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너지·건설 기계 사업 확장…수소·AI·로봇 등 신사업 투자에도 드라이브

[비즈니스 포커스]
(사진) 현대중공업그룹이 개발 중인 액화 수소 운반선 조감도. /현대중공업그룹 제공
(사진) 현대중공업그룹이 개발 중인 액화 수소 운반선 조감도. /현대중공업그룹 제공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의 장남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이 지난 10월 12일 사장으로 승진했다. 정 사장은 그동안 그룹을 이끌어 왔던 전문 경영인 권오갑 회장과 현대중공업지주 공동 대표를 맡게 됐다. 조선 부문 중간 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 대표도 겸임한다. 현대중공업그룹의 3세 경영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따라 조선·에너지·건설 기계 등 그룹 주력 사업의 확장은 물론 정 사장이 주도하던 수소·인공지능(AI)·로봇 등의 신사업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그룹 미래 먹거리 직접 챙기는 정기선 사장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한국조선해양 사장은 1982년생으로 대일외국어고를 졸업한 후 연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2013년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수석부장으로 입사했다. 2017년부터 현대중공업지주 경영지원실장, 현대중공업 선박·해양 영업본부 대표,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를 겸임하며 수소·AI·로봇 등의 신사업 발굴과 투자를 주도해 왔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지난 3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 기업 아람코와 수소·암모니아 사업 관련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친환경 에너지 사업에 시동을 걸었다. 정 사장은 이 자리에서 아흐마드 알 사디 아람코 테크니컬 서비스 부문 수석부사장과 협약서에 서명했다. 양 사는 협약을 통해 친환경 수소와 암모니아 활용을 위한 공동 연구·개발(R&D)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아람코에서 수입한 액화석유가스(LPG)를 통해 블루 수소를 생산해 탈황 설비에 활용하거나 차량·발전용 연료로 판매할 계획이다. 공정 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CO₂)를 포집해 활용함으로써 탄소 제로 공정을 실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한국조선해양도 세계 조선사 중 최초로 LPG·CO₂겸용 운반선과 암모니아 운반·추진선 개발에 나서며 조선 사업에서 양 사 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정 사장은 4차 산업혁명을 비롯한 경영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정보통신기술(ICT)을 그룹 내 주요 사업에 융합하는 디지털 혁신에도 공을 들이는 중이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지난해 6월 KT와 그룹 간 ‘사업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AI와 ICT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급변하는 시장 변화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현대중공업그룹의 로봇 기업인 현대로보틱스도 KT와 50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 계약을 했다. 양 사는 호텔과 레스토랑 등에 쓰이는 서비스 로봇 분야와 ICT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 팩토리 등에 관한 사업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정 사장은 선박 서비스 사업 확대에도 신경을 쓰는 중이다. 그는 선박 서비스에 대한 시장의 요구가 크다는 점에 착안해 2016년 12월 현대중공업 내 AS부문을 별도 독립회사로 분리해 현대글로벌서비스를 설립했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설립 이후 국제해사기구(IMO)의 강화되는 환경 규제에 발맞춰 친환경 선박 개조·유지·보수 사업, 스마트 선박 개발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지난해 별도 기준 매출 9608억원, 영업이익 1615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21.7%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52.4% 뛰었다. 계열사 간 내부 매출이 아닌 친환경 선박 개조 등 신사업 확장을 통해 거둔 실적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현대글로벌서비스 관계자는 “회사의 내부 매출액 비율은 설립 첫해인 2016년 12월 기준 49%에서 이듬해 22%로 낮아졌고 지난해엔 8% 수준으로 감소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3세 경영 닻 올린 현대중공업그룹…‘정기선 체제’ 속도
조선업 등 그룹 주력 사업도 ‘순풍’

‘정기선 체제’가 갖춰지면서 현대중공업그룹의 핵심 사업에도 순풍이 불 것으로 보인다. 정 사장은 권오갑 회장을 비롯해 최근 사장단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한 가삼현 한국조선해양 부회장, 한영석 현대중공업 부회장, 강달호 현대오일뱅크 부회장, 손동연 현대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과 호흡을 맞춰 그룹의 주요 사업을 이끌게 됐다.
(사진)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한국조선해양 사장이 아람코와 지난 3월 3일 화상으로 ‘수소 및 암모니아 사업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은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제공
(사진)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한국조선해양 사장이 아람코와 지난 3월 3일 화상으로 ‘수소 및 암모니아 사업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은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제공
현대중공업그룹은 건설 기계 제조 기업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하며 조선·에너지·건설 기계를 중심으로 한 핵심 사업 ‘3대 축’을 완성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지난 2월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위한 본 계약을 체결한 이후 8월 인수 대금을 모두 납부하며 인수전을 마무리했다. 현대두산인프라코어는 기존 현대건설기계와 두산인프라코어 간 시너지를 극대화해 2025년까지 세계 시장점유율 5% 이상의 글로벌 ‘톱5’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차세대 청정 에너지원으로 각광받는 수소 분야에 대한 공격적 투자를 바탕으로 에너지 사업도 중점 육성한다. 지난 3월 그룹의 미래 성장 계획 중 하나인 ‘수소 드림 2030 로드맵’을 발표하며 2030년까지 육상과 해상에서 수소의 생산부터 운송·저장·활용에 이르는 ‘수소 밸류 체인’을 구축하기로 했다.

수소의 생산은 조선·에너지 계열사가 맡는다. 현대중공업은 2030년까지 그린 수소의 생산을 위해 풍력 에너지를 이용한 1.2GW급 수전해 플랜트를 제작한다. 현대일렉트릭은 발전용 수소 연료전지 패키지를 개발할 계획이다. 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은 수소의 안정적 운송을 위한 수소 운반선, 수소 연료전지 추진선, 액화 수소 탱크 등을 개발한다. 저장된 수소는 수소 충전소, 수소 건설 장비 등에 활용된다. 현대오일뱅크는 블루 수소를 생산해 차량·발전용 연료로 판매할 예정이다. 2030년까지 전국에 180여 개의 수소 충전소를 구축한다는 목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주력인 조선 사업에도 드라이브를 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9월 친환경 분야 투자 확대를 위한 기업공개(IPO)를 마무리했다. 현대중공업은 상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친환경 선박의 퍼스트 무버, 선제적 투자를 통한 초격차 달성’이라는 비전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조달한 자금 1조800억원 중 약 7600억원을 미래 비전 달성을 위한 초격차 기술 확보에 투자한다. 친환경 선박과 디지털 선박 기술 개발에 3100억원, 스마트 조선소 구축에 3200억원, 수소 인프라 분야에 1300억원을 투입한다.

현대중공업은 수소·암모니아 선박, 전기 추진 솔루션, 가스선 화물창 개발 등에 집중해 고부가 가치 선종의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한편 디지털 트윈 등 디지털 선박 기술의 고도화를 통해 급성장이 예상되는 자율 운항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낸다. 또한 2030년까지 생산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스마트 조선소’를 구축해 효율적 생산 체계와 안전한 야드를 조성해 나가기로 했다. 해상 신재생 발전과 그린 수소 생산, 수소 운송 인프라 분야에 대한 투자도 확대한다.

한영석 현대중공업 부회장은 9월 2일 온라인 기업 설명회에서 “현대중공업은 세계 1위 조선 사업과 엔진 사업을 바탕으로 글로벌 조선 사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최은석 기자 choi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