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자발적 기부’로 분배 강화…내년 당 대회 앞두고 ‘민심 달래기’ 나서

[글로벌 현장]
중국 선전시에 자리한 중국 IT 기업 텐센스 본사 전경. (/연합뉴스)
중국 선전시에 자리한 중국 IT 기업 텐센스 본사 전경. (/연합뉴스)
중국 공산당과 정부가 민간 영역 전반에서 벌이고 있는 각종 규제 조치는 ‘공동 부유(共同富裕)’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연결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한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에 대한 반독점 감독, 최근 나온 사교육 전면 금지 등의 목적지도 결국 공동 부유로 귀결된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공산당 중앙재경위원회는 최근 회의를 열고 공동 부유 추진 전략을 논의했다. 소득 격차를 줄이는 1차 분배, 세금과 사회보장제도를 통한 2차 분배, 부유층과 기업의 ‘자발적’ 기부를 통한 3차 분배 등 실행 방안도 내놓았다.

시 주석은 8월 30일 중앙전면개혁심화위원회 회의에서도 공동 부유를 촉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재경위와 개혁심화위는 군사위·안보위 등과 함께 시 주석이 위원장을 맡은 공산당의 핵심 조직이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가 앞으로도 모든 경제 관련 정책을 공동 부유 기조 아래 놓을 계획이란 것을 읽을 수 있다.

공동 부유의 핵심, 반독점 규제

빅테크 등의 시장에 대한 독점적 영향력을 줄이는 것은 공동 부유 정책의 핵심 중 하나다. 시 주석은 개혁심화위 회의에서 “반독점을 강화하고 공정 경쟁 정책을 심화하는 것은 사회주의 시장 경제 체제를 개선하기 위한 내재된 요구”라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발전 패턴을 구축하고 고품질 발전을 촉진하며 공동 부유를 촉진하는 전략적 높이에서 출발해 공정하고 경쟁적인 시장 환경 형성을 촉진하고 다양한 시장 참가자, 특히 중소기업을 위한 광활한 발전 공간을 만들고 소비자의 권익을 더 잘 보호하자”고 강조했다.

회의에서는 반독점 강화와 공정 경쟁 정책 추진 심화에 관한 의견, 비상 물자 비축 전략과 안전 관리 강화를 위한 제도와 메커니즘 개혁·개선에 대한 의견 등을 심의하고 의결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일부 플랫폼 기업의 야만적 성장과 무질서한 확장 등 일부 두드러진 문제에 대응해 반독점 감독을 강화하고 관련 플랫폼 기업의 독점·불공정 경쟁 행위를 법에 따라 조사·처리하고 무질서한 행위를 방지하는 당과 정부의 노력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평가했다.

딩이판 전 국무원(중국의 행정부) 발전연구원 세계발전연구소 부소장은 “독점 기업은 이익을 대부분 가져가면서 혁신하지 않는다는 게 역사적으로 증명됐다. 정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반독점 정책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시장 경제는 일정한 경쟁을 요구하며 경쟁은 시장의 동력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어 “독과점이 발생하면 경쟁이 없어지고 시장의 이익은 고스란히 독과점에 빼앗기게 된다”고 지적했다.

딩 전 부소장은 “이전에 혁신하던 기업이 영원히 혁신하는 것은 아니며 독점을 달성하면 혁신을 멈춘다는 게 세계적인 사례”라며 “이것이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 이유”라고 진단했다.
앞서 열린 중앙재경위 회의에선 공동 부유 실행 방안도 내놓았다. 핵심은 소득 격차를 줄이는 1차 분배, 세금과 사회보장제도를 통한 2차 분배, 부유층과 기업의 ‘자발적’ 기부를 통한 3차 분배의 실현이다.

공산당은 “1차 분배와 재분배가 연결된 기초 분배 제도를 구축하고 세수와 사회보험 확대 등을 통해 분배의 정밀도를 높여 중위 소득 계층의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고소득 계층에 대한 조절을 강화해 법에 따른 합법적 소득을 보장하면서도 너무 높은 소득을 합리적으로 조절하고 고소득 계층과 기업이 사회에 더 많이 보답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공산당의 ‘기부 격려’에 호응해 빅테크들은 잇따라 거액 기부에 나서고 있다. 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 텐센트는 중앙재경위 회의 직후 500억 위안(약 9조원)의 자금을 투입해 ‘공동 부유 프로젝트’를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텐센트는 공동 부유를 위해 의료, 농촌 경제, 교육 등의 분야를 장기적으로 지원할 것이라며 “사회에서 얻은 것을 사회에 환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텐센트는 지난 4월에도 ‘지속 가능한 사회 가치 창조’ 전략을 위해 500억 위안을 투입해 기초 과학, 탄소 중립 등의 분야를 탐색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중국 3위 전자 상거래 업체 핀둬둬도 100억 위안(약 1조8000억원)의 농업과학기술전담 기금 조성 계획을 내놓았다. 농업과학기술기금은 농촌 지역이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할 계획이다. 중국에서 도농 격차는 빈부 격차와 함께 사회 양극화의 핵심 문제 중 하나다.

핀둬둬는 이제 막 흑자 전환을 기대하는 단계여서 당장 100억 위안에 달하는 큰돈을 마련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핀둬둬는 지난 2분기 24억1500만 위안의 순이익을 올렸다. 핀둬둬는 창사 이후 2020년 3분기에 분기 기준 첫 흑자를 냈고 이번에 둘째 분기 흑자를 기록했다.

홍콩 밍바오는 자체 분석 결과 지난 1년간 알리바바·텐센트·바이트댄스·핀둬둬·메이퇀·샤오미 등 6대 빅테크가 총 2000억 홍콩 달러(약 30조원)를 기부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불평등 해소로 정권 유지 시도

전문가들은 중국이 부동산 보유세 전면 도입 등 ‘부자 증세’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슝위안 궈성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정부가 일반 개인의 소득세를 인하하는 대신 부동산 보유세·상속세·자본 이득세 도입 속도를 높이고 자선 기금이나 공공 기부금에 대한 우대 조치를 도입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부자들에게 물리는 세금이 선진국보다 상대적으로 적다. 세계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상속세가 없고 부동산 보유세도 일부 시범 도시를 제외하면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과 부유층의 불안감과 불만이 고조되자 공산당은 부랴부랴 “공동 부유가 부자를 죽이는 정책은 아니다”며 진화에 나섰다. 한원슈 중국 공산당 중앙재경위원회 판공실 부주임은 “공동 부유는 공동의 분투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라며 “부자를 죽여 빈자를 구제하는 방식을 택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또 “3차 분배는 자발적인 것으로 강제는 아니다”며 “국가 세제를 통해 적당한 인센티브를 줌으로써 (기부가) 분개 구조 개선에 충분한 역할을 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산당 고위 간부가 ‘부자들을 죽이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발신한 것은 공동 부유 정책 전면화 뒤 기업과 부유층의 사이에서 커진 불안을 달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관영 매체들은 “공동 부유는 시 주석이 집권 초기부터 일관되게 주장해 온 이념”이라는 보도를 반복하고 있다. 각종 규제들이 충분히 예측 가능한 조치였다는 주장이다.

시 주석은 집권 첫해인 2012년부터 공동 부유라는 개념을 꾸준히 제시해 왔다. 다만 그 빈도는 매년 달랐다. 2012년부터 매년 5~6회였던 공동 부유 발언은 둘째 임기(2017년) 시작을 앞둔 2016년 16회로 늘었다. 이후 다시 줄었다가 2019년 30회, 올해 65회로 급증했다. 내년에는 시 주석의 3연임을 결정하는 당 대회가 예정돼 있다.

중국 안팎에서는 중국이 ‘사회주의의 본질적 요구’인 분배를 다시 국정 기조의 전면에 앞세운 것을 두고 시 주석의 장기 집권 기반 다지기와 관련 지어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앞서 장쩌민과 후진타오 주석이 5년씩 2연임(총 10년)한 후 물러났던 관행을 바꾸는 커다란 시도다.

중국은 국내총생산(GDP) 총량 기준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할 정도로 경제력이 커졌지만 양극화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사회주의 국가의 정체성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장기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서민과 중산층 계층의 민심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진 상황이다.
크레디트스위스에 따르면 자산을 기준으로 한 중국의 지니계수는 2000년 0.599에서 지난해 0.704로 뛰었다. 지니계수는 분배의 평등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 0에서 1로 갈수록 불평등하다는 의미다.

베이징(중국)=강현우 한국경제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