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로 행복을 선사하는 한아양조

[막걸리 열전]
△쌀을 모티프로 한 한아양조의 로고.
△쌀을 모티프로 한 한아양조의 로고.
술이 달라지고 마시는 자리가 달라졌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더이상 ‘부어라 마셔라’ 하지 않는다. 색다른 경험에 거리낌이 없어 주종이 다양해지고 개인의 취향과 시간을 존중받을 수 있는 ‘홈술’이 늘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위한 ‘조금 더 좋은 것’을 기꺼이 찾는 행복을 누린다. 여기 그런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술이 있다. MZ세대 주인장이 운영하는 한아양조는 보기에 좋고 맛도 좋은 술을 정성껏 빚는다. 찾아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

조용한 동네 골목 틈에 새 가게가 들어섰다. 작은 입간판을 지나 쌀 모양 로고 하나로 단출하게 장식된 문을 열면 양조장이다. 조금 낯선 풍경이다. 양조장의 주인이자 모든 일을 책임지고 있는 유일한 노동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한아영 대표는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던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난데없이 양조를 시작하게 된 데는 전통을 계승하려는 굳은 사명감이나 남다른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4년 가까운 회사 생활 동안 한 대표는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일, 행복한 일을 하며 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고 즐겨 마시던 술에서 답을 찾았다. 그리고 살던 곳과 가까운 익숙한 동네에 자리 잡았다. 동네 빵집처럼 막걸리를 팔고 싶다는 한아양조는 그렇게 서울 방배동에 문을 열었다.

두루두루 즐기는 전통주

처음부터 막걸리를 만들겠다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 술을 경험하고 공부하다 보니 전통주 맛의 넓은 스펙트럼에 매료됐고 확장 가능성이 무한한 술이라고 판단했다. 한아양조는 ‘쉽고 재미있는 술’을 지향한다. 한정된 맛과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 남녀노소 즐겁게 마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첫 론칭 제품인 ‘일곱쌀’과 ‘아홉쌀’ 막걸리는 쌀·물·발효제 등의 기본 재료로 만드는 순곡주지만 숙성도에 따라 다채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 탐험하는 재미가 있는 술이다. 인공 첨가물을 철저히 배제해 쌀 본연의 맛에 집중하고 청량감을 살려 꿀떡꿀떡 마시기에 부담이 없다.
△(왼쪽부터) 백진주쌀 단일미로 빚은 일곱쌀과 아홉쌀.
△(왼쪽부터) 백진주쌀 단일미로 빚은 일곱쌀과 아홉쌀.
또한 과채류의 부재료나 향을 첨가했다고 생각될 정도로 풍부한 향기가 매력적이다. 병입 초기 풋사과를 연상시키는 상큼한 향부터 참외·수박 등 달곰한 과실향, 숙성될수록 진해지는 견과류나 바닐라의 향은 오로지 쌀의 발효 작용이 빚어내는 것이다. 맛과 향의 중심이 쌀인 만큼 국산 품종으로 엄선했다. 일곱쌀과 아홉쌀은 백진주쌀 단일미를 사용한다. 아밀로오스 함량이 낮은 멥쌀이라 부드러운 찰기가 있고 달고 풋풋한 맛을 고루 가지고 있어 원하는 술을 만들기에 적합했다. 게다가 수십 년 가족의 끼니를 책임진 한 대표 어머니의 기준을 통과한 쌀이었다. 밥으로 가장 맛있는 쌀이 술을 만들어도 당연히 맛있다는 ‘밥의 민족’다운 예상이 들어맞았다. 또 상쾌하고 청량한 막걸리 맛을 위해 밑술에 새로 찐 고두밥을 추가해 두 번 빚는다. 이양주 방식으로 주조하면 거친 맛이 사라지고 쌀 고유의 향미가 더욱 살아나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맛의 밸런스를 맞추는 비결이 품질 좋은 재료와 정성이라고 말한다. 미세한 차이에도 크게 달라지는 양조 특성상 모든 과정에 소홀할 수 없다. 하나하나 손이 가기 때문에 한 달 800병 정도의 생산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한아영 한아양조 대표.
△한아영 한아양조 대표.

볼 때도 마셨을 때도 행복한 술

한아양조는 오픈과 동시에 전통 주류 신(Scene)의 샛별로 떠오르며 전량 완판 행진을 이어 가는 중이다. 맛도 맛이지만 제일 먼저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디자인이다. 각각 알코올 도수 7도, 9도의 쌀 막걸리라는 ‘일곱쌀’, ‘아홉쌀’이라는 이름은 유머러스한 네이밍으로 화제다. 거기에 독특한 패키지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환경을 생각해 고른 매끈한 유리병 라벨에 개구진 미소를 띤 아이의 사진을 담았다. 바로 한 대표의 일곱 살 적 모습이다. 아홉쌀은 도수가 더 높아같은 사진이지만 술에 취해 시야가 흐려진 효과를 더했다.

“이 라벨을 보자마자 사람들이 다 웃어요. 일단 그게 성공이에요. 술은 기분 좋아지려고 마시는 거니까 보고 그냥 웃을 수 있었으면 했거든요. 그리고 일곱 살, 아홉 살 나이 때는 별것 아닌 것에도 쉽게 행복하잖아요. 술을 마시며 그런 행복을 찾자는 의미도 담고 싶었죠. 보기에 좋은 게 먹기도 좋고요.”
△한 대표의 7살 적 모습을 담은 패키지.
△한 대표의 7살 적 모습을 담은 패키지.
양조장 한쪽에서 병마다 손수 라벨을 붙이는 한 대표에게 일의 만족도를 물었다. 잘 팔릴까 하는 보편적인 걱정을 빼면 만족도는 최상이라고 했다. “손님들이 막걸리를 마시고 기분이 좋았다고 말해 줄 때 굉장히 뿌듯해요. 행복한 술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왕이면 좋은 재료로 조금 더 맛있고 재밌게 마시는 술이요. 사람들에게 손에 잡히는 작은 행복을 주고 싶어요.”

한 대표는 앞으로 다양한 시도를 통해 더 많은 소비자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추석 전에 알코올 도수 12도의 ‘열두쌀’을 출시하고 올해 안에 와인처럼 맑은 쌀 술을 선보일 계획이다. 한아양조는 오래오래 모두의 행복을 빚어 나가겠다는 포부다.

이소담 한경무크 기자 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