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 시대 본격화…골든 타임 놓치기 전 한국도 생태계 키워야

[스페셜 리포트] 우주 개발 대항해 시대
아랍 에미리트의 화성 탐사선 '아말' / 한국경제신문
아랍 에미리트의 화성 탐사선 '아말' / 한국경제신문
멀게만 느껴졌던 ‘우주 시대’가 눈앞에 성큼 다가왔다. 국가의 위상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우주를 적극 활용했던 과거 정부 주도의 ‘올드 스페이스’에서 민간 기업들이 우주를 활용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가는 ‘뉴 스페이스’로 넘어온 지도 10년여가 지났다. 통상적으로 국가 주도 우주 개발의 상징적인 인물인 닐 암스트롱이 작고한 2012년을 기점으로 ‘올드 스페이스’와 ‘뉴 스페이스’로 구분된다.

뉴 스페이스 시대 우주 개발의 주역은 스페이스X·블루오리진과 같은 민간 우주 기업들이다. 그렇다고 뉴 스페이스 시대의 우주 전쟁이 글로벌 기업들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우주 산업의 ‘경제성’이 점점 더 입증되면서 정부 차원에서 우주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국가들이 적지 않다.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우주 시장’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신 우주 패권 전쟁’의 시작이다.

1100조원 우주 시장, ‘뉴 스페이스 2.0’이 시작됐다

2020년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는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 기업이 발사한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스페이스X의 첫 민간 유인 우주선 ‘크루드래곤’의 성공이다. 올해 들어서는 버진갤럭틱·블루오리진에 이어 스페이스X까지 민간인을 태운 우주선의 첫 우주여행에 잇달아 성공하기도 했다. ‘뉴 스페이스’ 시대를 넘어선 ‘뉴 스페이스 2.0’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인류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이 된 순간들이다.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 시대의 우주 산업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지구를 대상으로 하는 위성 사업(space for earth economy)과 우주 개발을 대상으로 하는 비위성 우주 사업(space for space economy)이다. 통신·인터넷 인프라, 우주 관측, 국가 안보 위성 등이 대표적인 지구 대상 우주 사업이다. 이와 비교해 달이나 소행성 등에서 우주 자원을 채취하는 것처럼 우주에서 생산되는 상품이나 서비스들은 우주 대상 우주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체 우주 사업의 95%를 차지하는 것은 다름아닌 이 ‘위성 우주 사업’이다. 현재 위성 우주 사업의 규모만 대략 3660억 달러(약 429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2020년 스페이스X의 첫 민간 유인 우주선 성공은 향후 본격적인 ‘비위성 우주 사업’의 태동을 알리는 첫걸음이나 다름없다. 지금까지 우주인들에게만 국한됐던 ‘우주’라는 영역이 모두에게 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우주여행에서 위성 인터넷까지…경제성 커진 우주 산업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와 미국 위성산업협회(SIA)는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향후 우주 산업의 시장 규모가 2040년 1조 달러(약 1100조원)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6년 기준 우주 산업의 규모 3300억 달러(약 387조원)와 비교하면 향후 20년간 3배 이상 시장 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는 얘기다. 모건스탠리는 이와 함께 향후 우주 산업을 이끌 10가지 ‘우주 비즈니스’ 모델을 꼽기도 했다. 위성을 지구의 낮은 궤도로 보내는 ‘위성 발사’, 저궤도 위성 등을 통한 ‘위성 인터넷’, 인간과 화물을 달·화성 등으로 운송하는 ‘심우주 탐사’, 민간에게 우주 여행 상품을 판매하는 ‘우주여행’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저궤도의 빠른 공전을 활용하면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을 오가는 비행시간을 현재 약 8시간에서 무려 29분으로 줄일 수 있다. 당일 여행은 물론 당일 배송까지 가능해지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와 관련한 우주여행 산업만 향후 10년 내 약 80억 달러(약 9조5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된다.

우주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실제로 글로벌 투자 시장에서도 우주 산업에 돈이 몰리는 상황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서 지난 8월 발간한 ‘우주 산업’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우주 기업에 대한 민간 투자 역시 증가 추세다. 실제로 2009년부터 2021년 2분기까지 전 세계 1553개 우주 기업에 투자된 금액은 총 1998억 달러(약 230조원)에 달한다.

눈에 띄는 점은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이 지속되는 와중에도 우주 산업에 대한 투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2분기에만 138개 기업에 99억 달러(약 11조원)가 투자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투자 비율이 49%로 가장 높고 중국(25.2%)과 영국(5.1%) 순이다. 이와 비교해 한국의 투자액은 4억1900만 달러(약 4600억원)로 국가별 투자 비율은 0.2%에 불과하지만 2016년 이후 꾸준히 투자액이 증가하는 추세다.

21세기 첨단 기술 집약체, 우주로 번진 미·중 패권 전쟁

우주 산업의 경제성이 입증되면서 최근에는 글로벌 기업들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 주요국들도 우주 산업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추세다. ‘우주에 미래가 있다’는 확신이 강해지는 만큼 우주 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초기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현재 우주 산업 투자에 가장 적극적인 두 나라를 꼽자면 단연 미국과 중국이다. 전통적인 초강대국인 미국과 신흥 강대국인 중국의 ‘패권 전쟁’이 우주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되는 중이다.

미국은 지난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현재 바이든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우주 산업에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 오고 있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2019년 12월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우주군(US Space Force) 창설이다. 기존의 육해공군과 마찬가지로 우주를 방어하기 위한 독자적인 군 조직이다. 우주군은 군사 우주 전문가를 개발하고 우주 패권을 위한 군사 교리를 완성하며 우주군을 조직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 중이다. 우주군의 창설은 ‘군사 안보’ 차원에서 한층 강화된 ‘우주’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미 우주군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목표는 21세기 첨단 기술이 집약된 우주 산업 분야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미 정부는 우주군 창설과 함께 국가적인 차원에서 우주 산업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을 ‘국가우주위원회(NSC)’도 새롭게 구성했다. 미국의 장기 우주 개발 목표를 논의하고 우주 개발과 관련한 모든 기관을 통합해 혁신을 이끌어 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기관이다. 이를 위해 우주의 상업화와 관련한 규제를 단순화하는 것은 물론 국가 안보 분야에서 민간과 정부의 협력을 확대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 8월 향후 미국의 우주 정책을 이끌 NSC의 새로운 사무총장에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우주 사업을 이끌었던 시라그 파리크 MS 애저 스페이스 선임 이사를 발탁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우주 기술 선도자로서 미국의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고자 하는 미국의 향후 우주 정책의 방향성을 뚜렷이 보여주는 인사라는 평가다.
지난 16일 새벽 중국이 쏘아 올린 선저우 13호 /AP연합뉴스
지난 16일 새벽 중국이 쏘아 올린 선저우 13호 /AP연합뉴스
중국의 시진핑 정부는 이보다 앞선 2015년부터 중국 로켓군을 독자적인 전략군으로 승격시키고 2025년까지 중국을 최고의 우주 기술 선진국으로 만들겠다는 ‘우주 굴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10월 16일 새벽 둘째 유인 우주선인 ‘선저우 13호’를 쏘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지난 6월 선저우 12호를 쏘아 올린 지 불과 4개월 만이다. 선저우 13호에 탑승한 우주인 3명은 향후 6개월간 우주에 머무르며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중국의 독자 우주 정거장인 톈궁의 건설과 관련한 것이다. 중국은 추후 화물 우주선과 유인 우주선 등을 추가로 발사해 내년 말까지 톈궁을 완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톈궁은 현재 미국·러시아 등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의 3분의 1 크기로 총 3명의 우주인이 머무를 수 있다. 2022년 완성 이후 10년간 운영할 예정인데 2024년 ISS가 운영을 종료하면 한동안 유일한 우주 정거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이처럼 독자적인 우주 정거장을 보유하고자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중국의 다음 목표인 ‘달’로 향하는 데 다리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우주 정거장을 통해 달까지의 우주 비행은 물론 달 표면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생존 기술을 확보한 뒤 2025년 본격적으로 달에 진출한다는 목표다. 향후 2030년 달의 남극에 달 연구 기지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뉴 스페이스’ 골드러시, 우주로 향하는 글로벌 국가들

미래를 걸고 ‘우주’로 향하는 나라들은 미국과 중국뿐만이 아니다. 러시아·일본·유럽의 각국 또한 우주 강국이 되기 위한 경쟁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현재 가장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달 탐사’다. 현재 미국은 2024년 여성 우주인을 최초로 달에 보내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에 맞서 중국과 러시아는 함께 손잡고 2035년 달에 우주 연구 기지를 건설하는 계획에 합의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8월 중국과 마찬가지로 2030년까지 달에 유인 착륙기를 보내기 위한 구상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유럽 국가들은 유럽우주국(ESA)을 주축으로 달 궤도에 인공위성망을 구축해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프로젝트 ‘달빛(Moonlight) 구상’을 추진 중이다. 달 궤도에 인공위성을 띄워 통신 시스템 등을 구축한 뒤 각 우주국에 통합적인 네트워크망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우주 산업을 지원해 주는 국가들도 적지 않다. 유럽의 룩셈부르크는 ‘우주 자원’을 채굴하는 우주 산업을 국가 경제 정책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향후 룩셈부르크는 우주 자원 탐사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아랍에미리트(UAE)도 우주 산업에서 주목할 만한 나라다. UAE는 현재 화성과 목성 사이에 있는 소행성대 탐험을 준비 중으로, 2028년 소행성대 탐사를 위한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4년 우주청을 설립한 UAE는 지난 2월 ‘에미리트 화성 탐사 프로젝트’에 성공하며 화성 탐사에 성공한 다섯째 국가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와 비교해 한국의 우주 산업은 이제 막 태동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우주 강국을 위해 정부를 주축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지만 누리호 발사를 계기로 우주 강국으로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이를 위해 한국의 우주 생태계를 육성하기 위한 ‘우주개발진흥법’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10월 19일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발사의 의의와 향후 과제’라는 연구 보고서를 통해 향후 한국 우주 산업의 투자 활성화와 우주 산업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우주개발진흥법’ 등 관련 법제도가 정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경선주 입법조사관은 “각국의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는 ‘뉴 스페이스’ 시대에 우리 민간 기업들이 골든 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며 “누리호 이후 후속 사업 추진과 관련 법 제도 정비 등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