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경비원들, 입주자대표회의 상대로 소송
대법 “경비원 휴게 시간도 노동 시간으로 인정하라”

[법알못 판례 읽기]
서울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 모습 /한국경제신문
서울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 모습 /한국경제신문
아파트 경비원들은 종종 ‘감시적 근로 종사자’로 분류된다. 감시적 근로 종사자는 단순한 감시 업무를 주 업무로 하며 상대적으로 정신적·육체적 피로가 적은 직종을 의미한다.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이 있다면 주52시간 근무제 등 노동 시간 등의 규정에 대해 제외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경비원들의 주 업무는 ‘단순 감시’보다 입주민들의 생활 전반의 편의를 돕는 일에 가까운 것을 종종 목격한다. 주로 택배 보관, 재활용품 분리 수거, 주차 등 아파트 구역을 ‘관리’하는 역할에 가깝다. 경비원들은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점심시간 혹은 휴게 시간에도 업무를 보기도 한다.

이에 대법원은 경비원이 휴게 시간에도 업무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면 이를 노동 시간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대법원 제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의 퇴직 경비원 34명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 “근로 계약에 명시된 휴게 시간(1일 6시간)과 산업 안전 보건 교육 시간(매달 2시간)은 노동 시간에 해당한다”는 원심의 판결을 유지했다.

1심 “휴게 시간, 노동 시간으로 인정할 근거 없어”

사건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압구정현대아파트는 2018년 2월 140여 명의 경비원에게 해고 통보했다. 압구정현대아파트는 이전까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경비원을 직접 고용하는 방식으로 경비원을 채용해 왔다.

하지만 2018년 입주자대표회의는 돌연 경비원 고용을 용역 업체에 맡기겠다며 기존 경비원들을 해고했다. 입주자대표회의 측은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인상돼 금전적 부담이 늘어났다”며 “경영과 노무 등의 전문 지식 없이 100명이 넘는 경비원들을 직접 고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경비원들은 부당 해고라며 반발했다. 그러면서 임금 소송이 불거졌다. 경비원들은 입주자대표회의에 “근로수당에 휴게 시간과 교육 시간이 빠져 있다”며 “미지급된 근로수당과 이에 따른 퇴직금 차액분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압구정현대아파트의 경비원들은 오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24시간을 근무하고 다음 날을 쉬는 격일제 교대 근무 방식으로 근무했다. 하지만 이들은 하루 1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급여를 받았다. 고용계약서에 하루 6시간을 휴게 시간으로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경비원들은 “점심, 저녁 각 1시간의 식사 휴게 시간과 4시간인 야간 휴게 시간에도 사용자인 입주자대표회의의 지휘·감독 아래 경비 초소에서 식사를 하거나 가수면을 취하면서 경비 업무뿐만 아니라 택배 보관, 재활용품 분리 수거, 주차 관리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며 “입주자대표회의가 1일 18시간 근무한 것을 기준으로 산정한 임금과 법정 수당만을 지급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야간 휴게 시간에 눈을 붙이다가 입주민에게 호통을 듣기도 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경비원들이 이런 임금 산정 방식에 항의하지 못한 이유는 1년 단위 계약 기간에 있었다. 매해 고용 계약을 갱신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쌓여 온 불만이 터진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입주자대표회의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휴게 시간이 실질적으로 노동 시간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사실상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다만 “산업 안전 보건 교육을 받은 시간 매월 2시간 가운데 20분씩을 노동 시간으로 인정하라”며 약 1400여만원을 경비원에게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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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대법 “입주자, 경비원에게 7억여원 지급”

하지만 2심은 1심의 판단을 뒤집었다. 2심 재판부는 입주민의 증언을 통해 경비원의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입주민들은 “아파트에 지하 주차장이 없어 이중 주차가 불가피했다”며 “주차 공간이 없는 경우 주변에 불법 주차를 하고 단지 내 빈 공간이 생기면 자신의 차량을 옮겨 주차해 달라며 경비원에게 차량 열쇠를 맡기곤 했다”고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재판부는 경비원의 휴게 시간이 입주민에게 알려진 적이 없다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아파트 경비원의 휴게 시간은 총량(6시간)만 정해져 있었을 뿐 단체협약, 근로계약서 등 어디에도 구체적인 휴게 시간이 정해진 바 없다”며 “경비원 및 입주민에게 이를 공식적으로 공지한 바 없다”고 말했다.

업무 시간과 휴게 시간을 구분하기 어려운 경비원의 업무 특성상 입주민이 경비원의 휴게 시간을 몰랐다면 입주민들이 항상 업무 처리를 요구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1심에서 매월 20분만 인정했던 교육 시간도 전부 인정해야 한다는 판단도 덧붙였다. 재판부는 “산업 안전 보건 교육에 소집돼 각종 지시 사항을 전달받았고 교육을 이탈하거나 위 시간을 자유로이 이용할 수 없었다”며 “2시간에 해당하는 임금 및 그에 따른 퇴직금 차액분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결국 2심은 미지급 수당 총 7억3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을 수긍한다”며 원심을 확정지었다.

다만 지연 이자 적용 기간 부분에 대해서는 원심을 파기하고 기간을 소폭 줄였다. 원심은 소장 부본 송달 다음 날부터 근로기준법상 가중된 지연 이율(연 20%)을 적용하라고 판결했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결 선고일부터 적용하는 것이 맞다고 자판했다.


[돋보기]
2017년에도 같은 판결…압구정현대 경비원 임금 소송 파장은?

이번 판결은 기존의 판례를 뒤엎은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2017년 12월에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 1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원 강 모 씨 등 5명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부로 돌려 보냈다.

하급심은 전부 “야간 순찰 업무는 초과 근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나머지 시간 역시 실질적 감독하에 초과 근무한 것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경비원이 청구한 임금 가운데 약 10분의 1만 초과 근무로 인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긴급 상황에 대비하는 대기 시간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경비원에게 휴게 장소 등을 보장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원심을 파기한 것이다.

2006년 11월에도 대법원은 24시간 격일제 근무하는 경비원의 야간 휴게 시간을 노동 시간에 포함해 달라는 임금 소송에서 휴게 시간과 심야 수면 시간을 노동 시간에 포함하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압구정현대아파트 사건이 경비원 임금 소송 판결 기조에 쐐기를 박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은 유명 아파트 경비원 해고 소송 등으로 세간에 알려지며 주목을 받아 왔다. 이를 통해 판결의 기조가 각인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정지숙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는 “휴게 시간과 함께 교육 시간을 인정한 판결”이라며 “매해 아파트 경비원 임금 소송이 끊이지 않는 만큼 파장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광균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오래된 집합 건물의 경우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직접 경비원을 고용, 관리하는 경우가 많아 노무 관리가 어려웠을 것”이라며 “이번 대법원 판결을 원용해 줄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이러한 소송 기조가 이어진다면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해고 압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노동 시간이 하루 평균 4시간 늘어나면서 1인당 지급해야 할 급여가 늘어나 추가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오현아 한국경제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