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상황에서도 답을 찾는 불굴의 기백’을 키워야

[경영 전략]
세상만사를 고민하는 전략 경영, 겁먹으면 진다[박찬희의 경영 전략]
인텔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경영자 앤디 그로브는 그의 저서에서 세상에 언제 어디에서 예기치 못한 변화가 닥칠지 모르니 끊임없이 고민해 ‘편집증 환자(paranoid)’가 될 지경에 이르러야 비로소 생존을 도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때의 성공으로 안이함에 빠지는 순간 몰락의 씨앗이 싹튼다는 얘기다.

반면에 세상만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탐색하다가 남들이 내다보지 못하는 ‘변화의 지점(Inflection Point)’을 읽어내 기회를 만들면 세상을 뒤흔들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과 제품, 시장 경로를 계속 모색하고 구성원들 사이에도 건강한 대립이 있어야 하는데, 세상에 대한 직관이 세밀한 현실 분석과 함께해야 한다.

헝가리계 난민에서 세계적 경영자로 성공한 앤디 그로브에겐 당연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사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생각이 많다 보면 스스로 감당하지 못해 정신이 멍해지고 불안한 마음에 겁을 먹는다. 이것이 바로 편집증 환자의 증상인데, 고민을 감당하지 못하는 마음 약한 사람들로 가득한 조직에서는 건강하고 내용 있는 토론은 고사하고 겁먹고 비겁해진 사람들이 서로 책임을 미루고 도망갈 궁리부터 하는 한심한 상황이 벌어진다.

세상만사를 고민하는 전략 경영, 걱정이 불안이 되고 분열과 자멸로 이어질지, 아니면 변화를 내다보며 세심하게 답을 찾고 힘을 모을지는 경영자의 능력에 달려 있다. 미련해도 망하고 겁먹어도 망하는 미묘하고 심란한 전략 경영의 고민,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자.
작전참모의 명제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걸린 전쟁에서 지휘관들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구성원들과 답을 찾고 어려움을 헤쳐내야 한다. 당장 눈앞의 적군은 물론이고 내부의 분열과 음모까지 걱정해야 하고 생사가 걸린 전투 현장의 공포와 불안 속에서 이를 파고드는 적의 심리전을 막아내야 한다.

기상 조건의 변화는 하루아침에 군대를 몰살시킬 수 있고 낯선 곳의 지리와 민심에 잘못 대응하면 적진에 고립되고 만다.

세상 모든 일을 미리 내다보고 준비할 수는 없다. 완벽한 준비를 외치는 사람들은 사실은 최선을 다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변명거리를 마련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지휘관에게는 어떤 상황도 이겨낼 수 있다는 불굴의 ‘기백(氣魄)’이 필요하다. 가혹한 공수 훈련이나 수중 작전 훈련은 당장 써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예 요원’으로서 언제 무슨 일이 닥쳐도 해낼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을 주는 데 목표가 있다.

작전참모는 지휘관을 위해 더 세심하게 내다보고 탐색해 최선의 대안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훈련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가능한 최선의 답을 찾아내는 ‘작전참모의 사명’을 각인시킨다.

때로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 상상할 수 없는 손실도 감내하는 가혹한 결정을 체험시킨다. 지휘관이 세상만사를 고민하면서도 승리의 신념을 다잡을 수 있는 것은 어떻게든 답을 찾아내는 작전참모의 뒷받침이 있기 때문이다.

꾸준한 훈련은 실수 없이 익숙하게 단련하는 의미도 있지만 사실은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효과가 더 클 수도 있다. 물론 실전 경험은 그 효과가 더 크다. 훈련한 그대로 하면 된다는 성공의 경험이 불안과 공포를 이겨낸 기억과 더해지기 때문이다.

초고속 카메라로 야구나 테니스 선수의 스윙을 찍어 보면 몸의 떨림으로 오차가 발생하는데, 훈련과 실전 경험이 쌓인 선수는 위기 상황에서도 동요 없이 평소의 동작을 유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스타플레이어와 신인의 차이는 여기서 생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기업 환경에서 과거의 방식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경영자의 경력과 업적에 주목하는 것은 ‘성공의 체험과 자신감’이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의 밑천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야 세상만사를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더 많은 기회를 찾을 수 있다. 경영자는 말로 요란하게 도전과 혁신을 찾기 전에 먼저 구성원들이 작은 일부터 성공의 체험을 쌓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인재 육성을 내걸고 바쁜 사람들 연수원에 모아 놓고 뻔한 경영학 단어를 되새김질하고 얄팍한 인문학 지식 몇 줄 주워 담아 봐야 골프장 객담거리나 보태고 말만 둥둥 떠다닐 뿐이다. 그럴 시간과 돈이 있다면 작은 일이라도 직접 해서 성공의 체험과 자신감을 쌓을 기회를 주는 편이 낫다. 꼭 모여서 뭘 해야 한다면 차라리 그런 경험들을 공유하고 핵심을 짚어보든가.‘악으로 깡으로’의 재해석‘악으로 깡으로.’
한국인에게는 매우 익숙한 말이다.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여건에서 몸으로 때우고 그것도 부족하면 정신력으로 버티라는 뜻으로 쓰다 보니 잘 안되면 난데없이 삭발 투혼이 나오고 자해에 가까운 무리한 훈련으로 이어진다. 생각해 보면 ‘악과 깡’은 세상만사를 고민하면서도 겁먹지 않고 답을 찾는 불굴의 기백일 때 더 의미가 있다.

권투에서는 한 번의 실패도 없이 승승장구하는 선수보다 KO당한 뒤 다시 이겨낸 선수를 더 높이 평가한다. 한 번 KO를 당하면 매가 무서워 움츠리기 시작해 과거의 몸놀림과 펀치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걱정만 산더미처럼 많아 잘못될까봐 겁먹고 아무것도 못하는 경영자와 비슷한데, ‘악과 깡’은 준비도 없이 남 생각 안 하고 무작정 ‘하면 된다’고 들이대는 무모함이 아니라 고민에서 싹튼 불안과 비겁함을 이겨내는 기백이어야 한다. 실패의 기억을 떨쳐낸 기백이면 더욱 훌륭하다.

경영자의 의사 결정은 세상일들을 최대한 넓고 깊게 알아보고 힘을 모으는 선택과 집중의 과정이다. 선택은 다른 기회를 포기하는 일이고 위험이 따른다.

치밀한 탐색과 고민이 없이 운에 맡기는 무모하고 미련한 선택은 무턱대고 돌격을 외치며 귀한 목숨을 희생시키는 한심한 지휘관과 다를 바 없다. 생각이 꼬리를 물다 위험 부담에 겁을 집어먹고 비겁하게 책임을 미루고 도망갈 궁리부터 한다면 이 또한 한심한 일이다. 대책 없이 성문을 닫아걸고 연명하다가 몰락하는 짓과 다를 바 없다.

비전도 용기도 없는 무능한 경영자가 회사를 ‘대대손손 누리고 등쳐 먹는’ 식읍으로 삼고 여기 기생해 권력을 휘두르는 ‘기업 내시’, 책임 떠넘기며 월급을 챙기는 ‘회사 공무원’들이 판치면 정작 사업을 해보려는 사람들은 작은 문제만 생겨도 책임만 떠안게 된다.

행여 건수 잡힐까 주눅이 들어 버린 구성원들에게 침묵과 복종이 미덕이 되면 이 회사는 주주들의 돈을 등치는 도적떼와 다를 바 없다.

자수성가해 대기업을 일군 A 회장은 고생에 지쳐 기가 꺾인 사람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가 차라리 낫다고 한다. 적어도 가능성은 살아있기 때문이다.

막상 자신은 고난이 자신을 키웠고 스스로 이겨낸 자신감과 경험이 재산이 됐지만 기가 꺾이고 주눅이 들어 버린 사람들의 한계를 보면서 사업을 함께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치 KO당한 후 주먹이 무서워져 눈을 감고 움츠러드는 복서와 같다는 얘기인데,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인 것은 지치고 주눅 들지 않고 이겨냈기 때문이다.

가정 폭력, 학교 폭력은 어린아이의 기를 꺾어버리는 짓이다. 구성원들에게 성공의 체험과 자신감을 주지 못하고 눈치나 보며 주눅 들게 만드는 회사는 가정 폭력, 학교 폭력의 현장과 다를 바 없다.

사람 괴롭히고 쥐어짜는 나쁜 짓만 배울 뿐이다. 하루에 30분만 꺾이고 우그러진 마음을 일으켜 세우고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아 보면 그래도 기회는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적어도 아우슈비츠나 강제노역장은 아니니까.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