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상권 겨냥한 퀵커머스 등장에 위기감…‘온라인 강화’ 내걸고 신규 서비스 선보여
[비즈니스 포커스] 8월 10일 오후 10시가 다 돼 가는 늦은 저녁, 목이 마르고 허기가 져 동네 편의점에 갈까 생각하던 중 얼마 전 GS리테일이 ‘우딜 주문하기 애플리케이션(이하 우딜앱)’을 출시했다는 것이 문득 떠올랐다.우딜앱은 GS리테일이 운영하는 GS25(편의점)와 GS수퍼마켓의 상품을 배달해 주는 애플리케이션(앱)이다. 이전까지 사용해 본 적이 없었지만 생각난 김에 한 번 주문해 보기로 했다.
앱을 설치한 뒤 회원 가입을 마치자 편의점에서 판매 중인 여러 상품들을 휴대전화에서 고를 수 있었다. 종류도 많았지만 오프라인 편의점에서처럼 2+1 상품들도 여러 개 있어 인상적이었다.
커피와 바나나 등을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 버튼을 누르자 집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편의점에서 배달이 진행될 예정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총 결제 금액은 1만5000원(배달 요금 3000원 포함)이었다. 단 현재 첫 주문 고객에게만 제공되는 프로모션(5000원 할인)이 진행 중이어서 1만원만 내면 됐다.
주문한 지 20여 분이 흐르자 ‘띵동’ 소리가 들렸고 상품을 받을 수 있었다.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빠르게 상품을 받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서비스는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실시간으로 라이더의 위치, 즉 ‘배송 현황’을 볼 수 없었던 부분이 아쉬웠다. 오프라인 점포 혁신에 주력해 왔던 주요 편의점들이 최근 달라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점포 안으로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한 기존의 전략에서 벗어나 일제히 ‘온라인 강화’를 외치며 고객을 직접 찾아가는 다양한 서비스를 새롭게 선보이고 나섰다. 편의점들의 본격적인 ‘이커머스 반격’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GS리테일, 편의점 기반 ‘빠른 배송’ 맞불
그동안 편의점들은 대대적인 프로모션을 비롯해 자체 상품 개발, 택배, 공과금 납부 등 오프라인 점포 혁신을 토대로 꾸준히 점포 수를 늘리며 성장해 왔다. 소비자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찾는 집 근처 편의점은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유통망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더 빠르게 앞당겨진 ‘온라인 시대’에서도 편의점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이자 그동안 편의점들이 온라인 강화에 소극적이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편의점업계 내부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계속해 오프라인에 주력하다가는 더 이상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 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위기감이 팽배해졌다.
유통업계의 화두로 떠오른 ‘퀵커머스’ 때문이다. 퀵커머스는 도심 곳곳에 풀필먼트 시스템을 갖춘 도심형 물류센터(MFC)를 만들고 온라인에서 주문한 상품을 짧으면 10분, 길어도 1시간 이내에 전달해 주는 서비스다.
배달의민족·요기요 등에 이어 쿠팡·현대백화점과 같은 온·오프라인 유통 강자들이 최근 잇달아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시범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열기가 뜨거워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퀵커머스는 근거리 장보기 수요, 이른바 ‘골목 상권’을 타깃으로 삼고 있어 편의점으로서는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집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고 편하게 생필품 주문이 가능해진 만큼 편의점을 찾는 고객들을 빼앗길 수 있다.
주요 편의점 가운데 온라인 강화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단연 GS리테일이다. 6월 말부터
GS25를 활용한 우딜앱을 론칭하면서 퀵커머스 시장 확대에 맞서 직접 관련 서비스를 선보이기로 결정했다. CU도 대용량 제품 판매 시작하며 도전장GS리테일이 퀵커머스 시장 공략에 나선 배경은 승산이 충분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아직 퀵커머스 시장이 태동기라는 점이다.
현재 실질적으로 퀵커머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배달의민족 정도에 불과하다. 쿠팡과 현대백화점은 아직 정식 서비스를 내놓지 않았다. 두 기업 모두 서울 일부 지역에 한해서만 시범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시장을 선점할 기회가 충분하다.
둘째는 촘촘하게 퍼져있는 편의점 점포망이다. 퀵커머스를 구현하기 위해선 MFC가 필수다. 이미 GS리테일은 전국에 약 1만5000개에 달하는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다.
편의점 점포를 MFC처럼 운영한다면 경쟁사들보다 빠르게 서비스를 확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GS리테일은 현재 GS25 가맹점주들의 배달 서비스 참여를 제안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GS리테일 관계자는 “아직은 우딜앱에서 배달이 불가능한 지역이 많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주들의 참여가 늘어나 서비스 범위가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주요 이커머스 기업 중 한 곳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청사진도 그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7월부터 GS리테일과 GS홈쇼핑이 통합해 새 출발을 결정한 것도 이런 목표를 완성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현재 GS리테일은 내부 조직 정비를 완료하고 ‘마켓포’라는 이름의 플랫폼을 시범 운영 중이다. 마켓포는 GS홈쇼핑·랄라블라·심플리쿡·달리살다 등 GS리테일이 운영 중인 유통 계열사들의 상품을 한곳에서 구매할 수 있도록 한 통합 커머스다.
향후 자사와 관계없는 브랜드들까지 추가로 입점시켜 정식 서비를 론칭할 예정이다. 이커머스의 핵심인 물류에도 막대한 투자를 이어 갈 계획이다. 5년 동안 5700억원을 물류와 정보기술(IT) 인프라 구축에 투자할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편의점 역시 물류 거점으로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편의점들 역시 GS리테일만큼은 아니더라도 최근 들어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를 새롭게 선보이며 온라인 대응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은 자사 앱 ‘포켓CU’에서 대용량 생필품 판매를 개시했다. 포켓CU 앱은 당초 소비자들이 편의점 와인이나 도시락, 선물 세트 등을 미리 주문하는 용도로 활용했던 앱이다.
여기에 진열 등의 문제로 편의점 판매가 어려웠던 대용량 상품들을 추가적으로 판매하면서 상품의 범주를 확대했다. 이커머스와 대형마트의 영역에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현재 포켓CU 앱에서는 과일을 비롯한 생필품을 판매 중이다. 주문하면 약 2~5일 사이에 고객들이 원하는 주소로 배송해 준다. 이커머스 대비 배송 시간이 느린 편인데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온·오프라인 최저가 수준으로 상품을 내놓았다.
포켓CU 앱에서 판매 중인 제품 가격을 살펴보니 쿠팡에 비해 5000원 정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었다. 판매 품목 등을 꾸준히 늘리면서 온라인 수요에 대응해 나갈 계획이다.
이마트24도 6월 ‘이마트24 모바일 앱’과 ‘네이버 주문’에서 배달 주문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한 상태다. 기존에는 카카오톡 선물하기 등을 통해 이마트24 상품을 온라인에서 고객들이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쳤다.
더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마트24 배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재는 내부 시스템 보완으로 인해 서비스 이용이 불가능하지만 곧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런 편의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마냥 밝은 것만은 아니다. 온라인 시장에 안착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분명 있지만 이들의 계획대로 시장에 안착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상존한다.
“쿠팡·네이버·카카오·배달의민족같은 기업들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스마트폰에 앱이 깔려 있고 구매 환경 세팅이 완료됐다. 즉, 소비자들이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들어가 결제할 수 있는 준비가 끝난 상황이다. 후발 주자로 온라인 시장에 뛰어든 편의점들이 온라인에서 이들과 같은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할 수 있다. 파격적인 서비스 없이는 아무리 갖고 있는 인프라가 뛰어나더라도 안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박상준 키움증권 애널리스트의 분석이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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