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AI 무인 편의점 개소, 핸들·페달 없는 제로 셔틀 운행…혁신 기술 실증 테스트 메카로

[스페셜 리포트] ‘혁신 성지’ 판교밸리에서 본 미래

“와 신기해. 얼굴 인식하고 그냥 가져가면 되네.”

10월 20일 점심시간. 경기 성남시 판교 제1테크노밸리 중심가인 유스페이스 빌딩 앞이 북적거린다. 이날 문을 연 인공지능(AI) 무인 주류 판매점 ‘아이스고24’에 대한 호기심이 인파를 붙든 것이다.

“새로운 서비스 빠르게 흡수”

식사를 마치고 삼삼오오 모인 직장인들은 자판기만 들어선 무인 매장에 관심을 보였다. 굳게 닫힌 문에 신용카드를 인식시키자 입장할 수 있었다. 카드를 꽂거나 모바일 카드를 인식시키면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방식이다.

아이스고24를 서비스하는 박진석 도시공유플랫폼 대표는 “기존의 무인 매장에 아무나 들어와 생기는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카드 인식을 도입했다”며 “카드에 저장된 신상 정보를 통해 누가 다녀갔는지 바로 체크된다. 출입증 자동 기록도 되는 식”이라고 말했다.

매장에 들어서니 쭉 늘어선 자판기 안에 주류가 보였다. 소주·맥주·와인·양주 등 가지각색의 주류가 자판기 안에 진열돼 있다. 현행법상 한국에서 주류 판매는 판매 면허가 있는 장소에서 대면을 통해 구매자 신분과 만 19세 이상 성인임을 확인한 뒤 판매할 수 있다.

박진석 대표는 “규제 샌드박스 특례 기업으로 정부로부터 무인 주류 판매 기술을 승인 받았다”고 말했다. 규제 샌드박스는 아이들이 모래 놀이터(sandbox)에서 자유롭게 실험을 하듯 벤처·스타트업 기업들이 기존의 규제에 막혀 불가능했던 신기술을 활용한 사업의 실증 테스트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다.

기업이 해당 사업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하면 정부는 기존 규제 법령을 개정해 낡은 규제를 없애고 정식 허가를 부여한다. 인공지능(AI) 사물 인식 기술을 활용한 주류 자동 판매기를 보유한 도시공유플랫폼은 자동 판매기를 통한 주류 판매 금지에도 불구하고 실증 특례를 부여 받았다.

지난 5월 성남 고등동에 무인 주류 매장 등 한국의 첫 AI 무인 편의점을 오픈한 도시공유플랫폼은 2호점을 판교에 열었다. 판교밸리를 중심으로 올 연말 10호점까지 연다는 계획이다.

판교밸리를 매장 확충 전략지로 삼은 것은 게임 대기업 등 젊은층이 근무하는 입주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판교밸리 입주 업체 임직원 연령은 2020년 말 기준 30대(44.35%), 40대(28.27%), 20대(18.50%) 순으로 분포하고 20~30대가 전체의 62.9%를 차지한다.

박 대표는 “판교는 직장인들이 대부분 정보기술(IT) 인력이라 신기술이나 새로운 서비스를 빠르게 흡수하는 측면이 있다”며 “유수의 개발자들이 곧 실수요자여서 피드백도 좋고 테스트베드의 장으로도 아주 훌륭하다”고 말했다.

관련 기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내기에도 판교만큼 탁월한 사업지가 없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도시공유플랫폼은 최근 카카오·NHN과 사업 제휴를 마치고 시장 확대 보폭을 넓히고 있다.
경기도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이 함께 제작한 자율주행 셔틀인 ‘제로셔틀’./경기도자율주행센터 제공
경기도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이 함께 제작한 자율주행 셔틀인 ‘제로셔틀’./경기도자율주행센터 제공
경기도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이 함께 제작한 자율주행 셔틀인 ‘제로셔틀’./경기도자율주행센터 제공
경기도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이 함께 제작한 자율주행 셔틀인 ‘제로셔틀’./경기도자율주행센터 제공
ICT 집결지, 실증 단지 적합

때로는 매장을 넘어 거리 전체가 테스트베드존이 되기도 한다. 판교 제1, 제2 테크노밸리는 자율주행 실증 단지다. 사람과 일반 차량이 공존하는 실제 환경의 자율주행 테스트베드의 장이란 의미다. 경기도는 2016년 자율주행 셔틀 도입 계획을 확정 짓고 그해 10월 판교제로시티 자율주행 실증 단지 조성 연구에 착수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경기도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이 함께 제작한 자율주행 셔틀인 ‘제로셔틀’이다. 제로셔틀은 도내 교통 문제 해결을 위해 제작한 한국 최초의 공공 자율주행차로, 핸들과 페달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안전 요원 배석). 2018년부터 시승을 시작했다.

현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시승 서비스가 잠정 중단됐지만 제로셔틀은 한국 최초로 판교 시가지를 돌며 사람과 일반 차량이 공존하는 실제 환경에서 자율주행을 진행했다. 경기도자율주행센터에서 판교 쇼핑센터인 아브뉴프랑까지 도는 코스다. 지금도 실증해야 할 경우 제로셔틀 탑승을 진행하고 있다.

임경일 경기도자율주행센터장은 “보통은 교통 통제하거나 하는데 우리는 판교역에도 가고 일반 차량과 함께 시가지를 다닌다”며 “현재까지도 실도시 환경을 베이스로 시범 운영하는 단지는 우리 판교 자율주행센터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2016년 4차 산업혁명의 흐름에서 자율주행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였고 경기도는 공공의 차원에서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자율주행 산업의 장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중 판교가 도 내 자율주행센터 사업지로 선정된 것은 다양한 이유가 있다.

먼저 자율주행에 필요한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집결지란 점이다. 임 센터장은 “판교는 4차 산업혁명의 발판인 IT의 정점에 선 국제도시”라며 “판교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 자율주행센터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둘째는 교통이다. IC고속도로는 물론 지선·간선이 다 포함돼 있지만 서울보다 덜 복잡하다는 점이 자율주행 실증 단지에 부합했다는 평이다. 그는 “도의 전폭적인 지지와 판교 인프라가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판교와 같은 커다란 ICT 도심의 실도로 환경에서 자율주행이란 차세대 기술을 연구하고 테스트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는 것이 센터의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제로셔틀은 사업 초기엔 혹시 모를 안전 문제 등을 우려해 낮보다 밤에 운영됐다. 또한 시승 초기엔 아무래도 제로셔틀이 느릴 수밖에 없어 그렇지 않아도 혼잡한 판교 교통에 혼잡도를 보다 증가시켜 주민의 불만이 클 것이란 내부 우려도 있었다. 그런데 기우였다. 주거 지역과는 한 블록 떨어져 있는 것도 있지만 판교 직장인이나 주민들의 이해도가 남달랐다.

임 센터장은 “오히려 신기해하며 빠르게 서비스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컸다”며 “과유불급이라며 천천히 진행하라고 응원하거나 역으로 활용 방안을 꺼내는 의견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실제 시승 서비스를 하는 동안 판교 지역민들은 개발진이 생각하지 못한 피드백을 주는 방식으로 시범 사업을 도왔다.

센터는 앞으로도 자율주행 관련 산업 생태계가 판교를 중심으로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임 센터장은 “2018년부터 올해까지는 실증 단지 기반 구축과 조성 단계였다면 2024년까지는 고도화 단계”라며 “판교 센터가 최초란 타이틀을 선점한 만큼 보유한 기술력과 데이터를 활용해 실증 단지의 필요성을 입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테스트베드로서의 판교 역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자율주행 다음은 인공지능(AI)이다. 지난 4월 경기도 판교테크노밸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공모하고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전담하는 ‘AI 기술 실증 테스트베드 조성 사업’을 시작했다.

AI 분야 기업들이 판교테크노밸리가 보유한 인프라를 활용해 혁신 제품과 서비스를 신속하게 검증해 사업화 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한 ‘AI 실증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사업의 주요 내용이다.

선정된 기업은 판교테크노밸리 일대에 조성된 인프라를 활용해 실증을 추진하게 되며 이를 위해 과제별로 3억원에서 최대 7억원까지 총 38억원을 지원한다. 참여기업은 전체 실증 사업비의 25%만 부담하면 된다. 실증 지원 기간은 내년 4월까지다. 8개월의 실증 이후 평가를 통해 우수한 서비스로 선정되면 최대 2023년까지 지원이 이뤄진다.

임문영 미래성장정책관은 “AI 기술은 다양한 분야와 융합해 새로운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이라며 “판교 내 조성된 우수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AI 혁신 기술을 즉각적이고 실효성 있게 실증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