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과거에서 도착한 한 통의 편지…시작된 슬픈 살인
북유럽을 넘어 국내 상륙한 ‘파비안 리스크’ 형사 시리즈

[서평]
돌이킬 수 없는 편지가 불러온 서늘한 심판
편지의 심판 : 파비안 리스크 시리즈 2
스테판 안헴 지음 | 김소정 역 | 마시멜로 | 1만6800원


“요 네스뵈보다 더 매혹적이고 스티그 라르손보다 더 심오하며 헤닝 만켈보다 더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스웨덴의 인기 범죄 스릴러 작가 스테판 안헴이 또다시 여름 시장을 찾아왔다. 이 소설은 스웨덴과 덴마크 두 나라 사이를 넘나들며 동시다발적으로 자행되는 의문의 연쇄 살인 사건과 사라지는 장기의 연결 고리를 추척해 나가는 한 경찰의 이야기를 그린 범죄 스릴러로, 스웨덴은 물론 독일·덴마크·노르웨이·핀란드·아일랜드 등 북유럽 전역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전 세계 30개국에서 출간돼 200만 부 이상 판매된 ‘파비안 리스크 시리즈’의 둘째 이야기다. 이 책은 앞서 지난 6월 출간된 소설 ‘얼굴 없는 살인자(파비안 리스크 시리즈 첫째 이야기)’의 후속작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첫째 작품보다 앞선 6개월 전 사건을 다루고 있어 사실상 첫 이야기나 다름없다. 전작에서 풀리지 않았던 의문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겨울 저녁,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법무부 장관이 의회 건물과 그의 차 사이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동시에 덴마크 코펜하겐 북쪽에서 유명 TV 스타의 부인이 호화로운 자신의 저택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그리고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던 두 사건에 연결 고리가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바로 발견된 시체에서 감쪽같이 장기가 사라졌다는 것. 그 뒤로도 각기 다른 부위의 장기가 없어지는 살인 사건이 점점 늘어만 가고 스웨덴 스톡홀름 범죄수사국 강력반 형사 파비안 리스크와 덴마크 코펜하겐의 범죄 수사관 두냐 호우고르는 사건의 조각들을 한데 모으기 위한 수사를 펼친다. 그러던 중 용의 선상에 올랐던 정신병 이력을 가진 한 범인이 붙잡히고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하지만 파비안은 진범이 따로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사건을 몰래 재수사한다. 그리고 엄청난 비밀들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노르디스크필름 TV 시리즈로 제작될 최고의 범죄 스릴러

소설의 진짜 묘미는 다 끝난 줄 알았던 사건의 제2막이 시작되고 진실이 전면적으로 재구성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예상 밖의 범인의 실체를 알게 되는 순간, 왜 등장하는지조차 몰랐던 10여 년 전의 거짓말 같은 편지 한 통이 어떠한 엄청난 복수를 불러왔는지 목도하게 되는 순간 놀라움에 입을 다물 수 없게 된다.

특히 이번 소설은 주인공 파비안이 왜 스톡홀름 범죄수사국에서 좌천되듯 고향인 헬싱보리로 올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전편의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결정적인 사건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궁금증을 자아낸다. 분명 나중에 집필한 후속작임에도 인물들의 6개월 전 상황을 딱딱 맞아떨어지게 그려낸 작가의 필력은 마침내 복잡하게 얽혀 있던 사건이 하나의 퍼즐로 꿰맞춰지며 참혹하고도 슬픈 현실을 드러내며 폭발한다. ‘인간은 사랑 앞에 어디까지 자신을 내던질 수 있고 사랑은 인간을 어디까지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을까.’ 이 묵직한 질문은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랜 기간 시나리오 작가이자 각본가로 활동했던 저력을 과시하듯이 소설은 섬세한 심리 묘사와 예측할 수 없는 교묘한 플롯, 엄청난 규모의 스케일을 자랑한다. 스웨덴에서 최고의 범죄 스릴러상을 수상한 ‘얼굴 없는 살인자’에 이어 독일 최우수 범죄 스릴러상을 받기도 했다. 폭염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라는 이중고 속에서 맞는 여름 방학과 휴가철이다. 어쩔 수 없는 홈캉스족이 늘고 있는 지금, 국제적인 수상 이력과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TV 시리즈(노르디스크필름 제작)’로도 방송될 예정인 ‘파비안 리스크 시리즈’를 책으로 먼저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오랫동안 여운이 가시지 않는 한 편의 대작 영화를 본 것 같은 재미를 느껴보길 바란다.

이혜영 한경BP 출판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