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전통 무늬 ‘타탄’에서 영감 얻어 중세 기사 문양 넣은 체크, 버버리 상징

[류서영의 명품이야기] 버버리①
1901년 런던 웰레스 컬렉션에서 선보인 버버리의 기마상 로고
1901년 런던 웰레스 컬렉션에서 선보인 버버리의 기마상 로고
토마스 버버리는 1856년 잉글랜드 남부 햄프셔 주의 양털 무역 중심지로 유명한 도시인 윈체스터의 베이싱스토크가에 조그만 포목상을 열었다. 그의 나이 스물한 살 때였다. 그의 가게에서는 낚시와 사냥 등 야외 활동에 적합한 천연 소재의 튼튼하고 질긴 면과 마 소재를 주로 팔았다.

버버리 역사에서 주목되는 소재는 개버딘이다. 중세 승려들이 순례용 망토를 만들 때 양털과 면 등을 촘촘하게 엮은 능직(날실 또는 씨실이 두 올이나 그 이상 건너뛰어 교차돼 비스듬한 방향으로 무늬가 나타나게 짜는 방법)을 사용했고 이 능직을 개버딘이라고 한다. 개버딘은 프랑스어로 망토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투박한 개버딘 소재로 만든 망토는 영국의 농부와 양치기들이 입는 스목(smock : 의류 위에 덧입는 작업복)으로 변형됐다. 버버리는 이 양치기들이 입은 스목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궂은 영국 날씨에서 신체를 보호해 줄 수 있는 기능성에 주목해 새로운 소재를 개발했다. 버버리는 면사에 한 번 방수 가공을 하고 그 실로 짠 원단에 특별히 개발한 방수 코팅 기술을 입혔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수한 통기성과 방수 기능을 갖춘 견고하고도 내구성이 뛰어난 소재인 개버딘을 만들어 당시 무겁고 불편한 레인코트를 대신해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버버리 창업자 토마스 버버리
버버리 창업자 토마스 버버리
에드워드 7세 “내 버버리 가져오게”…일반인에게도 큰 인기

개버딘을 트레이드마크로 등록한 버버리는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활발하게 영업해 개버딘 원단을 수출했다. 1880년대 말 ‘토마스 버버리 앤드 선즈(Thomas Burberry & Sons)’라는 회사가 설립됐다. 이 이름은 버버리의 두 아들인 토마스 뉴먼 버버리와 아더 마이클 버버리가 사업에 참여하면서 정해졌다.

버버리는 1891년 영국 런던 해이마켓(Haymarket)에 첫 매장을 열었다. 1895년엔 개버딘 소재로 레인코트를 만들었다. 국왕이자 패셔니스트였던 에드워드 7세가 버버리의 개버딘 레인코트를 즐겨 입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버버리의 레인코트는 일반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에드워드 7세는 개버딘 코트를 찾으면서 늘 이렇게 말했다. “내 버버리를 가져오게(Bring My Burberry).” 그만큼 버버리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던 것이다. 버버리는 이런 과정 등을 거쳐 레인코트를 상징하는 대표적 패션 브랜드가 됐다. 오늘날까지 ‘버버리=레인코드’처럼 여겨지게 됐다. 영국 옥스퍼드사전에는 버버리를 ‘가벼운 레인코트’라고 등재돼 있을 정도다.
개버딘 원단
개버딘 원단
1893년 노르웨이의 북극 탐험가이자 동물학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프리드쇼프 난센은 북극권을 항해하며 버버리 개버딘을 사용한 최초의 극지방 탐험가로 기록돼 있다. 버버리는 1901년 새 브랜드 로고 디자인을 대중에게 공모했고 이를 통해 영국 후작 가문의 수집품인 런던 웰레스 컬렉션의 13~14세기 갑옷에서 영감을 얻은 영국 중세 기사를 형상화한 기마상 로고가 탄생했다. 이 기마상 로고로 버버리는 브랜드 이미지를 더 견고하게 한다.

같은 해 버버리는 레인코트를 변형한 새로운 트렌치코트를 선보였다. 1908년엔 공군 준장 에드워드 메이틀랜드는 버버리 개버딘을 착용하고 영국 크리스털 팰리스에서 러시아까지 1117마일을 31시간 반 만에 열기구로 비행해 장거리 해외여행 세계 기록을 세웠다. 1912년에는 버버리가 디자인한 타이로켄 코트가 특허를 획득했다. 트렌치코트의 전신인 타이로켄은 싱글 스트랩과 버클로 여미는 스타일이었고 단추는 옷깃 부분에만 하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1차 대전 땐 D링·허리띠 등 전장에 필요한 기능 넣어

영국인 탐험가 어니스트 새클턴 경은 버버리 개버딘을 착용하고 남극 빙벽에서 634일을 견디고 27명의 전 대원이 무사히 귀환한 ‘위대한 항해’를 포함한 20세기 초의 대표적인 3번의 탐험을 했다. 버버리는 1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으로부터 군인들이 입기에 편리하고 실용적인 레인코트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아 새로운 트렌치코트를 제작했다. 트렌치코트에 단 D링, 허리띠, 어깨 견장 플랩 등의 장식은 모두 전장에서 필요한 기능적인 용도에 맞춰 개발됐다.
1937년 버버리 의상을 입고 런던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비행한  아서 클라우스턴(왼쪽)과 베티 커비그린
1937년 버버리 의상을 입고 런던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비행한 아서 클라우스턴(왼쪽)과 베티 커비그린
D링은 수류탄을 다는 데 사용됐고 어깨 견장은 장갑과 호루라기 등 군용 장비를 거는 용도로 활용됐다. 플랩은 총격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새 트렌치코트는 물이 안쪽에 스며들지 않게 하는 스톰 실드 등 다양한 기능적인 디자인이 특징이었다. 오늘날 버버리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버버리 체크는 처음에는 레인 웨어의 안감으로 사용됐다.

버버리 고유의 체크 무늬는 타탄(tartan)이라는 스코틀랜드 전통 문양에서 유래됐다. 타탄 체크무늬는 신분을 나타내는 문양이었다. 단색은 하인, 두 가지 색은 농민, 세 가지 색은 관리, 네 가지 색은 지방 관료, 다섯 가지 색은 재판관, 여섯 가지 색은 시인, 일곱 가지 색은 왕족을 나타냈다. 이런 타탄에서 영감을 얻어 검정색·하얀색·주황색·밤색 패턴에 중세 기사 문양을 넣은 체크 문양은 오늘날 버버리를 상징하게 됐다.

이런 체크 패턴의 문양을 안감으로 넣은 트렌치코트가 대중의 인기를 끌자 버버리는 활용도를 넓혀 나갔다. 트렌치코트에만 적용하는 것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각적 변화를 줘 가방과 셔츠 등에도 이 체크 문양을 적용한 것이다.

1937년 버버리는 공군 장교였던 아서 클라우스턴과 베티 커비그린이 버버리 의상을 착용하고 ‘버버리’라는 이름의 비행기로 런던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까지 이동한 기록적인 비행을 후원하기도 했다. 1955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버버리의 방수 기능 옷감에 영국 황실 마크를 수여했다. 1965년 당시 영국에서 해외로 수출되는 코트 5개 중 1개가 버버리 제품이었다고 할 정도로 버버리는 영국의 명실상부한 대표적 상품이 됐다.

류서영 여주대 패션산업과 교수
사진·자료 참조=버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