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지 서울대공원 조류과 사육사

△황현지 사육사가 안데스콘도르 ‘누기’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황현지 사육사가 안데스콘도르 ‘누기’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날개를 활짝 핀 안데스콘도르의 길이는 3m가 넘는다. 먹잇감이나 공격대상이 보이면 날카로운 눈으로 주시하고 부리를 치켜든다. 사육공간에 있는 동물이지만 야생의 습성을 여과 없이 표출하는 순간이다. 서울대공원 맹금사에 서식하는 안데스콘도르 ‘누기’는 동물의 왕으로 꼽힌다. 그런 누기의 이름을 부르며 삼중으로 된 안전문을 거침없이 열고 들어가는 이가 있다. 황현지(35) 사육사다. 자그마한 체구지만 눈빛과 행동에 여유가 묻어나는 그녀는 올해 10년차 베테랑 사육사다. 자신보다 몇 갑절 큰 동물을 비롯해 손바닥만한 작은 동물도 특유의 교감으로 친구가 되는 직업, 사육사를 만나봤다.

사육사는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가.
“사육사는 기본적으로 동물들을 관리하고 보살피는 일을 하는 직업이다. 그 외 야생동물 서식환경 조성이나 시설관리, 생태교육 등을 한다. 동물들과 교감하고 돌보는 모습보다 사실 보이지 않는 일이 더 많은 직업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고된 일이 많다는 뜻인가.
“맞다. 사실 사육사들 사이에서는 3D(Dangerous, Difficult, Dirtty)직업이라 부른다. 동물 행동 관찰인 위생관리, 먹이급여, 훈련 등을 하다보면 더위, 추위와 한 몸으로 지내야 하고, 신발, 옷, 얼굴에 배설물이 묻는 건 예사다. 아무리 샤워를 해도 관리하는 동물 특유의 냄새가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육사들끼리는 냄새만 맡아도 어느 동물 담당인지 알 수 있다.(웃음)
"우리는 향수를 쓰지 않는 직업입니다" [강홍민의 굿잡]
“대다수의 사육사는 동물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어 평소 향수를 쓰지 않아···
조류과 동물은 관찰이 어려워 회기 훈련이 필수“


동물 냄새를 없애기 위해 향수를 활용하진 않나.
“사육사는 향수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후각이 발달해 향수 냄새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간혹 동물들에게 특정 냄새를 인위적으로 표현할 때도 있지만 그 경우에도 동물의 습성과 맞는지를 고려해 사용해야 한다. 사육사의 편의를 위해 향수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현재 맡고 있는 동물은 무엇인가.
“조류를 맡고 있다. 서울대공원 내 황새마을, 공작마을, 맹금사에 있는 황새, 따오기류, 공작, 독수리, 안데스콘도르 등 21종 107수 정도 된다. 안데스콘도르의 경우, 전세계적으로 멸종 1등급으로 분류되는데, 날개를 핀 길이가 3m가 넘는 매목 콘도르과 조류다.”

조류의 특징은 무엇인가.
“조류의 경우 하늘을 날아다니기 때문에 다른 동물에 비해 육안 관찰이 어렵다. 건강관리나 생태관찰을 위해 회기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래서 다른 동물에 비해 사육사와의 교감이 중요하다. 조류도 종마다 특성이 다른데, 온순한 녀석이 있는 반면 근처만 가도 달려들려는 종이 있다. 안데스콘도르의 경우 사납기로 유명하다. 특히 사육 공간에서 번식이 힘들어 동물원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동물인데, 서울대공원에서 번식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선 사육사의 역할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동물과의 교감은 어떤 식으로 하게 되나.
“수시로 얼굴을 익혀야 한다. 매일 먹이주고, 건강 체크하면서 수시로 얼굴을 보여줘야 한다. 특히 조류는 시각이 뛰어난 동물이라 사육사의 얼굴을 자주 비추면서 친구라는 걸 인식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공격성 있는 동물을 관리할 경우 안전장비 착용 후 2~3인 1조로 움직여···
동물관련전공, 자격증 있다면 이점 있지만 필수조건은 아니다“


공격성이 있는 동물을 관리할 경우 위험할 수도 있겠다.
“아무래도 야생동물이라 위험은 늘 존재한다. 공격성이 있는 동물을 관리할 경우, 사육공간을 청소하거나 식사시간에는 안전장비를 착용한 후 2~3인 1조로 움직인다.”
"우리는 향수를 쓰지 않는 직업입니다" [강홍민의 굿잡]
간혹 번식이 어려운 동물들이 동물원에서 번식에 성공했다는 뉴스를 접한다. 야생동물이 번식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번식에 성공하려면 안정감이 있어야 한다. 안정감이 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물들이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건 사육사의 역할이다. 야생의 습성을 발현할 수 있는 사육공간을 마련하고, 번식시즌이 되면 좀 더 은신할만한 안정적인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사육사가 되기 위해 갖춰야할 조건이 있다면 무엇인가.
“동물관련학과를 졸업하거나 축산기사 등의 자격증이 있다면 이점이 있다. 그 외에도 동물관련기관에서의 봉사활동이나 알바 등 현장경험이 있으면 좀 더 기회가 많아지는 것 같다. 또한 해외 자료나 논문 등 동물사육 관련 자료로 공부하고 외국어를 할 수 있다면 도움이 된다.

사육사를 선택한 계기가 있나.
“초등학교 때부터 태권도 선수로 활동했고, 대학교 1학년 때 그만뒀다. 운동을 그만두면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그때마다 동물원을 찾았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동물원을 좋아해 자주 왔었다. 그때도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동물원에서 위로를 많이 받았었다. 그래서인지 운동을 그만두고 진로를 고민할 때 다른 직업보다 사육사를 떠올렸던 것 같다.”
"우리는 향수를 쓰지 않는 직업입니다" [강홍민의 굿잡]
"우리는 향수를 쓰지 않는 직업입니다" [강홍민의 굿잡]
△(위) 아쿠아리움 근무 시절 모습. (아래)태권도 선수로 활약할 당시 모은 띠.
△(위) 아쿠아리움 근무 시절 모습. (아래)태권도 선수로 활약할 당시 모은 띠.
사육사는 어떻게 준비했나.
“2012년 제주 한화아쿠아리움에서 돌고래 사육사로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비전공자다 보니 다른 부분을 많이 어필했던 것 같다. 사육사를 하기 위해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취득했고, 운동선수 출신의 성실함, 사육사로서 마인드를 많이 어필했다. 실제로도 체력이나 조직문화에 적응엔 자신 있었고. 처음 도전할 때나 이직 때 이 점을 많이 어필했다.”


“동물 좋아한다면 최고의 직업···단 늘 긴장하고 조심해야 하는 직업이기에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는 존재”


서울대공원에서는 언제부터 근무했나.
“2019년 6월에 임기제공무원으로 입사했고, 2021년 전문경력관에 합격했다. 전문경력관은 서울시 공무원으로 분류된다.”

사육사의 매력은 무엇인가.
“나에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버는 직업이다. 특히 요즘엔 야생동물 종보존 등 동물관련 법 개정이 이뤄지면서 멸종 위기의 야생동물을 사육하고 종보존에 앞장선다는 자부심도 있다.”
"우리는 향수를 쓰지 않는 직업입니다" [강홍민의 굿잡]
반면 단점도 있을 것 같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다 보니 동물 상황에 따라 밤낮 가리지 않고 출퇴근을 해야 한다. 또 야생동물이라 다소 위험해 긴장하고 행동해야하기 때문에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는 늘 있다.”

일하면서 보람된 적도 있을 것 같다.
“최근에 서울대공원 맹금사 리모델링을 하면서 독수리 등 10종 26수의 맹금류가 새로운 환경으로 이동했다. 사실 새로운 곳의 환경변화나 스트레스가 폐사로 이어질 수 있어 저와 같은 조류사 직원들은 밤낮으로 당직 순찰을 하기도 했다. 힘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잘 적응해 건강히 지내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사육하던 동물이 폐사하게 되면 심적으로 힘들 것 같다.
“슬프다.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날 때의 기분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동물들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슬픔에만 빠져 있을 순 없다. 그리고 사육사는 다른 동물들을 위해서라도 왜 폐사했는지에 대한 원인파악을 체크해야 한다.”

사육사들만의 직업병이 있나.
“물론 사육사마다 다르겠지만 혼잣말을 많이 한다. 보통 동물들은 청각, 시각이 발달돼 있어 사육하는 동물들에게 사육사의 목소리를 익숙하게 해야 한다. 평소 톤보다 높여 인사를 하는데, 그 멘트와 톤을 유지하기 위해 혼자 있을 때도 “안녕” “밥먹자” 혼잣말을 하는 것 같다.”

사육사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육사가 되고 싶다면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이 직업이 얼마나 나와 맞는지를 미리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걸 꼽자면 현장경험이다. 사육사라는 직업을 어릴 적부터 준비하는 분들이 많은 반면 환상과 다른 사육사 업무에 실망을 앉고 떠나는 사람도 있다. 실제 이 직업이 나와 맞는지는 경험해보지 않는 이상 모른다. 봉사활동이나 알바로 먼저 경험을 해본 뒤 나와 맞는지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사진=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