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도 실패 거듭한 끝에 애플을 최고 기업으로 일궈…미래 가치에 주목할 때
[장동한의 리스크 관리 ABC] 2000년 1월판 포천 매거진 표지엔 분명 ‘스티브 잡스(Steve Jobs)’ 사진이 올라 있는데 이름이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라고 찍혀 있다. 스티비 원더는 필자가 아주 좋아하는 미국 리듬 앤드 블루스(R&B)의 싱어다. 도대체 왜 스티브 잡스를 스티비 원더라고 쓴 걸까.1970년대 말 친구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자기 집 차고에서 인류 최초의 퍼스널 컴퓨터를 만든 이가 스티브 잡스다. 그가 시작한 애플 컴퓨터는 승승장구했다.
회사 규모가 급속히 커지자 전문 경영 역량이 필요했고 엔지니어였던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당시 펩시콜라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존 스컬리를 영입한다.
세 명은 한때 환상의 콤비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지만 1985년 결국 갈라서고 만다. 천재적이지만 독선적인 성격의 스티브 잡스는 원만한 사회생활과 안정적인 비즈니스 운영에 도리어 방해가 된다는 비판 속에 이사회 결의를 통해 자기가 세운 애플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가 곧바로 워크스테이션급 고급 컴퓨터 넥스트(NeXT)를 선보였지만 그 역시 실패했다. 훌륭한 하드웨어 컴퓨터였지만 소프트웨어가 뒷받침되지 않았다.
거듭된 실패에도 스티브 잡스는 굴하지 않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찾아 나섰는데 결국 3D 애니메이션 필름 회사인 픽사에 투자해 대박을 터뜨렸다. 탄력을 받은 스티브 잡스는 1997년 애플에 컴백해 아이맥·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 등 히트 상품을 연이어 출시한다.
그리고 췌장암 투병을 하다가 2011년 사망한다. 그야말로 스티브 잡스의 생애는 ‘원더(wonder) 풀(full)’하다. ‘스티브 원더(Stevie Wonder)’가 맞다.
1985년 본인이 설립했던 회사에서 쫓겨났던 스티브 잡스의 시장 가치는 얼마나 됐을까. 주머니에 한 푼도 남김없이 쫓겨났다면 그의 가치는 ‘0’일까. 그럴 리가 없다. 스티브 잡스는 천재이기 때문에 기회만 되면 훌륭한 투자를 통해 재기할 수 있는 독창성과 창조력과 실행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능력을 믿고 투자한 이들이 있었고 실패와 성공을 통해 마침내 애플을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지 않았는가. 이게 바로 투자의 힘이다. 좋은 투자를 통해 높은 생산성을 시현할 때 기업 가치는 크게 향상된다.
한 기업이 가지고 있는 건물·현금·유가증권·인력 등 유형 자산을 넘어 창의성과 생산성을 통한 미래 가치가 기업 가치에 반영돼야 마땅하다. 그래서 사람을 평가하거나 한 비즈니스의 가치를 평가할 때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값어치 이상의 발전 가능성을 눈여겨봐야 한다.
지금은 별 볼 일 없어도 될성부른 떡잎에 투자하는 게 좋다. 이를 위해선 좋은 투자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과감한 ‘리스크 테이킹’이 때로는 필요하다. 그래야 기존 가치에 더해 추가적인 부의 창출이 가능하고 그것이 모든 비즈니스의 목표인 기업 가치 제고의 길이다.
신제품 개발, 새로운 프로젝트 시행, 신시장 개척, 해외 시장 진출 등 여하한 비즈니스의 내용을 보면 대부분 리스크 테이킹이다. 낮은 비용에 자금을 조달해 좋은 투자를 이어 갈 때 기업 가치가 향상되는 것은 기업 재무의 기초다.
애플의 로고는 누군가 한입 베어 먹은 사과 모양이다. 이는 영국 컴퓨터 사이언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앨런 튜링과 관련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은 독일군이 개발한 암호 생성기 에니그마의 암호 체계를 풀어내지 못하고 고전하다가 튜링이 이끄는 특수팀이 에니그마를 풀어내면서 연합군의 승전에 크게 기여한다.
종전 후 동성애자로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 튜링은 자살을 결심하는데 평소 자신이 좋아했던 사과에 독극물을 주입해 한입 베어 물었다고 한다. 최근 영국에서 그에 대한 명예 회복이 이뤄지면서 50파운드 신권에 튜링이 모델로 등장했다. 이래저래 애플의 비즈니스는 ‘원더풀’하다. 우리도 리스크 관리를 통해 지속 성장하는 ‘원더풀 코리아(Wonderful Korea)’를 꿈꿔 본다. 장동한 건국대 국제무역학과 교수·전 한국리스크관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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