 포트폴리오 탄소 배출량은 그룹사가 대출·투자한 기업의 탄소 배출량을 말한다.

금융회사의 탄소 중립 선언은 타 산업군에 비해 무게감이 남다르다. 단순히 자사가 배출하는 탄소 배출량만 관리하면 되는 제조사와 달리 대출이나 예금 고객의 탄소 배출 감축까지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탄소 중립과 관련된 선언들이 과연 구체적인 실행 방안까지 담고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KB금융그룹은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기 위해 글로벌 표준을 제시하는 탄소회계금융협의체(PCAF)와 과학적 기반 감축 목표 이니셔티브(SBTi) 방법론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업계 처음으로 대출·투자한 기업의 탄소 배출량을 공개했다. 산출된 자산 포트폴리오 배출량은 약 2676만 톤(tCO₂eq)이다. 투명한 공개로 탄소 감축과 관련된 목표치를 더 엄밀하게 챙기겠다는 의미다. 전 세계적으로 자산 포트폴리오 배출량을 공개한 금융회사는 ABN암로와 APG 등 36개사다.
친환경 기업 문화 내재화 시동
KB금융그룹은 그룹 내부 탄소 배출량을 감축하기 위해 친환경 기업 문화를 내재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 우선 그룹 본점을 포함해 총 6개의 대형 건물에 환경 경영 시스템(ISO-14001 인증)을 적용, 탄소 배출량과 폐기물 발생량 등 환경 데이터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경영 활동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 저감과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을 위해서다.

모든 계열사는 에너지 사용량을 감축하기 위해 본점과 영업점의 전등을 발광다이오드(LED)로 교체했고 냉난방기 회전형 윈드바이저 설치, 점심 시간과 야간에 일괄 소등 후 선택적 점등 등 활동을 수행 중이다.

신재생에너지 사용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김포 통합 IT센터는 ‘그린 데이터센터’ 구축을 목표로 태양광 발전과 연료전지 설비를 도입해 자체적으로 전력을 생산하고 있고 외부 공기를 활용한 에너지 절감형 공조 시스템도 도입했다. KB손해보험 합정 사옥과 사천연수원, KB국민은행 통합 사옥에도 신재생에너지를 통한 자체 전력 생산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회사 관계자는 “KB국민은행은 2019년 전기차 10대를 시범 도입한 후 2020년 10대를 추가 도입해 탄소 배출량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며 “향후 전 계열사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플라스틱 사용 자제, 복사 용지 줄이기 등 친환경 캠페인도 시행 중이다. 부서별 복사지 사용량을 매월 체크해 용지 절감 우수 부서에 시상도 진행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의 그린 먼데이(Green Monday) 프로그램도 친환경 캠페인의 일환이다. KB국민은행은 매주 월요일 구내식당 메뉴를 저탄소 식단으로 구성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저탄소 식단은 채소와 과일 등 식물성 식품을 제공하는 식단으로, 동물성 식단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대 80% 감소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KB금융그룹은 2030년까지 ESG 상품·투자·대출을 50조원으로 확대하고 그중 25조원을 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분야에 집중적으로 공급하겠다는 계획도 마련했다.

임대웅 유엔환경계획 금융 이니셔티브(ENEP FI) 한국대표는 “한국 금융 당국과 금융권에서 넷 제로를 인지하고 신용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면서도 앞으로 핵심은 금융사가 수익을 낼 수 있는 금융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모건스탠리는 친환경에 1000조원을 투자한다. 그런데 한국의 리딩 그룹인 KB금융그룹과 신한금융그룹은 투자 규모가 25조~30조원에 불과하다”며 “연내 나올 K택소노미에 따른 미래 먹거리에 대한 금융회사의 익스포저(금융 투자 상품 합계)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