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배터리’ 경쟁 선점…완성차업계 도전 뿌리치는 가장 확실한 방법

[테크 트렌드]
6월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1' 및 'xEV트랜드 코리아'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이 삼성SDI부스에서 전기자동차용 배터리팩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6월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1' 및 'xEV트랜드 코리아'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이 삼성SDI부스에서 전기자동차용 배터리팩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복숭아 농사를 지을 때는 가지치기가 생명이다. 큰 복숭아 열매 하나를 선택하고 주변의 작은 열매나 가지들을 과감히 정리해야 상품 가치가 있는 큰 복숭아를 얻을 수 있다. 큰 열매에 영양분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배터리 업체와 완성차 업체 간 주도권 싸움이 거세다. 배터리 업체가 이 경쟁에서 이기려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고 집중해야 한다. 가장 잘하는 분야의 경쟁력 극대화 우선1. 압도적인 배터리 기술력

배터리 기술력이 ‘압도적’이어야 한다. 그냥 ‘좋은’ 수준이면 진다. 왜 그럴까. 첫째, 유럽 특허청에 따르면 차세대 배터리인 전고체 배터리의 국제 특허 국가별 비율은 일본이 54%, 미국이 18%, 한국이 12%다. 현재 상용화된 리튬 이온 배터리 최강자인 한국 배터리 업체도 차세대 배터리인 전고체 배터리 시장을 압도하려면 바짝 긴장해야 한다. 앞선 이들이 있다. 폭스바겐은 200개의 전고체 배터리 특허를 가진 미국 스타트업 퀀텀스케이프에 2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둘째,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중국에서 출시할 전기차에 중국 배터리를 탑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시장 조사 기업 EV볼륨스닷컴에 따르면 2020년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유럽과 중국이 각각 약 40%씩 양분하고 있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자국 전기차와 자국 배터리를 엄청나게 밀어주고 있다. 중국 출시 전기차는 중국 배터리를 탑재하라는 압력도 행사한다. 이 강력한 경쟁자를 제칠 한국 배터리 업체의 승부수는 단 하나다. 압도적인 기술력뿐이다. 가격에도, 물량에도, 정부 차원의 압박에도 끄떡없을 유일한 무기다.

셋째, 지금 한국 배터리가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리튬 이온 배터리는 기술 개발이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것이 업계의 다수 의견이다. 수십 년 만에 리터당 몇 km의 연비가 향상되는 내연기관 기술과 달리 배터리 기술은 불과 몇 년 만에 최대 주행 거리가 200km, 300km, 500km로 급성장한다. 더 작고 더 가벼우면서 저장 용량이 더 크고 순간 파워도 더 큰 배터리가 오늘 자고 나면 내일 또 생겨날 판이다. 기술 개발에 뒤처지지 않게 끊임없이 자본과 연구를 쏟아부어야 한다. 배터리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점에 한 번 뒤처지면 다시 따라잡기가 어렵다. 차세대 배터리인 전고체 배터리는 2025년 출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배터리 업체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 남들이 못하는 것인 전고체 배터리를 공략해야 한다. 다른 배터리 업체보다 빨리, 다른 완성차 업체가 따라오기 전에 말이다. 그래야 현재 이뤄 놓은 탄탄한 진입 장벽을 최대한 오래 유지할 수 있다. 게다가 2023년부터 2025년까지 배터리 수요가 공급을 크게 초과하는 물량 부족이 발생한다지 않은가. 더 없는 호재다.

2. 압도적인 배터리 생산력

기술력만 갖췄다고 다가 아니다. 생산력도 필요하다. 국내외 완성차 업체들이 잇달아 전기차 배터리 내재화를 추진하자 지난 5월 초 한국 배터리 업체들이 배터리 소재 내재화로 맞대응에 나선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배터리 업체들이 배터리 세부 소재인 분리막·양극재·음극재 기업과 합작 투자, 인수·합병(M&A), 기술 협력을 한다는 소식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장기적으로 보자. SNE리서치에 따르면 배터리에 사용되는 주요 소재는 중국 의존도가 높다. 한국의 양극재 소재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2020년 20.2%로, 중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다른 소재들도 중국에 한참 밀린다. 배터리를 구성하는 이 세부 소재들을 직접 개발, 생산하는 능력을 한국 배터리 업체가 갖춘다면 배터리 가격 경쟁력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압도적으로 배터리 생산 단가를 낮출 수 있다. 완성차 업체가 배터리를 내재화하건 못하건 상관 없이 배터리 업체는 배터리 가격 경쟁력과 안정적인 생산력 모두를 얻게 된다. 중국 시장도 견제할 수 있고 배터리업계에서 목소리도 훨씬 키울 수 있다.

둘째, 단기적으로 보면 물 들어올 때 노 젓기 위해서다. 지금부터 3년간 폭발할 배터리 수요에 맞춰 배터리를 대량 생산하려면 일단 핵심 소재인 양극재 확보가 필수다. 소재 업체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생산이 가능하면 안정적이고 독점적인 물량 확보가 확실해진다. LG화학은 지난 4월 2020년 말 기준 8만 톤인 양극재 생산 능력을 2025년까지 26만 톤으로 3배 확장한다 발표했다.

배터리 업체가 여기까지 수성한다면 배터리 경쟁력은 배터리 업체가 계속 쥐고 갈 확률이 높다. 배터리 업체에서 개발·생산·공급하고 완성차 업체는 전기차 완제품을 생산하는 지금의 체계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 최대 완성차업체인 폭스바겐이 자체 배터리 비중을 2030년 80%로 높이겠다고 3월 15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외르크 타이히만 폭스바겐 최고구매책임자(CPO)가 배터리 성능을 끌어올릴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폭스바겐 제공
세계 최대 완성차업체인 폭스바겐이 자체 배터리 비중을 2030년 80%로 높이겠다고 3월 15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외르크 타이히만 폭스바겐 최고구매책임자(CPO)가 배터리 성능을 끌어올릴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폭스바겐 제공
배터리 플랫폼 서비스로도 눈 돌려야완성차 업체가 배터리 내재화를 선언했다는 것은 결국 배터리 공유 서비스 방식을 염두에 뒀다는 뜻이다. 완성차 업체가 단기간에 양질의 배터리를 바로 생산해 내지는 못한다는 것을 완성차 업체도 모를 리 없다. 완성차 업체는 전고체 배터리도 연구하되 단기적으로는 일단 저렴하고 대중적인 저품질 제품으로 시장 몰이를 할 확률이 높다. 대량 생산과 원가 절감이 가능한 배터리를 우선 택할 것이다. 전기차를 일단 판매만 하고 나면 배터리 공유·대여·교체 서비스로 배터리를 교체 받게 할 전략을 쓸 수도 있다.

비용적으로 어떤 장점이 있을까. 소비자들은 배터리 비용이 제외된 가격에 전기차를 구매한 뒤 추후 배터리 공유·대여·교체 금액만 내면 된다. 초기 구매 비용이 낮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일단 전기차 시장에 발을 들여 놓기가 부담스럽지 않고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주기적으로 배터리도 교체하게 된다. 따라서 전기차 시장 규모가 확산된다. 일반 승용차 전기차 배터리 수명은 5~10년이고 전기 택시는 2~3년이니 이 수요는 끊임없이 있을 것이다.

환경적으로는 사용 후 폐배터리를 재활용할 길이 열리는 장점도 있다. 전기차 충전, 주변 기기 충전에 폐배터리를 활용할 수도 있고 안전하게 수거할 수도 있어 환경 친화적인 선순환 생태계가 구축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30년 한국의 전기차 중고 배터리는 약 24만 대로 추산된다. 전체 전기차 중 약 8%는 재사용·재활용 배터리를 사용할 수 있으므로 이 시장도 주목할 만하다.

배터리 공유·대여·교체 플랫폼 서비스가 활성화되면 에너지 효율이 좋은 배터리, 안전한 배터리, 공간 효용성이 높은 배터리, 차체 간 호환성이 유연한 배터리 등 다양한 고가형 배터리가 많이 등장할 것이다. 처음부터 좋은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차를 구입하지 않은 소비자라도 추후 이 서비스를 활용하면 개인 맞춤형으로 더 나은 배터리를 공유·대여·교체받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배터리 필수 교체 시기가 아니더라도 수요는 수시로 발생할 것이다. 배터리 업체는 이미 수주한 완성차 업체 시장 외에 이 시장도 눈여겨봐야 한다.

플랫폼 사업을 해야 한다. 배터리 공유·대여·교체 서비스가 그런 사업이다. 배터리라는 제품을 판매만 하고 끝나는 사업이 아니라 제품과 엮여 있는 전체 모빌리티 서비스 플랫폼 사업을 잡아야 계속 수익이 생긴다. 플랫폼을 잡으면 특정 배터리가 팔리지 않는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플랫폼이 견고하다면 플랫폼이 돌아가는 한 다른 타입 배터리나 다른 솔루션이 기다렸다는 듯이 금방 그 자리를 대신해 주기 때문이다.

전기차 배터리는 신기술인 만큼 형태와 충전 방식 등 업계 ‘표준화’가 될 영역이 많다. 표준이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당연히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배터리가 되는 것이다. 배터리 수주 사업뿐만 아니라 배터리 공유·대여·교체 플랫폼 서비스 사업을 잡으면 자신의 배터리가 들어간 전기차가 절대 다수가 되므로 자기 배터리가 표준이 되는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다. 스마트폰 출시 초기에 구글 안드로이드 OS가 스마트폰 OS 플랫폼 시장을 오픈 정책으로 빠르게 장악했던 전략을 기억하라.

배터리 발열 관리 시스템도 솔루션 그 자체로 업이 될 수 있다. 전기차 배터리는 상온보다 온도가 너무 높거나 낮을 때 출력 성능, 주행 거리가 준다. 발열도 관리해야 한다. 어떤 배터리 타입이든, 어떤 전기차든 공통의 문제다. 배터리만 개발하고 파는데 머무르지 말고 어떤 브랜드 배터리이건 열 관리를 해 주는 시스템 솔루션 자체를 파는 것도 역시 플랫폼 사업으로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세계 최대 자동차 부품 업체 보쉬는 2030년까지 27조원을 투자하려던 전기차 배터리 자체 생산 계획을 2018년 포기했다. ‘신규 진출자가 시장을 공략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었다. 2016년 닛산은 전기차 배터리 생산 사업에서 철수했다. 직접 생산보다 톱 티어 배터리 업체를 통한 외부 조달이 비용 면에서 더 저렴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다이슨은 2016년부터 25억 파운드(약 3조8000억원)를 투자한 전기차 개발을 선언했지만 배터리 개발 난관으로 2019년 포기했다.

선택과 집중을 하자. 자신이 제일 잘하는 분야로.

정순인 LG전자 VS사업본부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