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 정책 핵심 ‘금리 인상’ 실패…중국인 부담 완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시점

[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분석]
파산 위기에 처한 중국 상하이 헝다그룹. 출처: 연합뉴스
파산 위기에 처한 중국 상하이 헝다그룹. 출처: 연합뉴스
올해처럼 ‘OOO1년’이 있는 여름 휴가철 이후에는 10년마다 위기가 반복돼 왔다. 반세기 전인 1971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계속된 브레튼 우즈 체제의 균열이 정점에 도달하면서 급기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금 태환 정지 선언이 나왔다. 달러 가치를 금으로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당시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어서 국제 금융 시장은 큰 혼란을 겪었다.

1970년대부터 계속된 ‘OOO1년의 낙인 효과’

1970년대 초반의 혼란은 스미스소니언과 킹스턴 체제를 거치며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2차 오일쇼크로 1981년에는 스태그플레이션 위기가 닥쳤다. 1970년대 말까지 주류 경제학이던 케인스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어 대처도 불가능했다. 침체를 막기 위해 총수요를 늘리면 물가가 앙등하고 물가를 잡기 위해 총수요를 줄이면 경기가 더 침체돼서다.

수급 이론으로 설명되는 경제 현상이 공급 측 요인으로 바뀜에 따라 정책 대응도 전환됐다. 1980년대 초에는 획기적인 발상인 ‘아서 래퍼 곡선’을 바탕으로 한 레이거노믹스, 즉 공급 중시 경제학이 대두됐다. 세율 감소 등으로 경제 효율을 증대시켜 공급 능력이 확대되면 경기가 부양되고 물가도 잡을 수 있었다.

1990년 베를린 장벽 붕괴를 계기로 사회주의 국가들은 친서방 정책을 표방했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추구해 온 기존 국가와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1991년 유럽 통화 위기가 나타났다. 이는 1994년 중남미 외채 위기, 1996년 아시아 통화 위기,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으로 이어졌다.

1980년대 초 세금 감면으로 시작된 공급 주도 성장은 1990년대 들어 네트워크만 깔면 공급 능력이 확대되는 이른바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인터넷 혁명으로 연결됐다. 고성장‧저물가의 신경제 신화를 구가했던 미국 경제도 2001년 발생한 9·11 테러 사건을 계기로 증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뒤늦게 자산 거품의 심각성을 인식한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2004년부터 기준금리를 대폭 올렸다. 하지만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 대출) 부실 사태가 터지면서 2011년에는 국가 신용 등급마저 강등당하는 최악의 수모를 겪었다.

올해 여름 휴가철 이후에도 10년마다 반복돼 왔던 ‘OOO1년의 낙인 효과’가 발생할지 많은 이들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저금리로 인한 부채가 늘어난 데다 너무 많이 풀린 돈으로 주식과 부동산을 중심으로 심한 거품이 나타났다. 또 기다렸다는 듯 중국 헝다그룹의 파산 위기가 발생했다.
나선형 악순환 이론으로 본 헝다그룹發 금융 위기[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분석]
헝다그룹 파산 위기로 中 긴축 정책 방향성 수정

헝다그룹의 파산 위기가 최근 우려되는 ‘중국판 글로벌 금융 위기’로 악화될 것인지의 여부는 리먼브라더스 사태의 뿌리가 됐던 ‘나선형 악순환 이론’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 경제학에서 한동안 사라졌던 이 이론이 헝다그룹 파산 사태와 관련해 다시 대두되는 이유는 중국 경제의 성장 경로 때문이다.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의 성장 경로를 보면 초기 단계에는 북한의 새벽별 보기 운동처럼 단순히 투입되는 생산 요소(노동력)만을 늘리는 ‘외연적 성장 경로’를 거친다. 이 경로가 한계에 부닥치면 생산 요소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내연적 성장 경로’가 이행된다.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는 이 경로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부동산 거품과 물가 앙등과 같은 심각한 성장통을 겪는다. 중국도 이 후유증을 걷어낼 목적으로 1차로 2004년 하반기부터 약 1년 6개월, 2차로 2010년부터 현재까지 긴축 정책을 추진해 왔다. 특히 중국 정부는 물가를 잡는 데 주력해 왔다.

단, 긴축 정책의 주요 수단으로 삼은 금리 인상은 녹록하지 않은 대내외 여건으로 실패했다. 1~2차 긴축 초기에 의욕적으로 단행한 금리 인상으로는 국내 여신을 잡는 데 한계가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2차 긴축기에는 미국 등 선진국이 금리를 대폭 내리면서 중국과의 금리 차를 노린 핫머니가 대거 유입돼 부동산 거품이 더욱 심해지기도 했다.

요약하자면 중국은 고성장에 따른 후유증을 해결하기 위해 긴축 정책을 추진했지만 오히려 ‘금리 인상→핫머니 유입→통화 팽창→부동산 거품·물가 양등→추가 금리 인상’이라는 나선형 악순환 고리에 빠졌다. 이로 인해 긴축 기간이 길어지고 금리 인상 폭도 커졌다.

긴축 정책의 추진 기간이 길어지고 금리 인상 폭이 확대됨에 따라 중국 경기마저 경착륙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 봉착했다. 본래 중국 정부는 긴축 정책을 추진해 자산 거품과 인플레이션을 걷어내고 성장률(비행기)을 잠재 수준(활주로)으로 안착시켜 경제 주체(승객)를 불안하게 하지 않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나선형 악순환 이론으로 본 헝다그룹發 금융 위기[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분석]
중국 경기가 잠재 성장률 밑으로 떨어진다면 나선형 악순환 국면에 ‘경기 침체’라는 고리가 더 추가된다. 그러면 핫머니가 급속히 이탈해 자산 거품이 꺼지고 경기는 ‘역(逆)자산 효과’로 상당 기간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이른바 1930년대 긴축을 추진하다가 경기마저 붕괴시킨 ‘에클스의 실수’가 재현되는 셈이다.

올해 들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중국 정부는 최악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금리 인상을 위주로 긴축 정책의 방향성을 수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헝다그룹에 대한 규제가 그중 하나다.

새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헝다그룹발 모기지 사태가 발생할 것인지 여부는 중국이 발생 부담을 얼마나 감내할 것인지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특정 위기가 ‘위기 확산형’으로 악화될 것인지, ‘위기 축소형’으로 수렴할 것인지는 크게 두 가지 요인으로 결정된다. 먼저 레버리지 비율(증거금 대비 총투자금액)이 얼마나 높은지, 투자 분포도가 얼마나 넓은지에 따라 좌우된다. 이 두 지표가 높으면 높을수록 위기 확산형으로 악화되고 디레버리지 대상국에서는 위기 발생국보다 더 큰 ‘나비 효과’가 발생한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글로벌 금융 위기로 악화된 것은 위기 주범이던 미국 금융사들의 이 두 가지 지표가 매우 높아서였다.

중국은 아직 두 지표 모두 낮은 편이다. 최근 우려대로 헝다그룹발 모기지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악화될 소지는 적다. 하지만 이 충격은 중국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안길 공산이 크다. 향후 긴축 정책은 중국인의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여러 대책이 있을 수 있지만 중국의 부동산 거품은 선진국의 저금리와 양적 완화에 주로 기인하는 만큼 금리 인상은 가능한 한 자제해야 한다. 그 대신 핫머니 등 외국인 자금에 대한 방어와 함께 일정 폭의 위안화 절상 수용, 임금 등 각종 가격 통제 등으로 부동산 시장 연착륙과 물가 안정을 도모해야 할 시점이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