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C “주식 되살 의무도, 손해 배상 의무도 없다”…신창재 회장 ‘완승’ 평가

[컴퍼니]

어피니티컨소시엄(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IMM PE·베어링 PE·싱가포르투자청)과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사이 주주 간 분쟁이 9월 6일 진행된 국제사업회의소(ICC) 중재 판정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사실상 ICC가 신 회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보생명과 어피니티컨소시엄 양측은 현재 판정 결과를 두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어피니티컨소시엄 측은 추가 중재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앞으로 남은 핵심 쟁점 세 가지를 짚어 봤다.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이 ICC 중재 재판 결과 '풋옵션 분쟁'에서 사실상 승리했다.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이 ICC 중재 재판 결과 '풋옵션 분쟁'에서 사실상 승리했다.
핵심 쟁점 1, 신 회장은 주식을 되사야 하나?

ICC 판정 결과를 두고 양 측의 주장이 가장 첨예하게 엇갈리는 부분은 바로 “풋옵션이 유효하다”는 것이다. 어피니티컨소시엄은 2012년 교보생명에 1조2000억원을 투자했다. 당시 어피니티컨소시엄은 2015년 9월까지 교보생명의 기업공개(IPO)를 조건으로 최대 주주에게 계약서에 정해진 수익을 더해 주식을 사 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권리인 ‘풋옵션’을 확보했다. 어피니티컨소시엄이 신 회장 측에 주식을 되사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번 ICC 판정 결과에 따르면 신 회장이 당장 풋옵션을 매수하거나 이를 위해 거액의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났다. 중재 판정부에 따르면 “풋옵션 가격과 상관없이 신 회장이 매수할 의무가 없다”고 일단락 지었기 때문이다.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중재 판정문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어피니티컨소시엄이 2018년 10월 행사한 풋옵션은 유효하나 한쪽의 일방적인 매매 청구가 인정될 수는 없으며 신 회장이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이 평가한 풋옵션 행사 가격(공정 시장 가치 : FMV)이나 또 다른 풋 가격에 주식을 매입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양측 갈등의 핵심은 처음부터 ‘풋옵션 가격’이었다. 어피니티컨소시엄이 선임한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은 교보생명의 주식 가치를 주당 40만9000원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신 회장은 가치 평가를 진행하지 않았다.

주주 간 계약에는 어피니티컨소시엄 선정 평가 기관이 산출한 가격과 신 회장이 선정한 기관이 산출한 가격이 10% 이상 차이가 날 경우 어피니티컨소시엄이 제시한 제3 평가 기관 리스트 중에서 한 곳을 선정하도록 돼 있었다. 최종적으로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섣불리 평가 기관을 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협상은 결렬됐고 어피니티컨소시엄은 이를 ICC 중재판정부에 풋 가격을 주당 40만9000원으로 확정해 달라고 제소했다. 하지만 ICC 중재판정부는 “한쪽이 가격을 제시하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한다는 내용이 주주 간 계약에 명시돼 있지 않고 중재 판정부가 풋 가격을 정할 수도 없다”며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방적인 풋 매매 청구는 인정될 수 없다”고 어피니티컨소시엄의 주장을 기각했다. 풋 가격을 정할 수 없으므로 신 회장은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이 산출한 40만9000원이나 다른 가격에 주식을 되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2018년 10월 어피니티컨소시엄이 행사한 풋옵션은 유효하지만 가격 결정과 관련된 분쟁 요소는 이미 ICC 중재에서 다뤄졌다는 점에서 추후 이와 관련한 추가적인 논의도 필요 없어진 셈이다. 중재 심판은 단심제로, 그 결과는 법원의 확정 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 주주 간 계약서를 근거로 거액의 자금 회수를 노렸던 어피니티컨소시엄은 그 계약서로 인해 진퇴양난에 빠지게 됐다.

핵심 쟁점 2. 어피니티컨소시엄의 손해 배상이나 추가 중재 청구 가능성은?

ICC 중재에서 어피니티컨소시엄이 취한 전략은 ‘주당 40만9000원’을 관철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어피니티컨소시엄이 매입한 가격보다 70% 정도 비싼 가격이다. 어피니티컨소시엄은 이것이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포함된 가격이라고 주장했다. 이 가격이 관철됐다면 이들은 약 1조원에 달하는 투자 이익을 거둘 수 있었던 셈이다.

어피니티컨소시엄은 교보생명 지분을 24% 보유 중으로 ‘소수 지분’이다. 통상적으로 소수 지분에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가산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신 회장의 지분을 강제 집행할 가능성을 포함해 43%의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얹어 전체 가격을 따져본 것이다. 일각에서 이를 두고 어피니티컨소시엄이 보유 지분의 처분을 넘어 교보생명의 통매각까지 노린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중재 판정부는 풋 가격은 행사 시점의 공정 시장 가치(FMV)를 초과할 수 없고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한 가격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어피니티컨소시엄의 주장대로 주당 40만9000원에 풋옵션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교보생명 본사
교보생명 본사
결국 어피니티컨소시엄으로서는 중재 과정에서 ‘주당 40만9000원’만을 주장하며 다른 구제 수단은 모두 놓치게 되는 자충수를 뒀다는 평가다. 주주 간 분쟁에 따른 손해 등을 입증하려는 노력에는 소홀했던 것이다. 결국 ICC 중재 판정부는 “어피니티컨소시엄이 계약 이행이나 손해 배상 청구를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신 회장이 주주 간 계약 위반으로 인한 손해 배상을 할 필요는 없다고 판정했다.

양측 간 분쟁의 모든 요소는 반드시 이번 중재 절차에서 결정된다는 중재 판정의 결과 추가적인 소송을 배제하는 중재 합의가 존재하게 됐다. 즉, 이미 중재에서 다뤄진 사안을 두고 어피니티컨소시엄이 손해 배상이나 추가 중재를 청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핵심 쟁점 3. 형사 재판까지…퇴로 막힌 어피니티컨소시엄

ICC 중재 판정을 통해 풋옵션 권리가 인정됐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어졌다는 점에서 어피니티컨소시엄은 투자금을 회수할 방안이 묘연해졌다. 펀드의 만기도 다가오고 있어 투자금이나 인수금융 상환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지루한 분쟁이 수년간 지속되며 인수금융에 대한 이자 부담도 크다.

이에 더해 공인회계사법 위반으로 어피니티컨소시엄은 물론 용역을 수행한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관련자들까지 줄줄이 검찰에 기소돼 유죄 판결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들에 대한 공판은 현재 증인 신문이 진행 중으로 이르면 연말께 1심 판결 선고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9년 한국 형사 재판 1심 무죄율은 3.5% 수준이다. 관계자들이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파급 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